쑹자오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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ㄴ한국의 독립운동을 지원했다.
송교인(宋敎仁) | |
이명 | 자 둔초(鈍初), 호 돈초(敦初) 필명어부(漁父) |
출생 | 1882년 2월 18일 호남성 상덕부 도원현(桃源縣) |
사망 | 1913년 3월 22일 상하이 갑북(閘北) 호녕철로병원(滬寧鐵路)[1] |
국적 | 청나라, 중화민국 |
경력 | 중화민국 국무총리(1912.12~1913.3) 농림총장(1912.3~1912.6.27) 국민당 대리이사장(1912~1913) |
학력 | 와세다대학교, 호세이 대학 중퇴. |
청말민국초의 정치인.
한국에선 별로 안유명하지만 이래뵈도 신해혁명당시 혁명파를 이끄는 정치거물이었고 지지율로 따지면 손문을 아득히 능가하는 사람이었다. 신해혁명이후 수립된 난징 임시정부에서 법제국 국장을 맡았는데, 쑨원놈이 원세개에게 총통직을 넘겨줄 때 빡쳐서 쑨원이 던져준 농림총장직을 사퇴, 국민당에서 활동했다.
대통령제를 고수했던 쑨원과 달리 이양반은 의원내각제를 주장했는데, 이는 원세개씹쌔끼가 무소불위의 권력을 행사하자 저 총통새끼의 권한을 줄이기 위해 의원내각제를 고수했다고 한다. 하지만 손문이 원세개를 족치기 위해 무력을 쓰려고 하자 법에 따라 대결해야 한다고 했다가 혁명우파로 낙인이 찍혔고 1913년 3월 연설도중 원세개의 사주를 받은 킬러에게 총격을 당하고 사망했다. 이후 제 2차 혁명이 일어났다.
- ↑ 現 상하이 제18 인민병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