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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언제부터 대중화되었는가? == 어떤새끼가 [[반인반신]] 드립쳤는데, 그새끼 생전에는 삼겹살은 고사하고 생고기 구이자체를 아주 싸구려로 최급하고 고기굽는다 = 양념재운 고기를 굽는다로 생각했을정도로 양념갈비를 즐겨먹었다. 고기를 양념에 재우는 것은 고기의 부패를 막고 누린내를 빼기위한 일종의 발효였는데 잠깐먹을 고기를 위해 밥반찬으로도 먹는 간장을 고기에 희생하는게 쉬운일인가? 게다가 저때는 위생도 노애미라 생고기는 기생충과 벌레로 쩔여져있었다. 그래서 [[양반]]님들은 양념에 재운 [[불고기]]나 고깃국만 먹고 생고기는 아랫것들이나 먹고 병걸리는 고기라고 생각하면서 입에도 안댔다. 이러한 생각은 고대부터 시작해서 데미갓이 [[김재규|재규어]]에게 총맞고 뒤지기 전까지 유지되었다. 66년생인 시인 류근이 어린시절 아빠가 성공했을때 고깃집에서 배부를때까지 갈비를 먹었다고 회고했을정도로 양념갈비는 고급취급을 받았다. 생고기구이는 데미갓시기 고도성장을 거듭하던 [[일본]]의 넘쳐나던 고기수요만족<ref>사실 [[일제강점기]]때도 일본내에서 소고기 수요가 늘어남에 따라 조선을 소고기 생산처로 삼은 전례가 있었다. 문화통치시절에 [[설렁탕]]이 서민음식급으로 대중화된것도 이때문에 일본인들이 안먹던 소머리등 소부산물들이 우육생산량이 늘어남에 따라 조선에도 풀렸기 때문이었다.</ref> 을 위해 한국이 생산량을 늘렸던 육류가 조금씩 풀리면서 퍼지기 시작했는데, 이때도 생고기구이는 [[광부]], [[대학생]], [[군바리]], [[노동자]]들이나먹던 싸구려 취급이었다. 생고기구이의 이미지가 떡상한것은 [[냉장고]]가 대중화되고 미국 바베큐문화가 일본에서 마개조된 로스구이문화가 한국에 들어온 [[박정희]]시기이후였다. 로스구이문화가 퍼진뒤에도 삼겹살은 싸구려취급이고 다른나라처럼 [[목살]]이나 [[등심]]을 최고로 쳤다. 그럼 삼겹살이 대중화된건 언제냐? 바로 전탱크가 [[6월 항쟁|죽창]]맞고 쫓겨나고 [[노태우|보통사람]]을 지나 [[YS]]가 머통됬을때 [[직장인]]들이 솥뚜껑삼겹살을 회식으로 즐겨먹기시작하면서부터였다. 근데 그때도 삼겹살이 대박난것이 처음에는 월급쟁이들이 돈이어딨어? 싼 삼겹살이나 구워먹고 술이나빨자 이런 개념으로 유행한건데 가성비때문에 그냥 회식으로도 너도나도 삼겹살을 먹으면서 삼겹살이 순식간에 대박이 터지면서 지금 우리가 잘 아는 삼겹살 좋아하는 한국이 만들어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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