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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향가의 작가는 실존했는가? == {{진지}} 나는 [[남간]]이 싫으므로 남간에 없는 정보를 디키에 기여할 것이다. 진지하고 노잼이지만 노잼의 산본인 남간에 기여하지 않는다. 어쨌든 난 남간이 싫으므로. 학계에서는 향가의 작자가 실존했는가 혹은 허구인가에 대한 의견이 분분했다. 그 이유는 향가에 관련된 자료가 너무 적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학자들이 주로 의존했던 자료는 우리가 흔히 아는 일연의 [[삼국유사]]였다. 그런데 향가의 작가라고 나오는 사람들의 이름이 꽤 이상하다. 일단 폰으로 적기 때문에 한자를 많이 쓰지 못함을 양해바라고, 계속 적자면, 천수대비가의 작가인 희명(希明)은 이름만 딱 봐도 빛을 바라는 여성이다. 어린 자식이 실명한 상태였는데, 부디 눈을 뜨게 해달라고 자비를 바라는 것이 천수대비가의 주 내용이다. 그런데 이상하다. 희명씨는 원래 부모가 지어주신 이름이 희명 맞으신가여? 왜 노래의 내용과 작가의 이름의 연관성이 이렇게 깊은거죠? 희명만 있는게 아니다. 안민가의 충담사는 忠談이 이름이다. 충성스러운 말이란 건데, 안민가의 내용은 공교롭게도 왕에게 백성을 잘 다스리라고 충언을 하는 것이다. 융천사도 사실 크게 다르지 않다. 작가들의 이름이 향가의 내용과 너무 비슷하다. 충분히 허구일 가능성은 있다. 일연이 작가의 이름을 임의로 창작했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럼 향가의 작가들은 전부 허구인가? 이것도 사실은 아닐 가능성이 높다. 삼국유사만이 아니라 향가 작가가 나오는 자료는 또 있다. 그 자료와 새로운 참고자료인 화랑세기를 비교해보면, 향가의 작가가 어느정도 실존 인물이 있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남간은 화랑세기 필사본 위작일듯 ㅇㅇ 라고 하는데 화랑세기는 개인이 장난을 쳐놓기엔 이미 여러 사람의 손을 거쳤다. 인위적인 거짓을 가해놓을 가능성은 남간 말 만큼 크지 않다는 얘기다. 만일 위작이라고 주장하는 쪽에서 궁내성 얘길 근거로 쓴다면 더더욱 주장을 굽힐 이유가 없다. 공개 목록에 굳이 화랑세기가 있어야만 하는 이유가 어디에 있는지. 끼앙! 고로 너는 학계에서 bb인정합니다 하는 이론이 나오기 전까지 믿고 싶은걸 믿으면 된다. 향가의 작가는 실존인물일 수도 있고, 허구일 수도 있고, 둘 다일 수도 있다. ㄴ화랑세기는 위작임에 분명한 게 향가연구가인 김완진이 화랑세기에 수록된 향가를 해석해봤는데 기존 향가와 달리 그동안 나온 향가해석법에 맞춰 해석하면 술술 해석된다는 점에서 암만봐도 박창화가 기존 향가 연구를 참조하여 창작해냈다는 결론을 내렸다. 왜냐면 향가라는게 시대차이도 제법 나기 때문이고 향찰 기록에 통일된 기준도 없기 때문에 향가해석은 향가마다 달리 해석자가 자기의 추론과 판단으로 변형해서 적용해야하는 경우가 꽤 있다. 그런데 화랑세기의 향가는 그런 변형 적용이 없이 해석된다는 점에서 의심스러운게 당연하다. 물론 환단고기 따위에 수록된 향가에 비하면 매우 차원이 높기 때문에 이유립보다 박창화의 역량이 더 위라는 걸 알 수 있다. ㄴ 맞다. 일리가 있는 말이다. 나도 꽤 오래전 논문만 읽고 주장을 편 점에 대해서 반성을 하도록 하겠다. 미안하다~~!! 남간놈드라아아 하지만 여전히 의문점이 남아있는건, 화랑세기 필사본의 송랑가의 향찰표기는 개인이 조작하기 힘든 수준이라는 것이다. 필사 당시에 1960년대 수준의 고전문법 지식을 특정 개인이 습득할 수 있었는가에 대해서는 아무래도 의문이 남을 수 밖에 없다. 다시 말하면 완전히 개인의 상상만으로 창작해내기는 어렵다는 얘기다. 양주동 선생의 조선고가연구도 1942년에야 나왔다. 그럼 양주동 선생의 연구를 응용한 것인가 하고 보아도 향찰 해독의 차이가 한 두 군데도 아니고 엄연히 몇 군데에 존재하고 있다. ㄴ 향가는 양주동 선생 이전에 일본 학자 오구라 신페이가 먼저 연구하기도 했고 박창화는 해방 이후에도 60년대까지 활동했으므로 이런 연구를 종합했을 가능성이 없진 않다고 생각한다. 어쨌거나 이 양반이 뭔가 그럴듯한 역사소설 만드는데 능한 사람이기도 했고. 아직도 완벽하게 위서라고 판명나지도 않은게 참 뭐라 말하기 어렵지만, 위서일 가능성이 높은건 인정한다. 그렇다면 사료적 가치의 존재를 인정하기 어려움은 부정할 수 없다. 결국 위서일 가능성이 높으므로 ㅜㅜ 환단고기 따위야 차원이 다르니 환단고기 얘기는 넣어두고. 그렇기는 하지만 화랑세기에 의존하지 않고도 향가 작가의 실존인물설을 주장할 만한 주장이 아예 없어지지는 않는다. 최소한 삼국유사만 참고한다 쳐도 모죽지랑가의 작가와 같이 차자명으로 된 실존인물이 혼재해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신라가요에 부수된 산문기록의 다수가 역사의 설화화로 보여지는 이상, 향가의 작가층이 허구로만 구성된건 아니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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