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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칠리아 === 연합군은 공격을 늦추지 않았다. 시칠리아 침공은 7월 10일 전후로 정해졌고 몽고메리의 제8군은 시칠리아 남동쪽 끝에 상륙해서 북동쪽에 있는 메시나로 진격하는 임무를 맡았다. 즉 몽고메리의 부대가 주공을 맡았다. 몽고메리는 자기가 전공을 독차지하려고 미군 부대에겐 측면보호같은 임무나 주고 자신은 주공을 맡기 위해 오만가지 지랄을 다 떨어댔다. 7월 내내 연합국 군대는 독일군을 밀어붙였다. 군대가 북상하면서 몽고메리의 싸이코 또라이 기질은 누구도 범접 불가능한 포스를 풍기는데 사건이 하나 있다. 몽고메리는 메시나를 서쪽에서 공격하기 위해 제30군단을 렌티나에서 에트나로 우회시켰다. 그런데 이렇게 이동하려면 124번 국도를 타고 가야 했다. 124번 국도는 미군이 쓰기로 한 도로였는데 몽고메리는 패튼에게 영국군이 124번 국도를 쓴다는 말을 하지 않았다. 그래서 쪼끄마난 국도에 양국 군대가 엉켰다. 몽고메리가 주공을 서쪽으로 틀었기 때문에 측면을 지키는 미군도 방향을 맞춰줘야 했다. 하지만 패튼은 그닥 화를 내지 않았다. 이미 섬에서 가장 큰 도시인 팔레르모를 점령하게 해달라고 알렉산더에게 요구했기 때문. 나흘 뒤 패튼은 팔레르모를 땄다. 팔레르모에서도 메시나를 공격하는 길이 있긴 하다. 그래서 패튼은 무조건 몽고메리보다 먼저 메시나를 따기로 했다. 메시나로 가는 길은 산악지형이라 뚫기가 어려웠다. 8월 6일부터 시작된 길뚫기는 8월 17일이 되어서야 끝났다. 패튼이 산을 청소하는 사이 몽고메리도 부하들을 재촉했다. 둘의 레이스는 1943년 8월 17일 미군 정찰대가 먼저 메시나에 진입하면서 패튼의 승리로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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