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위

열녀문

조무위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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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문서에서 설명하는 대상은 페미들의 여혐몰이가 아닌 진짜 여성혐오를 하고 있습니다.
이 문서는 현실에서는 부모 이외의 여자와 대화도 제대로 못하는 축대남들과 주트콩들이 반페미라는 핑계로 진짜 여혐을 하는 경우를 다룹니다.
물론 메퇘지 페미들은 여자 이전에 인간도 아니니 페미혐은 반드시 해야합니다.

희대의 좆병신같은 문. 조선이 건국한 이후부터 갑오개혁 + 경술국치로 조선이 망할 때까지 유교이념을 전국에 전파하기 위해 남편이 뒈지면 같이 따라 뒈지거나 혹은 재혼 안하고 계속 수절해서 살다 뒈지거나 비구니가 되면 조선의 수령님 께서 노예의 좋은 예랍시고 세워줬던 문이다. 남자의 경우 효자문이 있다.

신증동국여지승람이라는 역사지리서를 보면 각지에 열녀, 효자를 토씨하나도 안틀리고 기록해놓기도 했다. 아직 유교이념이 완전히 정착하지 못한 시절에 만들어져서 그런가 열녀문이 없는 고을도 한트럭이고[1] 열녀가 된 썰에서 보면 주인님(여종), 친정부모, 시부모가 재가를 시켜준데도 안된다고 뻐기던 여자들이 열녀로 모셔지는 모습을 보인다.

뿐만아니라 민담으로 전해지는 신라, 고려의 열녀, 효자도 상감행실록이라는 책에 실어 애들에게 교과서로 써먹기도 했다.

남자는 아무데나 정액 싸갈기고 기분 나쁘면 패도 되고 여자는 주인과 함께 죽은 개와 비슷한 취급 해준다. 뭔가 익숙하지 않은가?

유교탈레반이 본격화되던 조선 후기에는 이게 있으면 가문의 자랑이고 명문이랍시고 시부모들이 혼자 남은 며느리를 죽여버리거나 시집간지 얼마되지도 않아서 과부가 되니까 친가에서 실컷 갈궈서 자살해버리면 남편 따라 죽었다고 우기는 방식으로 보험사기치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조남충 재기해~!!!

기가막힌 조선의 인습이다.


주의. 이 문서는 심각하게 노잼일 수 있습니다.
이 글은 노잼 드립이 있는 문서입니다. 그리고 정보도 안 주는 쓰레기통 행이 어울리는 문서입니다.

여자 열명이 들어간 문이다.

  1. 심지어 홍주, 청주목처럼 열녀가 없는 당대 대도시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