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무위키
조무위키
둘러보기
대문
최근 바뀜
임의의 문서로
미디어위키 도움말
도구
여기를 가리키는 문서
가리키는 글의 최근 바뀜
특수 문서 목록
문서 정보
행위
문서
토론
편집
역사 보기
육진
편집하기 (부분)
경고:
로그인하지 않았습니다. 편집을 하면 IP 주소가 공개되게 됩니다.
로그인
하거나
계정을 생성하면
편집자가 사용자 이름으로 기록되고, 다른 장점도 있습니다.
스팸 방지 검사입니다. 이것을 입력하지
마세요
!
== 개요 == '''六鎭'''<ref>현지에서는 '''눅진'''이라고 말한다.</ref> [[함경북도]] 북부 끝자락에 위치한 6개 고을을 일컫는다. [[부령군]], [[회령군]], [[경흥군]], [[종성군]], [[경원군]], [[온성군]]이 여기에 속한다. 조선 초기 북진 정책의 목표가 되었던 곳으로, [[세종대왕]] 시기 4군6진 개척으로 조선령으로 들어왔다. 서울에서는 지도 상의 직선 거리로 [[제주도]]보다 먼 지역이며 [[여진족]]들의 잦은 왕래 및 침입, 그리고 혹독한 기후로 악명이 높았다. 그 때문에 사민정책으로 여기에 이주한 남부민들이 큰 고통을 겪었고 조선시대 단골 [[유배]] 코스로 남해안 섬 지역, [[삼수갑산]]과 함께 애용되기도 하였다. 조선시대 후기부터 [[두만강]]을 끼고 만주, 연해주 등을 건너가며 만주족이나 청나라 사람들과 밀무역을 하는 이들이 많았으며 20세기 초 일제의 침략과 [[적백내전]] 등으로 혼란스러운 틈을 타 이를 노린 초적들이 활개치기도 하였다. 뿐만 아니라 구한말부터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이 지역 주민 다수가 [[연변]]이나 [[연해주]] 등지로 대거 이주하였다. 그래서 [[연변]] 일대 [[조선족]] 다수는 해당 지역에 살았던 조상을 두고 있다. 북괴 치하에서는 [[국군포로]]와 [[숙청]] 당한 정계 인사 등을 이곳으로 유배보냈으며 이들에게 강제노역을 시키기 위해 [[아오지 탄광]], 회령 전거리 수용소(12호), 창평 수용소(12호, 폐지), 종성 수용소(13호, 폐지), 회령 수용소(22호, 폐지), [[청진시]] 수성 수용소(25호), 온성노동단련대등의 수많은 [[정치범수용소]]들이 설치되었다. 1990년대 이후에는 회령 등지가 [[탈북]]의 성지로 떠오른 바 있다. 두만강 상류 지역은 겨울에 얼어붙을 경우 국경경비대에 발각되지 않는 한 건너기가 용이할 정도로 폭이 좁은 까닭이다. 하지만 두만강 범람으로 큰 피해를 보는 경우도 잦다. 해당 지역 대부분은 서울을 중심으로 한 중부지방 방언과 현저한 차이가 드러나는 [[육진 방언]]을 사용하며 육진 방언권에서 제외되는 경우가 많은 부령군이나 경흥군, 동해안([[나진]]으로 분리된 지역) 지역도 서울 등지와 큰 차이가 나는 함북 방언이 쓰였다.
요약:
조무위키에서의 모든 기여는 CC BY-SA 4.0 라이선스로 배포된다는 점을 유의해 주세요(자세한 내용에 대해서는
조무위키:저작권
문서를 읽어주세요). 만약 여기에 동의하지 않는다면 문서를 저장하지 말아 주세요.
또한, 직접 작성했거나 퍼블릭 도메인과 같은 자유 문서에서 가져왔다는 것을 보증해야 합니다.
저작권이 있는 내용을 허가 없이 저장하지 마세요!
취소
편집 도움말
(새 창에서 열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