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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역사왜곡}} [[조선]]은 사실 고구려가 자기들 역사라는 걸 알고 있으면서도 일부러 배척했다. ㄴ 개소리임 당시 조선 사람들도 고구려부심 있었고 삼국 중에서 고구려가 제일 쎘다는거도 알고 있었다 조선 건국 초기만 해도 조선은 고구려를 자국 역사로 인식했다. 이는 조준이 명나라 사신에게 살수대첩의 일화를 이야기해 농락한 것에서 드러난다. 그러나 점차 시간이 갈수록 중국에 대한 모화사상이 심해지고 중국의 영향력이 강해지면서 조선 스스로가 고구려를 역사에서 제외하기 시작하였다. ㄴ 개소리라니까 병신임? 사실 주병이 보병인 조선과 다르게 고구려는 기마병이 주류였기 때문에 조선이 보는 고구려는 매우 이질적인 존재였다. 그냥 조선 눈에는 고구려나 여진이나 비슷한 존재였던 것이다. 발해를 포함해 모든 북방 한반도사를 북적의 역사로 취급했다. 한편으론 중화왕조의 문명을 가장 잘 배꼈다는 자부심이 높았기 때문에 중국에 대항했던 고구려를 좋게 볼 수 없었을 것이다. 오죽하면 광개토대왕릉비를 여진족 비석으로 착각했다고 한다. ㄴ 시진핑 책상 밑에서 검거 이러한 영향으로 고구려의 수도였던 평양쪽 서북인들을 500년내내 차별하였다. [[서북인-기호인 관계]] 기호인에 해당하는 조선왕조가 서북인을 평가한 기질은 이렇다. '이들은 용맹하고 굳세나 거칠어서 남쪽과 정서가 다르다'라는 식이다. 여기에 빡쳐서 일어난게 홍경래의 난이다. 이런 조선이 고구려를 자기들 역사로 다루기 시작한 것은 병자호란에서 두들겨맞고 유득공같은 실학자들이 나오면서다. 당시 조선은 민중의 낮아진 애국심을 다시 회생시킬 필요가 있었다. 유득공을 비롯한 실학자들은 고조선, 고구려, 발해를 뒤늦게 조선역사로 재합류시키며 조선이 지금은 청나라 빵셔틀이어도 예전엔 고구려처럼 쌘캐였다는 식의 정신승리를 하기 시작하였다. 이 당시엔 임경업전과 같이 청나라에 개발린 패배감을 해소하기 위해서 정신승리식 프로파간다가 조선에서 유행하던 중이었다. ㄴ 개쌉소리만 써놨네 고려 때 부터 떠받들어온 고조선을 애초에 더 강조해서 떠받든게 조선인데 뭐? 뒤늦게 합류시켜? 조선이라는 국호만 봐도 알텐데 빡대가린가? 일제강점기 때 독립운동가 겸 역사학자인 [[신채호]]는 조선이 중국문화에 미쳐서 훼손시켰던 한국사를 다시 오늘날의 고조선→부여, 마한, 변한, 진한→고구려, 백제, 신라→신라, 발해→고려→조선 순서로 복구하였다. 신채호는 동명성왕, 광개토대왕, 을지문덕, 연개소문, 왕건, 묘청 등의 인물들을 재조명하여 한반도 역사에서 중요한 인물들로 다루었다. ㄴ 이건 뭔 뇌피셜이냐. 동국통감, 삼국사절요는 어디다 팔아먹음? 발해는 몰라도 고구려는 조선시대에도 한국사로 봤는데? 위 글쓴새끼는 좆짱깨새낀가 보다. 개쳐맞고 있으니 지우지 말고 조롱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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