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규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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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편집]
1848~1930 대한제국의 관료
생애[편집]
1848년 서울에서 태어난 한규설은 형조판서등을 지내던중 1905년 참정대신이 되었다. 이후 을사늑약때 마지막까지 조약서명에 거부하다가 회의장에서 일본에 의해 끌려나갔다. 이후 1910년 조선귀족 남작작위를 제안받았으나 거절하였다.
여담[편집]
을사늑약때 자리에 있던 관료중 이용익과 함께 마지막까지 친일파가 되지 않았다.(을사오적은 당연히 친일파 을사오적외 참석했던 이하영,민영기도 이후 친일파가 됨)
관련 문서[편집]
- 민영환 - 한규설의 소울메이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