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오쯔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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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미안합니다. 동지들, 제가 너무 늦게 왔지요. 상황이 아주 안 좋습니다. 제발 광장을 떠나시오! |
” |
— 방북이후 북경으로 돌아와 시위대에게 울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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趙紫陽, 자오쯔양
천안문 사태당시 헬지나공산당에서 호요방과 함께 몇안되었던 개념인들중 한명.
허난성 활현출신이지만 중딩때 호북성으로 내려왔고, 그 곳에서 정치활동을 시작해 한동안 출세가도를 걸었다. 문혁때 몇년 나가리먹고 공장에서 일한것 외에는 엄청 높은자리로 갔다.
자리가 자리였던 덕분에 민주화에 대해서 호요방에 비해 좀 보수적인 태도를 보였다. 하지만 등소평새끼와는 달리 시위대를 말로 달래주는 선으로 끝내려고 했다. 그래서 천안문사태때 군의 유혈진압을 반대한 거였고.
천안문사태때 군의 개입을 막으려고 온갖 수를 다썼지만 결국 실패로 돌아가고[1] 본인도 숙청당하고 가택연금을 당했다.
그래도 군의 개입을 막으려는 노력덕분에 공산당 개새끼를 외치는 중공인, 대부분의 홍콩인과 대만인들에게 엄청난 존경을 받았고 2005년 병으로 사망했을때 추모제까지 열어줬다.
습근평의 애비 습중훈이 이 양반하고 아주 친하게 지내던 사이라 습근평 집권이후 복권될거라고 생각하던 짱깨들이 있었지만 다들 알다시피 근평이성격이랑 행보때문에 헛된 기대로 끝나버렸다.
공산당 자체가 망할때까지 복권될일은 없을 것으로 보인다.
가택 연금 도중에 회고록을 썼는데 몰래 국외로 보내서 출판되었다. 이 덕분에 지금 존나 주작질하는 중공 짱깨들과 그넘들 빠는 친중병신들의 천안문 항쟁 왜곡을 막는 효과적인 방패역활을 하고 있다.
- ↑ 위에 있는 말도 방북(시위터지기 한참전에 계획된 것이라 연기가 불가능했다고 한다.)이후 답이없다는걸 알고 시위대에게 한 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