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와카미 겐신
조무위키
가와카미 겐신 川上 憲伸 Kenshin Kawakami | |
기본 정보 | |
생년월일 | 1975년 6월 22일 |
출생지 | 토쿠시마 현 토쿠시마 시 |
국적 | 일본 |
신장 | 179cm |
체중 | 90kg |
선수 정보 | |
입단 | 1997년 주니치 역지명 |
투타 | 우투우타 |
포지션 | 투수 |
학력 | 도쿠시마 현립 도쿠시마 상업 고교-메이지 대학 |
경력 | 주니치 드래건스(1998~2008, 2012~2015) 애틀랜타 브레이브스(2009~2010) |
소개[편집]
2000년대 주니치 선발진의 한 축을 맡았던 우완 투수
퍼펙트를 사정권에 두고 오푼이에게 홈런을 얻어맞은 투수이기도 하다.
주니치 시절[편집]
1998년 데뷔하자마자 14승 6패 era 2.57의 호성적을 찍으며 화려하게 데뷔에 성공. 그 해 신인왕을 혈통님과의 경쟁 끝에 획득한다.
그러나 이후 2년은 부진에 허덕이며 지냈다. 2000년엔 난청으로 고생하기도 하며 힘든 시즌을 치렀다.
어깨 부상으로 이탈한 2003년을 제외하면 2001년부터 2008년까진 2~3점대 평균자책점을 찍으며 선발 투수로서의 역할을 잘 해 줬다. 2002년엔 교진을 상대로 노히트노런을 기록하기도 했다.
2008시즌 이후 해외 진출을 선언하고 퐈를 행사했고 애틀랜타가 데려갔다.
메이저리그 진출[편집]
2009년 초반엔 리그에 적응이 덜 된건지 ㅈㄴ 뚜들겨 맞으며 평균자책점이 7점대를 상회했지만 5월 이후로는 안정세를 찾아가면서 나름 잘 던져줬다.
특히 당대 체고의 투수들이던 할교수와 산타나와의 선발 대결에서 승리하기도 하면서 드래곤 슬레이어라는 별명까지 생기기도 했다.
당시 돌도끼의 에이스 핏챠인 팀 허드슨이 돌아온 후반기부터는 불펜으로 나와 더 좋은 모습을 보이며 평균자책점을 4점대 안으로 집어 넣었다.
2009시즌이 끝나고 어깨에 이상이 있는걸 발견하고 어깨에 부담이 덜한 투구폼으로 바꾸려는 시도도 하며 2010년을 맞이했지만...
1승 10패 era 5.15로 개좆망했다.
이후에는 마이너에서만 지내면서 재기를 노렸지만 결국 메이저리그 재입성에 실패했다. 2011년 8월 이후 마이너 성적이 16점대 평자에 whip이 2.5를 넘어가며 좆좆퇴물화가 진행중이었다. 쨌던 11월 다시 FA로 풀린 가와카미를 2012년 초 주니치가 데려왔다.
MLB통산 243.2이닝 8승 22패 1홀드 164K ERA 4.32
주니치 복귀[편집]
2012년 시즌 첫 등판에서 6이닝을 무실점으로 막고 느프브 복귀 후 첫 승을 거두며 아직 퇴물이 아님을 증명했지만 이후 부상으로 2군에 처박혔다.
2013년에도 부상이 발목을 잡아 많은 이닝을 소화하지 못했고 2014년엔 성적마저 더 떨어지며 급속도로 퇴물이 되었다. 2군에서도 10점대로 불타오르며 추해질대로 추해졌으나 선수생명을 더 이어가게 되었다.
하지만 2015년에도 오른 어깨를 다치며 1년을 통째로 날렸고 그해 시즌 종료 후 방출통보를 받고 팀에서 나왔다.
방출 후[편집]
2016년에는 현역 연장을 하려고 재활도 하면서 평론가도 하고 객원 해설도 하며 지냈다. 독립리그에서 플레잉코치도 겸하며 지냈지만 2017년 3월 은퇴를 발표하고 은퇴했다.
은퇴 후에는 야구 해설가, 평론가를 하고 있다.
NPB통산 275경기 1731이닝 117승 76패 1홀드 1세이브 1381K ERA 3.24
이승엽과의 악연[편집]
이승엽하고는 안 좋은 기억이 있다. 이승엽이 지바 롯데에서 뛸 당시 교류전에서 가와카미는 퍼펙트를 사정권에 두고 있었는데 이승엽을 상대로 볼카운트가 3볼 1스트로 불리하게 작용되고 있었다. 이미 노히트노런을 기록한 가와카미는 퍼펙트에 욕심이 났는지 피하는 승부를 안 하고 정면승부를 했는데 이승엽이 마린 스타디움 백스크린으로 사라지는 솔리런을 때려버렸다.
[https://www.youtube.com/watch?v=
당시 영상
이후 교진으로 이적한 이승엽을 상대로 그날의 분통함을 표출하려는 듯한 빈볼을 던지기도 했는데 우리의 오푼갑은 전혀 개의치않고 나고야돔 상단에 꽂히는 투리런을 쏘아올렸다.
[https://www.youtube.com/watch?v=
당시 영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