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국익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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帝國益聞社
1902년 고종이 만든 한국 최초의 근대식 방첩기관이며, 국정원의 기원이다.
1907년 고종이 퇴위되면서 지원이 끊겨 자연스레 해체되었으나, 1920년에 일본한테 걸렸다는 기록이 있는 걸 봐서는 계속해서 활동을 수행한 걸로 보인다.
임무로는 각국 공사관과 개항장에 요원을 파견하여 국내 체류 외국인을 감시했고
요원들은 통신원, 밀정, 밀사 등의 이름으로 고종 황제를 보필하면서 국내 및 일본, 청나라 등의 주변국 정보를 수집하여 국권회복을 위해 노력했다.
특히 서방국가에 요원들을 보내 을사조약이 무효임을 선언하는 친서를 전달하여 세계 여론형성을 유도했는데 큰 효과는 보지 못 했다.
상세[편집]
제국익문사 비보장정에는 23개조의 조항으로 비밀활동의 지침이 상세하게 담겨있다.
수장을 독리라고 하며, 아래에 3명의 장교(사무, 서기, 서신)들이 있다.
총 61명의 정보원이 있었는데, 당시 제국익문사가 신문사(통신사)로 위장했기에 이들은 기자로서 활동을 했다
- 상설 통신원- 16명 (서울, 지방)
- 보통 통신원- 15명 (서울
- 특별 통신원- 21명 (외국 공관, 일본의 군사, 항만 시설 등)
- 해외 통신원- 2명 (도쿄,상하이), 9명(오사카, 나가사키, 북경, 블라디보스토크 등)
그외 지원활동을 하는 임시 통신원이 있고, 해외 정보는 72개로 분류되어 있었는데 이중 16개가 일본쪽이였다.
천상의 컬렉션이란 TV프로에서 고종이 밀서를 보낼 때 썻던 옥새를 소개했다. 다른 옥새에 비해 크기가 1/4 수준이다.
비밀활동의 사용하는 밀지는 화학비사법으로 붓글씨가 아닌 화학잉크를 사용하여 불빛을 비춰야 읽을 수 있게 치밀하게 준비했으며, 성총보좌라는 문양으로 고종만 볼 수 있도록 보안조치를 했다.
헤이그 특사도 몰래 보내서 걸린 건데 제국익문사 요원들이 해외로 가서 고종의 친서를 전달하는 데에는 일본의 감시망에 걸린 적이 없다.
오죽했으면 1920년에 순종한테 보고하다 걸려서 해체되기까지 일본도 몰랐었다. (정확히는 을사오적에 스파이가 붙었다는 걸 인지했지만 제국익문사라는 건 눈치 못 챘다)
그리고 아직까지도 제국익문사에서 활동했던 요원들 이름은 단 한 명도 알아내지 못 했다. 단순하게 유실된 게 아니라 이름은 있는데 암호화되어 있어서 현재까지 해독을 못 했다.
어떻게 보면 그만큼 암호체계와 비밀성이 뛰어났다는 증거이긴하다.
그외 독립운동가들에게 정보를 제공하여 친일파와 일본고위직 처단에 관여했다는 소문도 있고, 1920년 해체 이후 임시정부로 넘아갔다는 소문도 있다.
기타[편집]
고종 직속인 제국익문사와 함께 대한제국군 소속 정보기관 '상무영"이 있었다.
신문사로 위장할 정도로 지원이 어느정도 있던 제국익문사와 달리 지원을 못 받은 상무영은 그냥 보부상(보따리상)을 하면서 정보를 수집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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