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티안 비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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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수생활[편집]
1991년 토리노에서 선수 생활을 시작했는데, 이때부터 터프한 성질때문에 매년 팀을 갈아 치웠다. 처음으로 주목받은 것은 1993년 세리에 B소속 라베나에서 32경기 12골로 주목받으면서였다. 이때부터 세리에 빅클럽에 관심을 받은 비에리는 1996년 유벤투스에 입단해 알란 복시치와 투톱을 짜면서 주목을 받았고 유벤투스에서 23경기 8골을 넣었지만 이에 만족하지 못한 비에리는 스페인 아틀레티코 마드리드로 이적한다.
97-98시즌에 아틀레티코 마드리드 임대 시절에 드디어 대폭발하여 24경기 24골을 기록하여 한시즌만에 피피치를 기록했다. 뤼트 판 니스텔로이또한 25골로 한시즌만에 피치치를 차지하였지만, 출장수로 보면 니스텔로이는 더 많은 경기에 출장했다. 98-99시즌에 라치오 이적을 통해 세리에 A에 돌아온 비에리의 전성기는 인테르 시절로 1999년 이적했는데 99년 당시 이적료가 무려 5000만 달러였다.
인테르나치오날레에서의 데뷔경기였던 베로나전에서 해트트릭을 기록하며 화려한 출발을 했지만, 불행하게도 시즌 후반기에 또다시 부상을 당하며 20경기 출장(13골)에 그쳤다. 유로2000에도 참가하지 못한 것은 당연지사. 기나긴 부상 끝에 2000-2001시즌 초반에 그라운드로 복귀해 시즌 중반에 또한번 경미한 부상을 당하긴 했지만, 별탈없이 27경기에 출장해 18골을 성공시켜 자신의 세리에 A 한시즌 최다출장과 최다골 기록을 세우며 부활을 시위를 당겼다.
아니나다를까, 다가온 2001-2002시즌. 부상을 완전히 떨쳐버린 것은 아니지만 어느때보다도 완벽한 컨디션으로 돌아온 비에리는 25경기에 무려 22골을 퍼부어 세리에 A 득점 3위에 올랐다. 적어도 5경기만 더 뛰었더라면 누가보나 득점왕에 올랐을 놀라운 활약이었다. 이 시기 팀동료인 호나우두와 함께 우주를 정복할 투톱으로 평가 받았으나 동시에 부상을 당함.
2002년 월드컵에도 참가했으며, 이탈리아의 주전 스트라이커로서 크게 활약했지만 한국팀에게 패하는 바람에 8강 진출에 실패했다.
05-06시즌 아드리아누에게 밀려 AC 밀란으로 이적했으나, 역시 알베르토 질라르디노에게 밀려, 반년만에 AS 모나코행, 모나코에서는 잘했으나 부상으로 2006 FIFA 월드컵에 불참. 자국의 월드컵 우승을 지켜봐야만 했다.
06-07시즌 아탈란타 BC와 계약하면서 주급 100만원+ 옵션으로 1골당 1억보너스 지급이라는 해괴망측한 계약을 체결하지만, 역시나 부진하였다.
07-08시즌에 또다시 피오렌티나로 이적하여, 부활의 날개짓을 펴는듯 하였으나, 결과적으로는 콰밥만훈의 수장인 히카르두 콰레스마가 없었다면 2009년 황금 쓰레기통 상을 수상할 뻔한 실패한 시즌.
08-09시즌 또다시 아탈란타로 이적한지 몇개월 후 방출되어 겨울 이적시장때, 여러 브라질 클럽,토트넘 핫스퍼의 제의를 모두 물리치고 은퇴하였다.
16- 중국 리그를 통해 현역 복귀를 선언하였다.
수상[편집]
세리에 A 득점왕 : 2002-03
세리에 A 올해의 선수상 : 1999
프리메라리가 득점왕 : 1997-98
ESM 올해의 팀 : 1997-98, 2002-03
피치치 : 1997-98
FIFA 100 : 2004
FIFA 월드컵 실버슈 : 1998
FIFA 월드컵 브론즈슈 : 2002
2002년 FIFA 월드컵 맨 오브 더 매치 : vs. 에콰도르 (조별리그)
올해의 이탈리아 축구선수 : 1999, 2002
플레이스타일[편집]
강력한 왼발슛팅과 몸싸움을 주무기로 삼았고 이외에 헤딩,스피드,드리블 다 준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