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티브 잡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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ㄴ 고인드립 잘못하면 관속에서 널 명예훼손으로 고소할지도 모른다
ㄴ 앱등이고 삼엽충이고 뭐고 이분 없었으면 지금의 스마트폰은 없었다.
답은 잡스다.
애플의 설립자[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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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인생은 제1막 (1976년~1985년), 제2막 (1985년~1997년), 제3막 (1997~2011년) 으로 나누어지게 된다.
스티브 잡스는 1955년 태어나 클라라 잡스와 폴 잡스에 입양되게 된다. 그는 채식주의자였으며, 어려서부터 1960년대 히피 문화의 영향을 받아 반항적인 성질을 띠게 되었다. 선불교와 LSD로 그를 물들이기도 하였다. 애플 I을 출시하고 회사의 필요성을 느낀 잡스는 스티브 워즈니악과 애플을 설립하게 된다. 그리고 첫 성공작을 출시하는데 그게바로 애플 II다.
그러나 뒤이어 애플 III와 리사를 출시하지만 실패를 맛보게 된다. 1983년 잡스는 펩시의 CEO인 존 스컬리를 영입한다.
1984년 1월 맥월드 행사에서 매킨토시를 발표하며 엄청난 성공을 거두게 된다. 20대 후반에 잡스는 컴퓨터 세계관을 변화시킨 것이다.
그러나 1985년 존 스컬리와 회사의 운영방식으로 충돌하며, 결국 9월 18일에 자신이 설립한 회사에서 추방당하고 만다.
그의 인생 2막은 넥스트를 설립함으로써 시작한다. 애플을 떠난 후 그는 1988년 넥스트컴퓨터를 내놓지만 시장에서 화려한 실패를 맛보게 된다. 그 이유는 넥스트컴퓨터와 호환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마이크로소프트의 설립자 빌게이츠와 연성계로 묘사되기도 하며, 별 기대없이 사들였던 회사 픽사에게서 가능성을 보고 전폭적인 투자를 하는 등 영화계와 애니메이션 업계에 미친 영향도 무시 할 수 없다. 토이 스토리로 인해 그는 다시 날아오르기 시작했다.
1997년 길 아멜리오가 사퇴하고 잡스가 다시 애플의 (i)CEO로 돌아간다. 그러고는 복귀작인 아이맥을 출시한다. "Think Different" 라는 슬로건은 엄청난 반향을 일으켰다. 파워북 G3, 파워북 매킨토시 G3, 아이맥, 아이북을 출시하고 곧 이어 홈런을 친다. 바로 2001년 출시한 아이팟이다. 아이팟은 기존에 있던 MP3의 용량 부족을 해결함과 동시에 불법 다운로드를 막았기 때문이다.
2007년 잡스는 또다시 홈런을 친다. 컴퓨터와 MP3와 터치스크린을 하나로 합친 혁신적인 제품, "아이폰"을 출시한다. 아이폰은 예수폰으로도 불리며 불티나게 팔려나갔고, 2010년 아이패드를 출시하면서 무한한 가능성을 보게 해주었다.
그는 총 세 차례에 암에 걸렸는데, 첫번째는 2003년 9월에 발견된 완치율이 높은 희귀성 종양이었다. 그러나 현실 왜곡증을 가진 잡스는 9개월 동안 버티다 2004년 7월 변형 휘플 수술을 받고 완치된다. 암은 총 세 군데로 전이되었다. 두번째는 그가 10대부터 실시해온 섭식 문제가 유발한 암이었다. 2009년 3월 이식 수술을 통해 완치했다. 2011년 여름에 또다시 암에 걸리게 되는데, 췌장암이었다.
20세기 가장 뛰어난 장사꾼들 중 한명으로 평가 받으며 프레젠테이션의 신으로 추앙받는다. 빌 게이츠와 함께 IT 업계의 여명기에 자수성가한 입지전적인 인물로써, 트렌드를 읽고 그 흐름을 바로 자사의 제품에 적용시키는 뛰어난 사업수완과 경영철학 만큼은 빠와 까를 불문하고 인정할 수 밖에 없는 잡스의 장기였다고 할 수 있다.
애플 말아먹은 1순위
아이폰에 3:2 화면비를 쳐넣고 ios 디자인을 스큐어모피즘으로 하는 만행을 저질렀다
얼마나 쓰레기인지 궁금하면 ios5 이전을 보자
잡스 있었을 때는 지금처럼 애플이 시가총액 1위가 아니었다
다행히 팀쿡이 CEO 되고나서 애플은 시가총액 1위가 됐고 잡스 죽었을 때보다 현금 보유량과 매출은 3배가 되었다
2011년 말 누적 1억대의 판매고를 올린 아이폰은 2016년 7월 누적판매량 10억대를 넘어섰다
문명5에서는 위대한 상인으로 등장한다.
말이 안통하는 잡빠들에게 팩트폭행[편집]
잡스 죽고 애플 매출과 현금 보유량은 3배가 됐고 잡스 죽었을 당시 시가총액 2위였던 애플은 단일 주 기준 시가총액 1위 회사가 됐고 잡스 죽은 해에 누적판매량 1억대 돌파했던 아이폰은 2016년 7월에 누적판매량 10억대를 넘으면서 빌리언셀러가 됐다.
팀 쿡의 3D 터치 픽앤팝 (peek and pop) 기능, 퀵앤션 기능, 주위의 온도를 파악해 1000여 가지의 색조합을 이루는 True Tone 플래시 이런게 혁신이지 잡스는 뭐했냐 3:2 화면비나 스큐어모피즘 아이콘 같은 이상한 것만 고집하고 레티나 디스플레이 같은 거나 지입으로 혁신 혁신 거렸지
잡스는 5.5인치 아이폰을 만들다 죽었다[편집]
2011년은 다른 때보다 더 새로운 제품에 대한 조사가 활발한 때였다. ...그 해가 가기 전에 iPhone 6의 프로토타입 조상이 스튜디오에 놓였고, 그 프로토타입은 “4인치부터 6인치 이상까지 0.1 단위로” 화면이 탑재되어 있었다. … 아이브와 동료들은 향후 iPhone 6의 화면 크기를 결정하기 위해 프로토타입을 며칠 동안 들고 다녔다. “저희가 처음 괜찮다고 느꼈던 건 5.7인치였습니다.” 그는 회상했다. “그리고 하루 자고 나서 다시 돌아가 보면, 그냥 ‘아, 이거 너무 큰데.’ 싶었죠. 그리고 나면 5.6인치도 커 보였습니다.” (쿡이 그 과정을 설명하면서 “조니는 4.7과 5.5인치에서 벗어나지를 않았습니다.”라고 말했다.) 2011년이면 아이폰4S를 발표한 해이다(정확히 11년 10월). 그때 이미 애플은 아이폰6의 크기를 테스트하고 있었다. 애플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오래전부터 차곡차곡 준비해서 제품을 내놓는다. 새 제품이 나오면 어설픈 전문가들이 달려들어 각종 문제를 지적해도 애플 제품이 잘 팔리는 이유다.
https://brunch.co.kr/@gogoj2/33
스티브잡스는 2011년에 이미 5.5인치 아이폰6 플러스를 개발하고 있었다
아이폰6, 아이폰6 플러스가 진짜 스티브 잡스의 유작이다
아는놈은 다 알지만 잡스처럼 말바꾸기 잘하는 사람 없음
예로 앱스토어도 지가 반대했지만 1년만에 말바꾸고 아이폰3G에 도입함
고소왕[편집]
기존의 동일개념에서 만들어진 PDA폰의 실패를 발판삼아 멀티태스킹에 특화되고(지금에야 안드로이드에 멀티태스킹이 떨어진다는 평가를 받지 그당시 블랙베리, 윈모에 비하면 넘사벽이었다
벽돌같았던 PDA폰과 반대되는 개념의 휴대가 간편한, 아이폰을 만들어내기에 이른다. 이러한 시도를 기반으로 아이폰은 엄청나게 성장했으나, 안드로이드라는 개방성을 앞세운 카피열화판이 등장하고, 아이폰의 기기개념과 마케팅을 표절한 안드로이드 제조사들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삼성전자도 그 중 하나였다.
아이폰 4 시점에서 잡스는 되도 않는 디자인 특허를 갖고 고소를 날린다. 이 고소 대상인 특허라는 게 얼마나 좆도 아닌지 모르는 앱등이들은 잡스와 애플을 정의의 사도인양 빨아대고 있으나 자국 기업 실드질 쩌는 미국 외에는 거진 다 떡발리고 소송 비용만 날렸다.
이러한 정의구현을 하다 췌장암으로 잡스가 죽고, 어떤 개좆같은 게이가 앉아서 iOS7부터 안드로이드 진영을 대놓고 벤치마킹하는 바람에 잡스는 순식간에 잡네바야시 스ㅔ이콘이 되어버렸다. 그나마 팀 쿡은 지금까지 안드 진영에 대한 고소질이 병신 크리티컬이었음을 인정하고 상당수의 고소를 없던 일로 만들었다.
비판[편집]
고인드립은 되도록 하지 않는 게 나으니 괜히 드립 쳤다가 평생 까임권을 얻거나 사회적으로 비난받는 것에 대해서는 책임지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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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성이 좋지 않다는 말이 있다. 정의로움과는 일억광년정도 떨어진 삶을 살았다는 것.
사실 스티브 잡스가 자아도취에 자존감 개쩌는 자기중심적 또라이 천재의 모습을 잘 보여줬다.
그래서 자기가 뭔가 하나에 삘 받으면 그걸 밀어붙여야되고 주변인이 못 따라오면 무한정 채찍질을 갈겨댔다.
- 공동 창업자이자 절친인 스티브 워즈니악을 통수쳤다. 아타리에서 일할 때 게임기 설계를 단순화한 일로 보수 5,000달러를 받은 적이 있었는데 애초에는 똑같이 나누기로 하고서는, 실제로 작업을 혼자서 다 한 워즈니악에게는 겨우 700달러 받았다고 뻥 치면서 '약속대로' 반인 350달러만 떼어준 적도 있다. 또 스티브의 절친인 앤디 허츠펠드는 이렇게 말하기도 했다. "스티브는 의리가 없는 사람이다" 잡스는 1977년 대니얼 콧키에게 스톡옵션을 부여하지 않는, 그야말로 통수를 쳤다. 한마디로 재주는 곰이 부리고 돈은 주인이 번다는 대표적인 예
- 옛 동거녀 (크리스 앤)가 낳은 자신의 딸 리사(Lisa)가 찾아오자 동거녀와 잠자리를 함께하지 않았다고 부인했지만 나중에 사실을 인정했다. 하지만 리사는 딸로서 인정은 받았지만 자라는 동안 잡스한테 내놓은 자식 취급을 받으며 자라왔다고 한다. 한 언론은 "미국 남성의 27퍼센트가 잠자리를 같이했을 가능성이 있다"라고 오보하기도 했다. 결국 나중에 리사가 친딸임은 인정하고 가족으로 받아준다.
- 지가 만든 회사에서 정치질 하다가 쫓겨났다. -> 1985년 존 스컬리와의 갈등에서 이사회가 스컬리 편을 들어준뒤, 잡스는 애플에서 쫒겨나고 넥스트(NeXT)를 세운다.진짜 매킨토시팀과 리사팀 사이에서 분탕치다가 쫓겨난 거라 할말이 없다. 이때 스잡이 말한 '리사 팀, 너네는 정말 형편없어!'라는 말은 전설로 회자된다. 훌륭한 제품을 만들기 위해 동기부여를 할만한 수단은 얼마든지 있었겠지만 잡스는 극단적인 방법으로 팀원들을 자극했고, 결국 예산을 크게 초과하는 일이 발생하기도 했다. 또 그의 특유의 가치관이 드러나는 예중 하나가, 회의 도중 누가 화이트보드에 손대면 노발대발 하며 빼애액 거렸다는 사실은 유명하다. 픽사에서 누군가 화이트보드를 손대려고 했을 때 그만두라고 말했다. 좋게 말하면 독불장군, 자기 주장이 뚜렷한 리더였고 나쁘게 말하자면 전형적인 자아도취 또라이.
- 위에 언급 됐듯 픽사시절 사무실안에 스티브잡스가 쓰던 화이트보드가 있었는데 잡스외에는 아무도 쓰면 안됐다, 하지만 공동창업자인 앨런 스미스가 손을 댔고 결국 잡스는 앨런한테 온갖 노발대발 쌍욕을 퍼부었다.[1]
- 잡스는 현실 왜곡장으로도 유명하기도 하다. 물론 잡스의 현실 왜곡장은 어떤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수단이었다. 이로 인해 매킨토시, 아이팟등 여러 혁신적인 제품들을 출시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는 췌장암에 걸렸을때 현실을 왜곡하여 대체의학에 의존하다가 치료시기를 놓치고 결국 목숨을 잃었다.
- 그가 아이팟으로 화려한 부활을 했을 당시 스티브 잡스 평전인 'iCon:Steve Jobs'란 책이 나왔다. 그의 뛰어난 수완을 칭찬하면서도, 인격적인 결함까지 가차없이 써놓은 책인데, 여기에 빡친 잡스는 이 책을 마켓에서 내려버리며 소인배임을 드러냈다. 하지만 다행히도 스잡이 대체의학으로 의사한테 훈장질 하다가 뒤진 다음 공식 전기가 나왔는데, 여기서도 마찬가지로 (인생 전체를 서술하면서) 스티브 잡스의 천재성을 설명하면서도 스잡의 오점과 쓰레기 인성을 가차없이 까발려 놓는다. 자기 입으로 말한 내용도 많은데 이 책이 완성된 다음 본다면 엄청 빡칠지도 모른다고. 하지만 책이 완성되기 직전에 뒤졌으니 잡스에게도 잘 된 일이다.
- 성격자체가 원낙 완고한스타일 이라서 다른직원이 대한 의견을 자주 무시하는경향이 많이있다 특히 엔지니어 한테 무리한 기능요구 심각하게 한다 액정터치 물리적버튼을 모두 삭제하라고했을떄 홈버튼만 어떻게든 디펜스 치던 엔지니어 눈에서 눈물이 나왔다. 전원 버튼을 없애는 극단적인 선택을 하기도 했다. 그래서 아이폰이 2007년 첫 출시 됐을때 앱스토어가 없었다. 이게 추가된것도 엔지니어들이 설득에 설득을 통해 얻어낸거다. 만일 이게 무산 됐다면 아이폰은 좀 쓰기편한 pda폰 취급 받았을지도 모른다.
내로남불[편집]
주의. 이 문서에서 다루는 대상은 LH로남불 그 자체입니다. 이 문서의 대상은 다른 무언가를 욕하지만 사실은 그 대상과 누구보다 닮아있습니다. 둘 다 똑같은 새끼니까 제발 싸우지 말고 섹스해! |
[https://www.youtube.com/watch?v=
이새끼도 내로남불로 개쩌는 새끼다
예전 1996년에 지 입으로 직접 "훌륭한 예술가는 모방하고 진정한 예술가는 훔칩니다"라며 피카소의 발언을 인용하면서 지들이 베끼는 것을 정당화 했었다
하지만 2010년들어 안드로이드가 등장하고 삼성이 갤럭시를 만들면서 본격적으로 추격하자 지 작품을 베꼈다면서 고소고발 남발하며 지랄해대기 시작했다
이뿐만이랴? 다른 회사에서 지네 회사로고랑 유사한 로고가 보인다 싶으면 바로 고소 때렸다 그럼 왜 매킨토시라는 사과 품종의 이름은 왜 멋대로 지 컴퓨터에다 박아 넣는지?
참으로 알 수 없다.
앱등이 병신들은 위에 카피캣 발언을 마치 찌라시인양 몰고가나 저건 직접 스티브 잡스가 카메라 앞에서 지입으로 한 발언이다 선동질 작작하자
긍정적 평가[편집]
- 스티브 잡스 특유의 현실 왜곡장을 발휘하여 할 수 없다고 생각되는 것들을 하게 만들었다. 물론 현실 왜곡장이 항상 옳은 것은 아니지만, 그의 인생동안에 현실 왜곡장은 긍정적인 변화들을 많이 가져왔기에 긍정적으로 본다.
- 그래픽 유저 인터페이스 (GUI)를 처음으로 적용시킨 인물이다. 스티브 잡스는 뛰어난 엔지니어가 아니었다. 그렇지만 그는 사용자 중심의 인터페이스를 친화적으로 만들어내는데 소질이 있었다. 매킨토시를 예로 들자면, 명령어로 이루어진 화면 대신에 사용자가 쉽게 접근할 수 있는 화면을 제공함으로써 인기를 상승시켰다. 그래서 이 영향으로 많은 운영체제들이 GUI위주로 만들어져 접근성을 쉽게 만들었다.
- 프레젠테이션을 존나잘한다. 매 발표회마다 자신이 쓴 대본을 몇번씩이나 수정하고 다시 쓰고를 반복했다고 한다. 발표 방식도 상당히 카리스마가 있어 사람들이 열광하게 만든다. 덕분에 잡스 특유의.프레젠테이션하는 기법이 현재 프레젠테이션 방식에 영향을 주었다.
- 현재의 스마트폰 개념을 정착시켰다. 물론 당시엔 스티브 잡스 말고도 여러 개념을 만들었으나 대부분 과도기 였고 지금처럼 정전식 터치와 우리가 아는 스마트폰의 인터페이스는 모두 잡스가 만든 2007년작 아이폰 오리지널의 영향력이 컸다.
ㄴ PDA가 컷겠죠 시발 무슨 스마트폰 개념을 정착시킴
ㄴ 결국 잘한게 GUI 도입밖에 없노ㅋㅋㅋ
스티브 잡스의 경영철학[편집]
- 경영은 기존 질서와는 철저히 다르게 한다.
- 항상 새로운 것을 주시하고 포기하지 마라.
- 잘 할 수 있는 분야를 선정해 직접 몸으로 뛰어라.
- 기술력을 과시하지 말고 소비자의 눈높이에 맞춰라.
- 간단하고 단순하게 하라.
여담[편집]
1983년에 한국에 방문한 적이 있었는데 당시 삼성의 머튽이었던 이병철 회장이 잡스를 두고선 "굉장히 훌륭한 기술을 가진 젊은이" 라며 "앞으로 IBM과 대적할 만한 인물" 이라고 평가했다. 그리고선 사업가로서 3가지를 조언해 주었는데..
- 지금 하고 있는 사업이 인류에게 도움이 되는지를 확인하라.
- 인재를 중시하라.
- 다른 회사와의 공존공영 관계를 중시해야 한다.
지금 보면 잡스가 재기한 것에 대해 다 직접적, 간접적으로 영향이 있는 것들이다. 갓병철 니뮤ㅠ
- ↑ 사실 원래 앨런 스미스와는 사이가 안 좋았고 앨런 스미스 본인도 스티브 잡스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물론 잡스도 마찬가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