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 요시토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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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메에에- 이곳은 깡촌, 즉 존나 시골과 관련된 것을 다루고 있습니다. 이 문서에서 다루는 대상은 인프라도 없고, 살기도 안좋은 시골과 관련된 것을 다루고 있습니다. 그러나 자연인이 되기에는 매우 좋은 곳입니다! |
이 문서는 금수저에 대해 다룹니다. 이 분은 1년에 은행이자로만 버는 돈이 1인당 PPP (PPP per capita)가 넘을 정도의 금수저를 가진 사람을 다룹니다. 그냥 이 분을 주인님으로 삼고 노예가 되어 열심히 후장이나 빠시기 바랍니다. |
일본의 시골 깡촌인 쓰시마 섬 다이묘이다. 얘도 예수쟁이다. 종교는 가톨릭이며 세례명은 '다리오'다. 장인어른인 고니시 유키나가의 권유로 가톨릭을 믿기 시작했다.
시골 깡촌임에도 불구하고 돈만 잘 벌었다. 그 이유인 즉 여기가 바로 일본과 조선의 중간 교착지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다이묘라는 일본인으로서의 관직 뿐만 아니라 예조좌랑급 조선인으로서의 관직도 받았다. 그런 고로 조선 상대로 무역업을 하고 있으면 들어오는 돈이 정말 짭짤했다. 아니, 그냥 두 상인 사이에 땅만 빌려주고 가만히 앉아있어도 '수수료'라는 이유로 돈이 그냥 막 들어왔다. 특히나 조선에서 사신이라도 오는 날이면 조선 사신이 길안내 명목으로 아예 돈을 박스째 집어줬다. 어찌나 돈을 잘벌었는지 농토 1평 없는 바위섬땅을 60만 석의 고쿠다카로 인정해줄 정도였다. 그러니까 순수 번 돈만으로 무려 다테 마사무네랑 같은 계급장을 달고 있는 다이묘였다.
그런데 절망적인 일이 벌어졌다. 한창 조선 상대로 돈을 잘 타먹고 있었는데 미친 태합새끼가 갑자기 조선을 깨러 가잰다. 소 요시토시는 당연히 결사반대했다. 당연하지 가만히 있으면 알아서 자기네한테 연금을 부어주는 사람들이 조선인데 그걸 부수면 연금이 끊어진다. 게다가 조선이 일본을 침공한다면 가장 먼저 아작나는게 자기 사는 쓰시마였으니.. 아침 9시에 일어나서 은행으로 달려간 뒤 통장에서 그날 먹고 살돈 뽑아온 뒤 플스로 철권이나 하면서 느긋하게 하루하루 연명하던 사람이 갑자기 새벽 3시에 일어나서 인력소 가서 좆빠지게 노가다를 해야 한다고 생각해봐라. 그거랑 비슷한 상황이었다.
그렇게 존나 결사반대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조선 침략은 강행되었고 소 요시토시는 장인어른인 고니시 유키나가의 부하 장수로 참전했다. 임진왜란 기간 내내 장인어른의 부하로 지내다가 종전 후 세키가하라 전투에서도 장인어른의 부하로 참전했다. 그러나 장인어른이 패하고 참수당했다. 소 요시토시는 쓰시마 섬이 도쿠가와 이에야스한테 멸망당할까봐 고니시 유키나가의 딸내미랑 이혼했다.
그래서 꼼짝없이 뒈졌구나 하고 생각했었지만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소 요시토시만 따로 불러들이더니 제안을 하나 했다.
“ |
너 지금 지은 죄 있다. 그거 없는 걸로 해줄 테니까(용서해 줄 테니까) 그 대신 조선에게 사과해서 조선과 다시 외교를 할 수 있게 해라. |
” |
무려 벌을 안 준댄다. 우와 씨발... 장인 어른이 가장 가혹한 형벌을 당했기 때문에 무조건 연좌제 대상이 되는 소 요시토시라서 개역 확정이 될 것 같았는데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무려 용서씩이나 해주셨다. 우와~
그래서 소 요시토시는 이런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제안을 받아들여 조선에 열심히 사과를 하고 1607년에 드디어 조선에게 용서를 받았다. 그리고 조일관계는 완벽하게 임진왜란 이전으로 되돌아갔고 그렇게 소 요시토시는 다시 연금 생활자가 되었다.
그리고 그때 오는 조선 통신사가 올때마다 소 요시토시에게 돈을 잔뜩 쥐어줘서 소 요시토시는 말년이 정말 행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