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무위키
조무위키
둘러보기
대문
최근 바뀜
임의의 문서로
미디어위키 도움말
도구
여기를 가리키는 문서
가리키는 글의 최근 바뀜
특수 문서 목록
문서 정보
행위
문서
토론
편집
역사 보기
남명
편집하기 (부분)
경고:
로그인하지 않았습니다. 편집을 하면 IP 주소가 공개되게 됩니다.
로그인
하거나
계정을 생성하면
편집자가 사용자 이름으로 기록되고, 다른 장점도 있습니다.
스팸 방지 검사입니다. 이것을 입력하지
마세요
!
== 남송이랑 다르게 단명한 이유 == 1. [숭정제의 트롤] 숭정제가 북경에서 자살을 안하고 남경으로 런했으면 남송처럼 사직을 보존할수 있었다.특히 남경, 강남에는 친명 세력들이 충분했고 당시 후금,청나라 군은 몽골군 요나라군이 북송,남송치려고 오는거에 비하면 좆밥이었다. 만약 숭정제가 자존심 다버리고 송고종 마냥 런했으면 후계문제로 지들끼리 싸우지는 않았을테니 해볼만했다. 2. [황족들 집안싸움] 남송은 그래도 송고종 중심으로 지역호족과 귀족,황족들이 뭉쳐서 단합이라도 했지, 명황실은 개판 5분전이었다. 지들끼리 자립으로 우후죽순 다 일어났다. 결국 정성공 영력제를 제외한 나머지 얘들은 청나라한테 그대로 진압당한다. 3. [오삼계 트롤링] 말이 필요없다 이자성은 최소한 오랑캐 만주족들과는 손은 잡지않았고 북경에서 청군+오삼계군이랑 싸우다 패해서 쉴드라도 가능한데 오삼계는 시발 ㅋㅋㅋㅋ 그러고 나중에 삼번의 난으로 통수 치다 망한다. 4. [청나라 인재풀 및 대외상황] 인재풀은 ㅆㅅㅌㅊ 였고. 몽골은 웬만한 국가는 다 건드리고 다녀서 전선이 넓었고 거란은 서하+고려+여진+몽골+남송 이라는 5중전선으로 병력을 분산배치했으나 청나라는 그런거 없었다. 조선의 조기 서렌으로 통수 맞을 염려가 사라졌고, 몽골은 이당시에 개병신이었다. 청나라는 조선의 조기서렌으로 조선 전선은 정리가되 통수 맞을 염려가 없었다.
요약:
조무위키에서의 모든 기여는 CC BY-SA 4.0 라이선스로 배포된다는 점을 유의해 주세요(자세한 내용에 대해서는
조무위키:저작권
문서를 읽어주세요). 만약 여기에 동의하지 않는다면 문서를 저장하지 말아 주세요.
또한, 직접 작성했거나 퍼블릭 도메인과 같은 자유 문서에서 가져왔다는 것을 보증해야 합니다.
저작권이 있는 내용을 허가 없이 저장하지 마세요!
취소
편집 도움말
(새 창에서 열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