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무위키
조무위키
둘러보기
대문
최근 바뀜
임의의 문서로
미디어위키 도움말
도구
여기를 가리키는 문서
가리키는 글의 최근 바뀜
특수 문서 목록
문서 정보
행위
문서
토론
편집
역사 보기
효종(송)
편집하기
경고:
로그인하지 않았습니다. 편집을 하면 IP 주소가 공개되게 됩니다.
로그인
하거나
계정을 생성하면
편집자가 사용자 이름으로 기록되고, 다른 장점도 있습니다.
스팸 방지 검사입니다. 이것을 입력하지
마세요
!
{{12세기}} {{성군}} {{성인}} {{역사 속의 인물}} {{영웅}} {| class="wikitable" width=59% ! colspan=6 style="background-color:#ffffff; color:;"|'''송나라의 역대 황제''' |- ! colspan=2 | 10대 [[고종(송)|고종 헌황제]] 조구 !! ← !! '''11대 [[효종(송)|효종 성황제]] 조신''' !! → !! 12대 [[광종(송)|광종 자황제]] 조돈 |- |} {| class="wikitable" border="1" rules="none" |- |align="middle" style="background:#FFFF00; color:#FF0000; font-weight:bold; text-align:center" colspan=2|<big>'''송 효종''' |- |align="middle" style="background:#FFFF00; color:#FF0000; font-weight:bold; text-align:center"|'''묘호''' | '''효종(孝宗)''' |- |align="middle" style="background:#FFFF00; color:#FF0000; font-weight:bold; text-align:center"|'''시호''' | 소통동도관덕소공철문신무명성성효황제 (紹統同道冠德昭功哲文神武明聖成孝皇帝) |- |align="middle" style="background:#FFFF00; color:#FF0000; font-weight:bold; text-align:center"|'''출생''' | [[1127년]] [[11월 20일]] |- |align="middle" style="background:#FFFF00; color:#FF0000; font-weight:bold; text-align:center"|'''즉위''' | [[1162년]] [[7월 12일]] |- |align="middle" style="background:#FFFF00; color:#FF0000; font-weight:bold; text-align:center"|'''퇴위''' | [[1189년]] [[2월 18일]] |- |align="middle" style="background:#FFFF00; color:#FF0000; font-weight:bold; text-align:center"|'''사망''' | [[1194년]] [[5월 8일]] |- |align="middle" style="background:#FFFF00; color:#FF0000; font-weight:bold; text-align:center"|'''국적''' | [[송나라|송]] |- |} ==개요== 송나라의 11대 황제 효종. 이름은 조신(趙昚)이다. 화북 지방을 잃고 위기에 빠진 송나라를 중흥시킨 명군이다.(사실상 남송의 유일한 명군) ==제위 과정== 선대 왕 고종은 스트레스 때문인지 묘부의 변 이후 사실상 [[고자]]가 되어 아이를 가지지 못했다. 고종의 친자식은 남자 1명과 여자 5명이었는데, 친아들이 요절해버려서 실질적으로 황위를 물려주기 위해선 황실에서 인재를 찾아서 양자로 삼았어야 했다. [[태종(송)|송태종]] 이후 송나라의 황제들은 고종 포함 태종의 후손인데 태종의 후손 대부분이 정강의 변 때 금으로 끌려가서 어쩔 수 없이 태조의 후손들 중 적장자를 찾았어야만 했고 결국 고종은 태조의 후손 둘을 양자로 삼았는데 그 중 한명이 효종이었다. 그렇게 1162년 7월 24일 고종이 황위에서 물러나고 효종이 황제가 되었다. 송태조의 후손이 황위에 오름에 따라, 효종 이후 송나라의 황제 자리(광종, 영종, 이종, 도종 등)는 전부 송태조의 후손이 차지했다. ==평가== 효종은 잃어버린 송나라의 고토를 수복하고 싶어했고, 그래서 잠시나마 금나라를 공격해서 땅을 되찾은적이 있었으나 되려 뚜들겨 맞고 패하기도 하였다. 결국 효종은 무지성 북벌 이전에 가난한 백성들의 삶의 안정화 등 내치에 집중하게 된다. 효종의 여러 개혁들은 큰 성과를 거두었는데, 백성들에게 뜯는 세금을 줄이고, 미친듯이 올라간 소금의 가격을 안정화 시켰으며, 관리를 뽑는데에도 여러 부정부패를 없애서 고종 때의 부패와 불안정함을 해소하여 나라가 전체적으로 안정화되었고, 송나라 백성들의 삶의 수준은 높아졌다. 효종이 다스린 이 시기를 건순지치(乾淳之治)라고 한다. 결론적으로, 정강의 변 이후 망조가 존나 씨게 든 남송을 안정화시키는데 크게 일조하였고, 효종 때 닦인 남송의 기반은 이후 45년 가까이 [[원나라]]와의 전쟁에서 남송이 항전할 수 있게 해준 실질적인 원동력이 되어주었다. ==효자== 효종이라는 묘호답게 이 사람은 엄청난 효자였다. 효종의 재위는 1289년까지인데, 선대 황제인 고종놈도 1287년까지 20년 넘게(...) 태상황으로서 살아있었다. (고종은 80세까지 살았는데 온갖 산전수전을 겪은 양반 치고는 오지게 오래 살았다. 현대 시대에서도 80세면 결코 적게 산 나이가 아닌데 12세기에 80세면 현대 기준으로 거의 110살은 살았다고 보면 된다.) 어쨌든 10~15년동안 황위에 있는 것도 결코 짧은 기간이 아닌데 자그마치 25년을 태상황에 있으면서 룰루랄라 놀러댕기고 시시건건 황제 일에 간섭하는 등 딱 봐도 뒷골 땡기는데, 효종은 이런 못난 양아버지를 깍듯이 모셨고, 1187년 고종이 세상을 떠나자, 효종은 땅을 치며 슬퍼하였고, 이틀동안 밥숟갈도 들지 못했다고 한다. 그렇게 1189년 퇴위하고 죽을 때까지 중화전에서 양아버지 고종을 애도하였다. ==자식 관계== {{눈물}} 양애비 고종한테 옮았는지 자식운이 참 지지리도 없었다. 아들 4명과 딸 2명이 있었는데, 장남은 약을 잘못 먹고 사경을 헤매다가 고종과 효종이 돌아가면서 지극히 간병을 해줬는데 결국 세상을 떠났고 평소 효심이 깊었던 삼남 조돈을 태자로 삼았다가 차남은 홧병에 걸려 죽어버렸고, 남은 아들과 두 딸도 요절해버렸다. 실질적으로 효종에게 남은 자식은 훗날 광종이 되는 조돈 하나 뿐이라 효종은 조돈을 정말 지극히 아꼈다. 나중에 고종이 죽고 효종은 조돈에게 양위를 했는데 문제는 조돈의 아내 자의황후였다. 자의황후는 효종과 광종의 사이를 끊임없이 이간질하였고, 결국 두 부자의 사이는 파국에 치달아버린다. 언제는 효종이 광종과의 관계를 회복하기 위해 술과 술잔을 보냈는데 광종은 효종의 마음도 몰라주고 술잔을 깨부수고 연회에도 초청하지 않는 등 효종의 마음에 상처를 남기기만 했다. 효종이 결국 병이 들어 병상에 누워도 간병조차 오지 않아 효종은 결국 혼자 쓸쓸하게 눈을 감았다. 황제 시절에는 태상황 고종한테 갈굼당하고 태상황 시절에는 사랑하는 자식과의 관계가 파탄나는 등 여러모로 비운의 인물이다.
요약:
조무위키에서의 모든 기여는 CC BY-SA 4.0 라이선스로 배포된다는 점을 유의해 주세요(자세한 내용에 대해서는
조무위키:저작권
문서를 읽어주세요). 만약 여기에 동의하지 않는다면 문서를 저장하지 말아 주세요.
또한, 직접 작성했거나 퍼블릭 도메인과 같은 자유 문서에서 가져왔다는 것을 보증해야 합니다.
저작권이 있는 내용을 허가 없이 저장하지 마세요!
취소
편집 도움말
(새 창에서 열림)
이 문서에서 사용한 틀:
틀:12세기
(
편집
)
틀:감성팔이
(
편집
)
틀:눈물
(
편집
)
틀:색
(
편집
)
틀:색상
(
편집
)
틀:성군
(
편집
)
틀:성인
(
편집
)
틀:알림 상자
(
편집
)
틀:역사 속의 인물
(
편집
)
틀:영웅
(
편집
)
틀:크기
(
편집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