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천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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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편집]
평양근교에 있는 깡촌. 평양과의 직선거리는 대략 40여km로 서울과 용인사이 거리와 비슷하다.
발해멸망이전까지의 연혁은 아무도 모른다. 하지만 비류국이 있던 길림성 통화일대[1]일대의 주민들이 이곳에 정착해서인지 조선시대때의 역사지리서보면 하나같이 비류국에서 시작된다고 기록했다. 그래서 이곳을 흐르는 대동강의 지류도 비류강이다. 참....
931년 왕건이 강덕진(剛德鎭)을 세웠는데 1018년 성주로 불리기 시작했고 나중에 성천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안동과 삐까뜨는 1,554㎢라는 무지막지한 면적을 자랑했지만 언진산맥이 군을 관통하고 있다시피해서 성천면, 영천면, 통선면근처를 빼면 죄다 산투성이었다. 전체면적대비 평지비율이 대충 가평군이랑 비슷한듯?
북괴에서 그으으으으으나마 제대로된 교통인프라가 있는 지역이다. 그래서 여기넘어가면 그냥 쌉노답이다. 하지만 군대부분이 산지에 평양부터가 서울면적과 비슷한 수준의 대평원을 가지고 있는지라 북괴정권 붕괴이후로도 개발이 별로 안될것 같다.
본군 출신인 빨갱이 문학가 김남천의 글에 의하면 평양에서는 '밥 먹었소(혹은 '먹었디')?'라 하고, 성천 옆동네 양덕에서는 '밥 먹었지?'라고 했는데, 성천에서는 '밥 먹었수궤?'라는 독특한 사투리를 썼다고 한다. 하지만 일제시대에 이미 평양과 왕래가 늘어나면서 '밥 먹었수궤?'는 많이 사라지고 평양처럼 '밥 먹었디?'라고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 되었다.
읍면[편집]
現 성천군에 잔류[편집]
성천면[편집]
成川面
면적 115.20㎢, 면소재지는 상부리.
1914년 성천군 상부면 + 하부면 + 암포면 + 동부면 = 성도면이었다가 3년뒤 성천면으로 개명되었다. 성천군의 중심지이자 가장 오래된 곳이다.
동북쪽에 향풍산, 매화산, 소조산등이 가로막고 있고 남쪽에 비류강이 흘러 분지를 이룬다. 흘골산 일부에는 절경이 뛰어나다는 성천십이봉이 있지만 좆본때 머가리없이 비류강의 유로변경을 하면서 1차로 파괴되었고 지금은 돼지가 무슨 짓거리를 했는지 알길이 없다. 상부리에는 관서팔경 중 하나인 강선루(降仙樓)가 있었으나,6.25전쟁 때 소실되었다.
광복직후를 기준으로 상부리(上部), 하부리(下部), 순덕리(順德), 용선리(龍仙), 흥덕리(興德), 마전리(麻田), 대부리(大富), 영목리(永睦)를 관할했는데, 1952년 군면리 대폐합때 성천읍(상부리일부 + 하부리 + 순덕리일부 + 통선면 하리일부), 용흥리(용선리 + 흥덕리), 암포리(대부리 + 마전리), 향풍리일부(영목리 + 삼덕면 대동리)로 개편되었다.
사가면[편집]
四佳面
면적 77.99㎢, 면소재지는 장림리.
1914년 천성면을 흡수했다.
서남쪽에 향풍산, 소조산이 성천면과 경계를 이루고 북쪽에 사도산이 있어 면의 경계를 이룬다. 면중앙에 비류강이 서류하며 구글지도를 켜서 장림치면 나온다.
1952년 군면리 대폐합때 덕흥리(회덕리 + 용흥리), 거흥리(거흥리 + 석우리 + 지석리 + 삼덕면 쌍림리), 회전리(천성리 + 맥전리), 장림리(장림리 + 성림리), 계석리(쌍계리 + 입석리 + 회원리), 은곡리(은수리 + 구룡면 고척리)가 되어 성천군에 편입되었다.
1954년 장림리가 장림노동자구로 승격, 은곡리는 1963년 은곡노동자구로 승격되고 1967년 덕흥리가 신양군으로 흡수되었다.
삼덕면[편집]
三德面
면적 101.06㎢, 면소재지는 신덕리.
1914년 삼기면과 성암면을 스까해서 만들어졌다. 비류강이 신성천을 거쳐 남류한 뒤 성천면으로 들어간다. 신덕리에 금, 은이 나오는 광산이 있고 각지에 청석 채석장이 있었다고 한다.
1952년 군면리 대폐합으로 거흥리일부(쌍림리), 삼덕리(문원리 + 노동리 + 성천면 상부리 일부), 장상리(쌍룡면 하리를 흡수), 기창리(삼덕리 + 원덕리 + 신덕일리 + 신덕이리), 운봉리, 향풍리일부(대동리)로 개편되어 성천군에 편입되었다.
1953년 신덕리가 부활했고 이 신덕리는 1961년 신성천노동자구로 승격되었다. 1972년 기창리 일부가 은산군 용흥노동자구로 편입되었다.
쌍룡면[편집]
雙龍面
면적 104.96㎢, 면소재지는 석전리.
1914년 성천군 용전면 + 용연면 = 쌍룡면이 되었다.
동남에 사도산, 서남에 계두산이 있고 면중앙을 기창후천이 두줄기로 남류한다. 여기도 산투성이다.
그래도 청석이 많이 생산되기 때문에 지역주민들은 지붕을 일 때 청석으로 이고 다른지역에 팔아서 먹고산다고 한다. 용문리 원주 원씨 집성촌, 풍평리 해주오씨 집성촌이 있었다.
석전리(石田), 삭창리(朔倉), 용현리(龍峴), 상평리(上坪), 하리(下), 금성리(錦城), 풍평리(豊坪), 오동리(梧洞), 용문리(龍門)의 9개리를 관할했는데 북괴가 1952년 군면리 대폐합때 신평리(용현리 + 상평리), 신풍리(용문리 + 오동리), 금평리(금성리 + 품평리), 삭창리(석전리흡수), 장상리일부(하리 + 삼덕면 장상리)로 개편되어 성천군으로 편입시켰다.
1954년 신평리는 북창군으로 이관되었다. 1967년 장상리 일부가 삭창리에 흡수되었다.
영천면[편집]
靈泉面
면적 98.73㎢, 면소재지는 요파리이다.
1914년 유동면 + 운산면 + 추탄면을 스까서 영천면을 만들었다.
서북단에 숭아산, 갈산이 있으며 남쪽에 비류강이 서류하면서 통선면과 경계를 이룬다. 그나마 여기에 평지다운 평지인 성천분지가 있어 쌀이 생산되었다고 한다. 용택리에 절경이 뛰어나기로 유명했던 용택온천이 있는데, 지금은 어떻게 됬는지 알 길이 없다.
요파리(了波), 조양리(朝陽), 대요파리(大了波), 용봉리(龍鳳), 대평리(大坪), 용암리(龍巖), 송강리(松江), 용택리(龍澤), 노동리(蘆洞), 유동리(柳洞)의 10개리를 관할했는데 북괴가 군면리 대폐합때 온정리(용택리 + 노동리), 대봉리(대평리 + 용봉리), 유동리(요파리 흡수), 용산리(용암리일부 + 남산리), 대양리(대자파리 + 조파리), 용산리일부(용암리일부 + 통선면 남산리), 상하리일부(송강리 + 통선면 상리 + 통선면 하리)로 개편해서 성천군에 편입시켰다.
1992년 유동리, 대양리가 은산군으로 이관되었다.
통선면[편집]
通仙面
면적 146.92㎢, 면소재지는 덕암리.
1914년 성천군 서부면 + 인산면 + 죽전면 + 천곡면 = 통선면이 되었다.
서남단 취봉산, 서북단 현명산이 있어 강동군과 경계를 이루고 북쪽 영천면과의 경계에 비류강이 서류하면서 그나마 볼만한 평지가 형성되있다.
덕암리(德巖), 안택리(安宅), 남산리(南山), 남원리(南源), 군자리(君子), 상리(上), 하리(下), 백원리(百源), 용담리(龍潭), 문흥리(文興), 옥정리(玉井)의 11개리를 관할했는데 북괴가 군면리 대폐합때 용산리일부(용암리일부 + 남산리), 상하리(상리 + 하리일부 + 영천면 송강리), 남원리, 군자리(안택리, 덕암리 흡수), 백원리(용담리 흡수), 문옥리(문흥리 + 옥정리)로 개편되어 성천군에 편입되었다.
1953년 덕암리가 부활했고 1954년 군자리는 군자노동자구로 승격되었다. 1970년 백원리가 백원노동자구로 승격되었다. 1992년 남원리가 은산군으로 넘어갔고 1995년 군자노동자구는 덕암리에 ㅎ흡수되고 백원노동자구는 백원리로 떨어졌다.
現 북괴령 회창군[편집]
숭인면[편집]
崇仁面
면적 144.39㎢, 면소재지는 창인리.
동북단의 양덕군, 황해도 곡산군경계에 자하산이 있고 곡산군경계에 물금산, 서백년산이 있으며 서북부에 대봉산이 있는등 산악지대이다.
성흥광산에서 금, 은, 구리, 납광산으로 먹고살았다.
창인리(昌仁), 숭인리(崇仁), 흥인리(興仁), 삼인리(三仁), 거인리(居仁), 귀인리(歸仁)의 6개리를 관할했는데, 소련군정시기에 창인리가 1,2,3,4,5리로 분리되었다. 북괴가 1952년 군면리 대폐합으로 신흥노동자구(창인 1+2+3+4+5), 숭인리(흥인리 흡수), 귀인리, 신성리(거인리 + 삼인리)로 개편해서 회창군에 편입시켰다.
1956년 회창군의 군청이 여기로 옮겨지면서 신흥노동자구와 귀인리를 스까해서 회창읍으로 승격시켰다. 그래서 북괴령 회창군의 중심지라고 할 수 있다. 1990년 회창읍 일부와 숭인리 일부에서 신작노동자구를, 회창읍 일부와 신성리 일부에서 화전노동자구를 신설했다.
구룡면[편집]
九龍面
면적 145.80㎢, 면소재지는 가평리.
용연리 용산, 동쪽 대구면 경계에 만산령, 남쪽 능중면 경계에 대봉산이 있으며 면중앙에 비류강이 흐른다. 비류강을 빼면 산밖에 없어 용산구 6개가 들어갈 면적에 6개리밖에 존재하지 않을 정도로 깡촌이었다.
북괴치하로 넘어간뒤 군면리 대폐합에서 가운리(가평리 + 운전리), 구룡리일부(용연리 + 능중면 고익리), 회운리(회춘리 + 운흥리), 은곡리일부(고척리 + 사가면 은수리)로 개편되었고 이중 은곡리로 넘어간 고척리가 성천군에 그대로 남고 나머지는 모두 회창군으로 넘어갔다.
능중면[편집]
陵中面
면적 203.31㎢, 면소재지는 남양리.
1914년 성천군 와룡면 + 순덕면 + 남전면이 능중면이 되었다. 동쪽 철봉산, 광대산, 서쪽 봉화산, 태을덕산, 남쪽 각흘산, 북쪽 사방산에 둘러싸인 산동네깡촌이었다. 소남리, 문창리에 나주나씨의 집성촌이 있었다고 한다.
1952년 군면리 대폐합으로 인해 회창읍(덕련리 + 광덕리), 소남리, 구룡리일부(고익리 + 구룡면 용연리), 송동리(송산리 + 이동리), 삼양리(삼고리 + 남양리), 융중리(양춘리흡수), 대덕리(대흥리 + 명덕리), 순창리(숭덕리 + 창의리 + 문창리)로 개편되어 새로 등장한 회창군으로 들어갔다. 1956년 순창리가 강동군으로 들어가고 회창읍이 덕련리로 격하되면서 망했다.
1981년 융중리가 양춘리, 삼양리가 내동리, 소남리가 대봉리로 개명되었다.
대곡면[편집]
大谷面
면적 102.77㎢, 면소재지는 대곡리.
동쪽 문종산, 사방산, 서쪽 사봉, 북쪽 삼각산이 있고 남쪽에는 용천이 흐르면서 남쪽경계지역인 남강으로 들어간다. 남강과 용천의 합류지역말고는 전부 산이라서 용산구의 4,7배나 되는 크기에 맞지않게 대곡리, 심진리, 화평리, 문어리, 지동리만 관할했다.[2]
북괴치하에선 화평리와 심진리만 화평리로 스까되서 그대로 회창군으로 편입되었다. 좆되기직전인 1990년 화심리 일부와 문어리 일부가 백령노동자구로 독립했고 1993년 화심리가 대곡리에 통폐합되었다.
現 북괴령 신양군, 강동군[편집]
대구면[편집]
흔드르라 이기야!! 흔드르라!! 이 문서에서 다루는 대상은 존나 흔들리고 있습니다. |
大邱面
면적 142.94㎢. 면소재지는 별창리이다.
1914년 양덕군에서 성천으로 넘어왔다. 양덕, 성천, 곡산과의 경계지역에 자하산이, 서쪽 구룡면과의 경계지에 만산령이있으며 강으로는 양덕에서 발원한 비류강과 오강면에서 발원한 대동강 상류가 신장리에서 합류해 비류강이 된다.
산투성이 깡촌이라 용산구의 6.5배에 달하는 면적을 가지고 있지만 별창리, 원평리, 천동리, 지동리, 화인리, 광산리, 신장리의 7개리만 있었다. 그나마 좆본치하에서 광산리에서 아연(마전광산), 금(대덕광산, 소림광산), 은(대덕광산, 소림광산), 구리(대덕광산, 소림광산), 납(소림광산) 이 채굴되고 8.15 광복이후 혹부리우스가 평원선을 깐덕에 포텐이 터질라고 했는데....알지? 어쩔 수 없어
천동리와 화인리사이에 성천금강이라 불리는 산이 있다.
1952년 군면리 대폐합때 별창리 + 원평리로 창평리, 신장리 + 광산리의 장산리, 화인리와 천동리가 화천리로 스까되었고 지동리는 소련군정시기 1,2리로 나뉘었다가 원상복귀되어 전역이 양덕군에서 분리되어 등장한 신양군으로 편입되었다. 1953년 신양군청[3]이 창평리와 화천리 중간으로 옮겨지면서 신양읍이 추가되었다. 그리고 남은 화천리는 1983년 평원리랑 스까되어 인평노동자구가 되었다.
2019년 5월 16일 12시 35분경, 본면과 숭인면과의 경계지역에서 규모 3.3의 지진이 발생했다.
삼흥면[편집]
三興面
면적 95.40㎢, 면소재지는 난산리.
1914년 삼파면과 문흥면을 스까해서 만들어줬다.
서부에 풍어산, 각흘산으로 된 산악지대가 있고 면 남쪽에 남강이 흐른다.
난산리, 일청리, 구빈리, 행단리, 광탄리, 창평리의 6개리를 관할했는데, 군면리 대폐합때 행단리(행단리 + 광탄리), 난산리(창평리를 흡수), 구빈리(일청리를 흡수)로 개편되어 강동군으로 편입되었다. 이중 행단리는 1989년 남강노동자구로 승격되었다.
아웃풋[편집]
채응언: 최후의 의병장. 평안남도, 황해도, 강원도, 함경남도 남부에서 헌병주재소를 습격하는 등 맹활약하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