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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근현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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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화인민공화국 및 중화민국 (1949년 ~ 현재) === ==== 중화인민공화국 ==== ===== 마오쩌둥 체제 (1949년 ~ 1976년) ===== 중화민국 국민정부를 몰아내고 새로운 공산 정권을 세운 [[마오쩌둥]]은 토지 개혁을 통해서 기존의 [[신사(중국)|신사층]]이 갖고 있던 토지를 싹 다 빼앗았고, 잘못된 토지 정책으로 많은 중국인을 굶어죽게 만들었다. 전쟁의 후유증이 수습되지도 않았는데 [[1950년]] 티베트를 침공해 강제 합병했으며 같은 해 일어난 [[6.25 전쟁]]에 중국군을 보냈고, 중국 사람들의 삶은 더 나아진 것이 없었다. [[1957년]] [[반우파 투쟁]]과 [[1958년]] [[대약진운동]]의 처참한 실패로 중국의 상황은 더 악화되었다. 쩌둥이의 병신짓을 수습하기 위해 [[류샤오치]]와 [[덩샤오핑]]이 들어왔으나, 쩌둥이는 얘네가 권력을 잡은 것이 아니꼬와서 얘네를 자본주의 반동으로 몰아버리는데 그게 바로 [[1966년]] 일어난 [[문화대혁명]]이다. 문혁으로 기존 중국의 토호인 신사층은 붕괴했고, 많은 문화재와 전통이 파괴되었다. [[1972년]]에는 미국과 관계 회복을 도모했다. [[1976년]] [[저우언라이]]가 사망하면서 제1차 천안문 사건이 일어났다. 얼마 뒤 마오쩌둥도 뒤졌다. ===== 덩샤오핑 체제 (1976년 ~ 2012년) ===== 마오쩌둥이 뒤지면서 문화대혁명은 일단락되었다. 새 지도자는 [[화궈펑]]이라는 듣보 인물이 되었으나 얼마 뒤 자리를 덩샤오핑에게 내줬다. 그리고 문화대혁명을 주도했던 [[4인방]]은 새로운 권력자인 덩샤오핑에 의해 숙청당했다. [[흑묘백묘론]]이라는 실용주의 사상을 내세우면서 강남 지방의 도시들을 현대화시켰고 자본주의 체제를 받아들였다. [[1979년]]에는 미국과 공식 수교했다. 이 과정에서 사회 불평등이 심해지자 [[1983년]] [[엄타]] 운동과 [[1989년]] [[천안문 6.4 항쟁]] 등이 일어났다. 천안문 사건 이후 자본주의 체제는 다시 위기에 직면했으나 [[1992년]] 덩샤오핑의 남순강화 이후 자본주의 체제의 유용성이 입증되면서 덩샤오핑의 시장 경제 시스템은 계속해서 유지되었다. 덩샤오핑 이후 [[장쩌민]], [[후진타오]]가 이어서 주석을 했고, 덩샤오핑 체제에 큰 변화는 없었다. [[1997년]] [[홍콩]]이 반환되었고, [[1999년]] [[마카오]]가 반환되었으며 [[2001년]] WTO에 가입한 것에 이어 [[2008년]] [[2008 베이징 올림픽]]을 개최했다. ===== 시진핑 체제 (2012년 ~ '''현재''') ===== 덩샤오핑 체제를 처음으로 흔든 것은 [[2012년]] 집권한 [[시진핑]]이다. [[중국몽]]과 [[공동부유]]를 내세운 시진핑 정권은 시진핑 개인에 대한 우상화를 강화하고 [[북한]]식으로 가는 것이 아니냐는 비판을 받고 있다. 여기까지가 [[2020년대]]까지의 중국 현대사였다. 이제 아래서는 대만을 살펴보도록 하자. ==== 중화민국 ==== ===== 국민당 일당독재 시대 (1949년 ~ 1987년) ===== [[국부천대]] 이후 대만으로 튄 국민당의 [[장제스]]는 대만 섬에 계엄령을 선포했다. 그리고 국회의원 선거조차 치뤄지지 않았다. 경제 개발 정책으로 대만은 급속도로 성장했고, 한때 대한민국보다 더 잘나가는 나라가 대만이었다. 그러나 중국과 미국의 관계가 좋아지면서 [[1971년]] UN에서 쫓겨나고, [[1972년]]에는 일본과, [[1979년]]에는 미국과, [[1992년]]에는 한국과 단교했다. [[1975년]] 장제스 사망 이후 [[장징궈]]가 아버지 장제스의 자리를 계승했다. [[1979년]] [[메이리다오 사건]] 이후 민주화 요구가 강해지면서 위로부터의 민주화를 시작했다. [[1986년]] [[민주진보당]] 창당을 허용했고, [[1987년]] 계엄령을 해제하면서 민주화되었다. ===== 민주화 이후 (1987년 ~ '''현재''') ===== [[1988년]] 장징궈 사망 이후 [[리덩후이]]가 총통이 되었다. 헌법을 개정하고 선거를 실시했으며 총통 임기는 4년 연임으로 고정했다. [[2000년]]에는 민주진보당의 [[천수이볜]]이 총통으로 당선되었고, [[2008년]]에는 [[중국국민당]]의 [[마잉주]]가, [[2016년]]에는 다시 민주진보당의 [[차이잉원]]이 총통이 되었다. 민주화 이후의 대만은 중국과 통일을 추진하기도 했으며 다른 한 편으로는 [[1995년]] 대만 해협 위기를 겪는 등 갈등도 겪었다. [[2020년대]]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의 확산을 기점으로 중국과 대만의 위기가 다시 고조되고 있다. 하지만 현재 중국과 대만은 경제적으로 매우 밀접하게 엮여 있고, 중국의 산업이 대만 기업 없이는 돌아가기 힘들고 대만 또한 중국의 노동력이 매우 필요하기에,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듯이 함부로 중국이 대만을 쳐들어가기는 힘든 상황이다. [[2024년]] 차이잉원 총통의 임기가 끝나면 선거를 통해 새로운 총통이 들어서게 된다. 앞으로 중국과 대만의 [[양안관계]]는 어떤 식으로 흘러가게 될지 주목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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