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위

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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X는 X다, X는 X가 아니다, Y는 Y다, Y는 Y가 아니다, X는 Y다, X는 Y가 아니다, X는 Y이지만 아니기도 하다. - 마하비라 칠중논리편

철학 개념[편집]

토마스 아퀴나스가 얘기한 "사물과 오성의 일치"라는 진리 정의가 매우 자주 쓰였다는 것 같다.

데카르트의 유명한 방법론적 회의가 무색하게도 현대의 철학자들은 "나는 생각한다. 그렇다고 내가 존재하는가?" 따위를 고민하고 있다. 맛이 간 게 틀림없다. 원래 철알못이 보면 철학자들 말 다 개소리같고 그렇다. 근데 이게 진리랑 무슨 상관이냐?

어떤 새끼가 진리 문서에 철학을 썼는지 모르겠는데 철학은 진리를 찾는 학문이지 진리인 학문이 아니다. "그렇다고 내가 존재하는가" 이 말도 의심으로 시작하는 한 철학법이지 진리랑은 아무 상관 없음

실생활에서는 종교적인 의미로 많이 쓰인다. "신의 진리" 뭐 이런 식으로. 그래서 어려워보이지만 사실 기초적인 생각만 할 수 있다면 누구나 발견해낼 수 있는 게 진리다.

진리는 일단 확실한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건 사실이고. 진리란 이치가 있어야 하며 그 이치가 참되어야 한다. 즉 진리는 이치의 상위격이라 볼 수 있는 완전한 무언가다. 이렇게만 보면 좆같이도 어렵네라고 할 수 있다.

"사람은 밥을 먹어야 한다" 이건 사실이나 진리는 아니다. "사람은 밥을 먹어야 살 수 있다" 이것이 진리다. 나중에 미래 시대가 되면 밥을 먹지 않아도 살 수도 있겠지. 하지만 이 진리는 생물이 움직이기 위해선 에너지가 필요하다는 참을 내포하고 있다. 이 사실과 이치에 대해 반박할 수 있는 사람, 향후 시대가 얼마나 지나든 이 절대적인 법칙에서 벗어날 수 있는 과학자는 없겠지? 그래서 진리다. "네가 뭔데? 네가 미래의 불확실성을 어떻게 알아?"라고 삿대질한다면 그런 논리라면 모든 철학자는 비난받아 마땅하다. 진리를 찾는 철학자들을 다 인간의 분수를 벗어나는 놈들이라 분류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진리를 발견하고 말하기 위해서는 이 세상의 모든 것을 알아야 하며 모든 것을 몰라야 한다. 그래서 나온 진리는 누가 봐도 반박의 여지가 없어야 한다. 그래서 철학자들이 존나 싸우는 것이다. 철학자들의 궁극적인 목표는 진리이기 때문에 그냥 상대 철학자의 말에 반박하는 행위 자체가 그게 진리가 아니란 것을 증명한다. 개요에서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라는 진리에 현대 철학자들이 붙는다면 그건 진리라고 볼 수 없다. 논리격으로 떨어지게 되는 것이다. "ㄹㅇ 개소리다"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까 말한 진리인 "사람은 밥을 먹어야 살 수 있다" 이 진리에 어떤 선동과 날조를 사용해서라도 반박해봐라. 못할 거다. 따라서 철학에 관심 있는 애들이 가장 실수하는 것은, 철학자들은 진리를 만들어내는 '신'이 아니다. 철학자들은 삶을 누구보다 사랑하여 그것에 대해 증오하는 인간들인데 그 관심으로 연속적 논리를 통해 삶의 진리를 발견해내는 자들이다.

관점[편집]

등가교환의 에고이즘.

진리를 바라보는 관점에는 크게 세 가지가 있다

하나는 절대적인 진리가 있을 것이라 보는 관점

둘째는 진리는 어디까지나 상대적이라 보는 관점

마지막은 진리 그딴 거 좆이나 까라는 관점이 있다

진실[편집]

남성이 현자타임 때 담배 한 대 물고 나서 지껄이는 말.

우리가 현실을 깨닫는 순간 얻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