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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우구스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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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점 == === 군사 능력 똥망 === 옥타비아누스의 군사적 능력이란 가감없이 정말 별볼일 없었다. 본인이 직접 지휘를 하면 대패를 한다든지 고전하는 경향이 강했다. 필리피 전투에서는 병으로 골골대다가 겨우 전투에 나섰으나 도발에 넘어간 쪽이 먼저 돌격하면 진다는 당대의 상식을 깨고 브루투스한테 개쳐발렸는데 1만 6천명 손실에 군단기를 3개나 빼앗겼다고 하니 대참패였다. 이후 폼페이우스의 작은 아들인 섹스투스를 처리하기 위한 시칠리아 전쟁에서도 아그리파가 달려오기 전에는 또 개발렸다. 그래서 카이사르는 군사적인 능력을 보완해줄 아그리파를 붙여줬고, 옥타비아누스의 군사적인 업적은 사실상 전부 아그리파의 작품이라고 보면 된다. 일례로 옥타비아누스는 폼페이우스의 잔당인 섹스투스 폼페이우스를 상대로 쩔쩔맸는데(결혼동맹도 시도하고 안토니우스의 함대를 사기쳐서 빼오는 등 손을 많이 썼다), 아그리파가 갈리아에서의 전투를 마무리하고 나서야 나울로커스 해전에서 섹스투스를 제압할 수 있었다. 하지만 정작 섹스투스의 마지막 본거지인 메사나를 함락시키고 8개 군단의 항복을 받아낸 건 아우구스투스가 아닌 [[레피두스]]였다. 하지만 영토 정책에선 떨어지는 군사능력과 달리 확장정책을 펼쳤는데 이게 망해버린 게 토이토부르크 전투. 이 때 많은 병사들과 함께 게르마니아 지역을 관리할 인원까지 같이 죽어버리는 바람에 아우구스투스 사후에도 계속 원정은 진행되었으나 결국 확장은 그만두고 라인강으로 물러나게 된다. === 성격 === 남아있는 아우구스투스의 조각상 등을 살펴볼 때 현대 기준으로도 충분히 먹어줄 만한 꽃미남이었지만, 성격으로는 정말로 친해지기 매우 어려웠다. 양아버지 카이사르가 주변 사람들을 자연스럽게 자기 편으로 끌어당기는 카리스마와 함께 다른 사람의 심리를 헤아리는 능력이 무척 뛰어났던 반면에 아우구스투스는 남의 감정에 무관심하면서 차가운 괴물에 가까웠다. 어린 시절부터 눈을 감는 그 순간까지 까칠하고 이성적, 논리적으로만 판단하고 행동해서 인간적인 매력과 호소력은 크게 떨어졌다. 여기에 자기 속마음을 남에게 쉽게 드러내지도 않으면서 아무에게나 정을 주지 않았던 반면, 겉으로는 따뜻하고 남을 배려하는 듯한 연기에도 뛰어나서 정적들도 혀를 내두를 수준이었다. 정리하면 한 개인으로서는 친해지기 극히 어려운 성격이었다. 당대의 보수적인 로마인 가장들이 가부장권을 행사하여 자식들에게 명령하곤 했지만 아우구스투스는 여기서 더 나아가서 마치 신민들을 다루듯이 '''통치'''했다. 따라서 가까운 사람들이라고 해도 정치적인 판단이 조금이라도 들어갈 여지가 있다면, 사랑한 양아들이나 손자가 한 결정이라도 전부 뒤집혔고 그의 뜻대로 처리되었다. 하지만 감정이 전혀 없는 냉혈한은 아니어서 유일한 친자식인 대 율리아가 어린 시절에는 손수 기르고 챙겨줄 정도로 정을 쏟았으나 자란 뒤 온갖 스캔들을 일으키자 죽기 전에 대 율리아를 낳은 걸 후회했다고 하며, 그 말을 들은 양아들 티베리우스는 잠시나마 아내였었던 그녀를 동정했다고 한다. 여기에 양아들들이나 손자들의 사소한 고민거리를 들어주고 조언을 해준다든지 웅변 연습하는 걸 직접 봐주는 등 의외로 가정적인 남자이기도 했다. 하지만 남의 감정을 고려하지 않는 차가운 점 때문에 그와 성격이 가장 비슷했던 양아들 [[티베리우스]]조차도 전 아내인 대 율리아와의 불화와 어린 친아들의 요절로 인해 지쳐버린 끝에 만사를 다 던져버리고 로도스 섬으로 들어간 뒤 자연인으로 은퇴선언을 하고 8년간 로마에는 얼씬도 안했다는 걸 생각하면 가까운 이들이라도 계속 견딜만할 성격은 아니었던 듯 싶다. === 사기 === 아우구스투스가 확립한 원수정(프린키파투스)은 왕이라는 개념에 거부감이 강했던 당시 로마의 상황에 맞게 '회복된 공화정', 즉 카이사르의 내전 이전의 공화정 체제를 복원했다고 선전한 뒤 실질적인 권한은 여러가지 '특권'을 가진 아우구스투스 본인이 쥐어 옛 공화정 체제에 올라탄다는 지극히 애매모호한 것이다. 이 때문에 4세기에 공식적으로 전제정(도미나투스)가 확립되기 전까지 황제의 지위는 취약점이 굉장히 많았으며(세습으로 지위를 얻어도 어느 정도 정계와 군부의 지지가 요구되었고, 최고 지휘관이 곧 국가원수라는 개념 등) 로마의 민속놀이라는 개드립의 유래가 된 틈만 나면 뻥뻥 터지는 내전의 원인이 됐다. 참고로 로마제국의 '황제(Caesar)' 라는 직위는 로마 후기 쯤 되서야 공식화 되었으며 서로마제국의 멸망 후에는 왠 게르만족이 로마 계승을 우겨대서 서로마 제위를 이어받아 '황제(Kaiser)'를 칭하게 되고, 동로마제국의 멸망 후에는 왠 슬라브족이 로마 계승을 우겨대서 동로마 제위를 이어받아 '황제(Tzar)'를 칭하게 된다. 이렇게 야매로 계승된 서로마 제위는 나폴레옹에 의해 신성로마제국이 반강제적으로 해체됨으로서 완전히 소멸되었고 마찬가지로 야매로 계승된 동로마 제위는 1917년 볼셰비키 혁명으로 러시아제국이 뒤엎어짐으로서 완전히 소멸한다. 구라로 시작해서 구라로 끝난 로마제국 제위의 위엄... === 달력을 개판으로 쳐만든 새끼 === 지 생일이 있는 8월이 30일이나 되는데도 굳이 자기 생일이 있는 달은 꼭 31일로 만들고야 말겠다는 일념하에 안그래도 날짜 모자라 죽겠는 2월에서 하루를 빼다가 8월에 박아넣었다. 일년 중 가장 뜨거워 뒈지겠는 달을 하루 연장시킨 씹새끼다. 2월 30일은 이 새끼 때문에 사라진 날이다. 달력 하루 바꿨다고 더운 날이 안더워지나? 문과는 이래서 안된다. 배스킨라빈스 무료 사이즈업 개이득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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