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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영조-정조(주로 18세기) 대에 당파 간의 싸움을 조율하기 위해 등장한 정책. 먼저 숙종 시절에 여러 번 일어난 환국에 대해 이해할 필요가 있는데 붕당 정치는 원래 이황과 이이의 이론을 가지고 싸워대면서 서로의 이론을 교정도 하고 나아갔던 체제였다. 하지만 '그 예송논쟁' 이후부터 지들의 이권만 추구하기 시작하더니 숙종이 사랑과 전쟁을 여자들과 벌이자 서로 여자들을 밀어주면서 숙종에게 잘보이기 위해 노력했다. 하지만 상대는 조선 최대의 노빠꾸 상남자 숙종이었고 서인과 남인 할 것 없이 조금이라도 맘에 맞지 않으면 가차없이 저 멀리로 날라갔다. 이런 과정에서 붕당들은 상대에 대한 비판이 아니라 '''생존을 위한 혈투'''를 해야 했고 자연스럽게 붕당 독재가 등장했다. 좀만 잘못하면 모가지가 날라가는데 어쩔 수 없었던 일이다. 노론빨로 즉위한 영조는 남인과 소론의 민심을 얻기 위해 당시 불던 피바람을 멈추고 탕평책을 펼쳤다. 물론 여전히 노론 쪽에 편향되어 있기는 했지만. 이후 정조 때에 붕당을 가리지 않고 등용하면서 붕당의 개념이 조금씩 사그라들었다. 하지만 붕당이 없어진 대신 [[홍국영]] 같은 세도 세력들을 키워준 게 문제가 되었고 탕평책은 신하들 간의 상호 견제 대책을 마련하지 못하게 되는 계기가 되면서 훗날 [[안동 김씨]]와 [[풍양 조씨]] 간의 세도정치 신경전을 불러일으키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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