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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타키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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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키 남부 레반트 접경지역에 있는 소도시이다. 비잔틴 시절의 명칭인 안티오크로 더 유명하다.

원래 역사가 오래되고 사람도 많이 사는 지역이었다. 기원전 셀레우코스 1세가 계획한 마라이라는 이름의 신도시로 출발했다.

고대 로마 시절 동방 무역의 중심지와 기독교 세계의 최동부라는 타이틀을 가지고 있었고 이 시기에 인구는 60만 가까이까지 불어나게 된다.

이집트의 최대도시인 알렉산드리아와 헬레니즘의 정통을 두고 경쟁했을 정도였다.

몰락[편집]

115년 이 지역에 트라야누스와 양아들인 하드리아누스가 친정을 왔을 당시 엄청난 규모의 지진이 그들을 덮치게 되고 결국 안티오크의 인구 20만명이 1년만에 증발해버리는 대재앙이 일어나고 만다.

이 때부터 안티오크 자체가 엄청난 망테크를 타게 된다. 하지만 이때까진 그나마 이름값이 살아있었을 때였고 해안가 도시에게 가장 중요한 기능인 항만 역시 제대로 작동했기 때문에 어느정도 버틸 수 있었다.

이후 로마가 동서로 분열되며 안티오케이아는 비잔티움 제국의 영역이 되었다. 비잔틴은 안티오케이아를 사산 왕조와 투닥거릴 때마다 주요한 기지로 사용하였고 기독교의 5대 성지에도 한자리 차지할 수 있었다.

그리고 200여년 후 이슬람교가 태동한다.

이 도시 자체가 시리아 지역에 있었기 때문에 아라비아의 이슬람 제국과 계속해서 전쟁을 벌이는 전장이 되었고 637년 결국 이슬람 제국에게 함락당하기까지 한다.

이후의 200여년 동안 이 지역은 비잔틴과 이슬람 왕조들의 세력이 전쟁을 벌이는 최전장으로서 도시는 점점 쇠퇴해갔다.

눈이 뒤집힌 비잔티움은 서방의 기독교세계를 영끌하여 개슬람을 벌주기 위해 침략하니 이게 십자군전쟁이다.

십자군 전쟁이 일어나고 얼마 안가 안티오키아 지역은 다시 탈환되고 안티오크 공국이 수립된다.

그러나 이후 십자군이 삽질로 망하고 13세기경 맘루크까지 쳐들어오자 도시는 다시 따이게 된다. 이때 맘루크 기병들이 주민들을 전부 학살하거나 노예로 팔아먹었기 때문에 이후 이곳은 사람없는 깡촌이 된다.

넓디넓어 물자를 수송할 수 있던 강도 점점 좁아지고 강바닥이 상승하는 등 더이상의 물동을 책임질 수 없게 되고야 만다.

결국 안타키야는 현재는 이도저도 아닌 깡촌으로 전락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