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화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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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그대로 수원에 위치해 있는 성곽. 현재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817호로 등재 되어있다.
유교탈레반 칼리프 정조가 본진 옮기려고 만든 성. 거중기로 만들었다 하는데 사실 거중기는 수레에 돌을 옮기는 기구지 크레인 같은 기중기가 아니다.
화기에 대비한 보방식 성이기에 무너지지 말라 내부에 흙으로 받친 형태다. 다만 15세기에 서양은 수학적으로 고안된 성형 스타 포트가 등장했기 때문에 이게 딱히 과학적이라고 보긴 힘들다. 머스킷과 화포를 미친 듯이 쏴대는 서양과 아직까 전근대적 전투가 주로 벌어졌던 동양을 직접 비교하는건 무리지만 그것마저도 수원화성 완공 22년뒤 고폭탄의 등장으로 스타포트마저 종말을 고했기 때문에 시대에 뒤떨어진 성인건 변함이 없다.
당시 조선이 갖고있던 모든 기술을 동원하여 설계, 건출되었지만 여기서 공성전이 벌어진적은 없었고,지어진지 154년 만에 내전으로 포격 쳐맞고 현재는 관광지로나 써먹고 있다.
그래도 정조가 아름다운게 적을 이긴다고 아득바득 우겨가며 지은 덕분에 등산하는 것과 다름없는 산성과 다르게 수도권 내의 랜드마크로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망루겸 정자역할을 하는 방화수류정만 봐도 방어적 목적 외에 미적으로도 나름 신경을 쓴것을 알수 있는데 솔직히 창덕궁, 종묘와 더불어 조선에서 입장료가 안 아까운 유적이기도 하고 경주처럼 꼭한번 가보게될 곳이다.
수원화성 성곽은 전체길이 5.7km로 대략 2시간 30분 정도면 일주할 수 있다.
적당히 운동 겸 등산 겸, 경치 구경겸해서 돌아보기 좋고 가을 밤에 풍경이 절정을 이룬다.
축조 과정[편집]
화성의 진짜 가치는 화성성역의궤[1]에 성이 만들어진 과정과 목적, 건축일지 등을 아주 상세하게 적어두었다. 덕분에 수원화성이 한국전쟁 때 일부가 박살났음에도 100% 전통적인 방식으로 복원이 가능하다. 유네스코가 수원 화성을 세계문화유산으로 넣은 것도 이렇게 박살나도 복구가 가능하다는 점에 감명을 받아서다.
정조임금은 2년여간의 화성 건축동안 동원된 근로자들에게 조선 역사상 최초로 임금을 지급했다고 한다.
일부 시설물중 보물, 사적으로 지정된 것들[편집]
- 수원화성 - 사적 제3호. 아래 시설물들 모두 통틀어서 지정되었고 유네스코 또한 마찬가지다.
- 화성행궁 - 사적 제478호
- 팔달문 - 보물 제402호
- 화서문 - 보물 제403호
- 방화수류정 - 보물 제1709호
- 서북공심돈 - 보물 제1710호
- 화령전 운한각·복도각·이안청 - 보물 제2035호[2]
화성행궁[편집]
팔달산 아래에 궁궐이 있는데, 이곳이 화성행궁이다. 평시에는 수원유수부의 관청이였다가, 정조의 능행차 때면 수원유수는 자기 집무실을 임금님에게 내어주어야만 했다. 정조는 능행차때마다 화성에 내려오면 행궁에서 수일동안 머무르면서 각종 민원 해결은 물론 경로잔치와 과거시험을 베풀었다. 그뿐만이 아니라 연무대(동장대)까지 나가서 군사훈련과 무과시험을 주관할 정도였으니 뭐.
지금의 행궁 건물은 낙남헌을 제외하고 쪽바리들이 모조리 파괴했는데, 1980년대부터 복원사업을 추진해서 2003년에 일반인도 구경할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아직 일부분은 복원을 진행중인데, 이것때문에 옆에있던 신풍초등학교가 광교로 옮겨가게 되었고, 아직도 싸우는 중.[3]
각주
- ↑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유물 안내
- ↑ 2019년에 화령전 안의 건물들이 보물로 지정되었다.
- ↑ 한국일보 [ https://www.hankookilbo.com/News/Read/201606190725560005 경기 첫 공립교... 화성행궁 복원에 밀려 철거 위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