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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사 == 유럽에서는 3만년 전 석기시대 유적에서 불에 그을린 개뼈다귀가 발견된 적이 있다. 구워 먹었다는 증거다. 중국은 사마천의 「사기」에 따르면 춘추전국시대부터 먹었던 것으로 보인다. 한국에서는 삼한에서 개고기를 먹었다는 명백한 물증들이 확인되었다.<ref>[[경산시]]에서 삼한시대 귀족무덤을 발굴했는데, 거기서 개고기요리를 담은 항아리가 발견되었다.</ref> 개가 푸줏간에 걸려 있는 것으로 보이는 고구려 고분벽화가+고구려계 당나라 군인이던 고선지가 동료에게 '개의 똥과 창자를 먹는 고려인'이라는 욕을 들었던 것때문에 학계는 고구려또한 개고기를 먹었던 것으로 보고 있다. 근데 고구려는 수렵사회라서 개고기 뿐만 아니라 양고기, 돼지고기, 꿩고기 등 다양한 고기를 먹었다. 고구려는 지리적 요건상 농사를 짓기에는 불리하기때문에 닥치고 수렵생활에 의존해야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중국에서 불교가 들어오게 되고 불교의 주요 율법에 살생을 금한다는것 때문에 육식을 자제하게 되었고 고려시대가 되자 고려는 아예 불교국가여서 몽골이 침입하기 전까지는 일반 백성들은 돼지를 도축하는 방법도 모르고 있었다. 꿩과 같은 새고기는 잡기도 힘들뿐더러 존나게 귀하고 양도 적어서 일반 백성들은 강제로 채식주의자가 될 수밖에 없었다. 바닷가에 살지 않는 백성들은 물고기조차 먹기 힘들었다. 이러한 와중에 그나마 구하기 쉬운 고기가 바로 개고기였다. 집집마다 개 한마리씩은 키우고 있었고 개 자체가 주인에게 충성을 하기 때문에 잡는데 어려움도 없었다. 그 문화가 그대로 몇백년동안 이어져 내려온게 보신탕 문화다. 이 보신탕문화는 [[양반]]이라는 높으신분들에게도 빠르게 확산되어 [[김안로]]가 뇌물로 개고기를 받고 [[흑산도]]로 유배가 짱박혀있던 [[정약전|형]]을 위해 [[정약용]]이 [[박제가]]에게서 개고기 요리법을 배워서 가르쳐주기도 하고 [[정조|왕]]님이 개고기에 환장하는 일까지 생기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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