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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웨인 웨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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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른쪽이 8밀갑, 왼쪽은 르버지)

8밀갑


애미가 약에 취한 채로 이름을 지은 것으로 유명하다. 그래서 발음하기 좆같다.

턱이 펠리컨턱이라 모전자전이라고 약빤게 아니냐는 루머가 떠돌지만 자세한건 나도 모른다.

대학시절부터 유명했다. 무릎 부상은 이때도 고질적인 문제였다. 대학때 이미 무릎 연골 일부를 떼내는 수술을 받았다.

NBA 역사 상에서도 손꼽히는 2003년 드래프트에서 4번째로 NBA에 입성, 루키시즌부터 팀을 플레이오프로 이끌었고 본인 첫 플레이오프 경기에서 위닝샷을 넣었다.

2년차 시즌에는 팀에 샤킬 오닐이 입성했다. 바로 '히트의 중심은 샼임' 라며 선 후빨하자 코두순이랑 기싸움만 하던 샼이 감동해서 '히트는 웨이드의 것' 이라며 응답했다. 승승장구하며 컨퍼런스 파이널까지 갔으나 그해 우승팀 천시 빌럽스의 디트로이트 피스톤즈에게 덜미를 잡혀 탈락했다.

3년차 2006년엔 샤킬 오닐과 함께 마이애미 히트의 프랜차이즈 첫 우승을 견인하며 파이널 MVP를 수상. NBA 역사에서도 손꼽히는 역대급 결승전 퍼포먼스를 선보였다. 근데 댈러스팬들은 이때만생각하면 개거품을무는데 웨이드가 돌파만하면 거의 파울을불어줘 편파판정논란이있었다

2007년에는 공격 부분에서 점퍼와 돌파를 자유롭게 구사하는 완전체스러운 모습을 보이다 어깨 탈골로 인해 시즌아웃. 이후 이때와 비슷한 어깨 탈골을 막기 위해 벌크업을 했지만 이는 장기적으로는 성치 못한 무릎에 더한 부담을 준 듯 싶다. 시즌 중간 팀이 연패에 빠지자 어깨의 상태가 나쁜 가운데 경기에 출장, 경기를 박빙으로 끌고가다 눈물겨운 승리를 일궈냈다. 그러거나 말거나 웨이드 없던 팀은 1라운드부터 시카고에게 스윕당했다.

2008년에도 역시 부상으로 일찍이 아웃, 팀은 플레이오프 진출 실패.

이후 2008년 올림픽에 참가해 전에는 본 적이 없는 완전체 슬래셔의 모습을 선보였다. 수비를 찢어내는 돌파가 명품이었는데 벤치멤버로서 득점왕을 차지하는 기염을 토했다. 팀(Redeem Team)은 당연히 금메달.

2009년 웨이드의 기량은 절정이었다. 이 시즌 웨이드는 NBA에서도 얼마 되지 않는 PER(Player Efficiency Rating) 30을 넘긴 선수였으나 또한 이때는 리그 최초로 한 시즌 두 선수가 PER 30 이상을 넘겼던 시즌이었다. 다른 한명은 르브론 제임스였고, 비록 마이클 조던 등은 웨이드가 MVP를 받아야 한다고 주장했으나 결국 르브론 제임스가 본인 커리어 최초로 MVP를 수상하게 된다. 여담으로 이 시즌엔 크리스 폴의 PER 은 29.97 이어서, 사실 한 시즌에서 PER 30이 세명 나올 뻔한 시즌이기도 하다. 웨이드도 무진장 잘했으나 르브론이 좀 더 잘했다. 그래도 득점왕은 탔다.

2010년 점퍼가 종범화되기 시작했지만 돌파력은 여전해서 득점력은 어찌어찌 유지. 1라운드에서 보스턴을 만나 거의 스윌을 당할 뻔했으나 4차전에서 인생경기를 펼쳐 스윕만은 면했다. 탈락했지만.

시즌이 끝나고 르버지와 보쉬가 팀에 왔다. 아이버슨도 오려 했다는 카더라가 있으나 뒤진 지 오래라 왔다 해도 그다지 의미는 없었을 듯. 아역귀가 왔으면 누가 3번을 달았을지 궁금하기는 하다. 그해 파이널에서 팀을 캐리했으나 르버지의 똥이 너무나 무거워 혈루를 삼켰다 어쨌거나 파엠과 우승반지 둘다 노비츠키가 챙김. 이당시 몸상태 멀쩡하고도 한경기 8득점, 댈러스 벤치선수인 바레아랑 똑같은 17득점밖에못하고 쳐발렸던 르브론이 노비츠키의 독감투혼을 조롱했는데 그 옆에서 웨이드도 같이 비웃었다 참고로 웨이드와 르브론의 4쿼터점수를합친게 노비츠키하나가 올린 4쿼터 득점과 똑같다

2012년에는 그저 그랬지만 르브론의 완벽한 꼬봉중의꼬봉으로 반지는 챙겼다. MVP랑 FMVP는 르버지. 이때가 이어지는 그의 커리어나락의 시발점이었다

2013년 작년과 별다를 바 없는 모습을 보이며 레이 알렌의 6차전 5.2초 남긴 동점 쓰리런에 힘입어 우승. 시즌 중에서도 기복이 있었고 이때부터 슬슬 그분 따라가는 징조가 보였다.

2014년엔 그냥 좆병신. 준우승에 그친다. 공격도 못했고 수비는 더 못했다. 시즌 중에도 본격적으로 노짱 따라가기 시작하더니 플레이오프는... 씨팔 언급할 가치도 없다.

2015년 르버지가 도망치자 간만에 눈치 안보고 뛰면서 40+ 경기도 두어번 기록했고 4Q 득점 1위도 해봤지만 동료들이 죄다 부상으로 줄줄이 아웃되며 플레이오프 진출엔 실패했다.

여담으로 단 한번도 20밀 이상을 받아보지 못하다 2015년 드디어 1년뿐이긴 하지만 20밀을 받게 되었다.

샤킬 오닐한테 20밀 넘게 주느라 팀내 연봉 1위 못한건 이해한다 이기야. 그런데 완전히 한물 간 저메인 오닐한테 20밀 꼴아박느라 1위 못한 건 뭐노. 北그러운줄 알아야지!

16 - 17 시즌을 앞두고 재계약 과정에서 팀과의 불화, 10년넘게 함께한 팀과결별하고 고향인 시카고와 계약했다. 리그에 몇안남은 프랜차이즈 스타의 이적이엇기에 아쉬워하는 게이들이 많았다. 이 와중에 릅빠들이 또다시 릅신따까리로 클블오라는 망언을 뱉어 물의를 빛기도.

시카고에서 이제는 베테랑으로 지미 버틀러를 보조할 2인자를 자처하고있으나 이미 퇴물화된 몸뚱아리와 여전히 씹창인 외곽, 어린 팀원들과의 불화등으로 생애 첫 이적팀 생활이 편해보이지는 않아보인다.

이미 늡갤에서는 반쯤 잊혀진 존재로 본 문서가 1년가까이 방치된것만 봐도 리그 최고의 2번이던 그의 퇴물화가 안타깝기만하다. 현 릅신따까리인 아들빙도 반면교사삼아 더 늙기전에 적당히 늙브롱을 팽하는 것을 권장하는 바.

는 다시 릅갈통과 뭉침 ㅋㅋㅋㅋㅋㅋ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