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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라트 아데나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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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부}} {{인물 | 그림 = 콘.png | 이름 = 콘라트 아데나워 | 글씨색상코드 = white | 배경색상코드 = #d2691E | 영문 이름 = Konrad Adenauer | 생년월일 = 1876년 1월 5일 | 사망일 = 1967년 4월 19일 | 국적 = [[독일]] | 별명 = | 출생지 = | 직업 = 정치인 | 경력 = | 소속 = '''[[독일연방공화국]]의 제1대 연방총리''' | 정당 = 기독교민주연합 | 표방이념 = ''[[중도우파]] ~ [[우파]]'' <br> [[기독교 민주주의]], [[반공주의]], <br> 독일식 [[내셔널리즘]] }} 전후 독일의 경제발전의 초석을 닦은 정치인이다. ([[라인 강의 기적]]) 단순히 기초만 닦은 게 아니라 경제성장과 국부증대, 복지정책, 서구권 편입 등의 서독-더 나아가선 현재의 도이칠란트의 기초 자체를 세운 사람이다. [[자유민주주의]]와 자유 [[시장경제]] 체제<ref>아데나워 이전의 독일은 [[국가자본주의]] 체제에 더 가까웠다.</ref>를 독일에 뿌리내린 정치인이라고 할 수 있다. 상대방 후보를 비방하거나 그림의 값을 후려치는 소소한 과오가 있긴 하지만, 서독을 일으켜서 소련을 막고 유럽과 세계 평화를 가져온 공에 비하면 정말 귀여운 수준이다. 특히 공 못지않게 과오가 큰 편인 동아시아권 지도자들과 비교한다면. 오히려 저런 일화라도 없었으면 우상화 작업을 했을 거란 의심만 생겼을 것이다. [[한강의 기적]]을 이끈 박정희와 다른 점은 이 사람은 경제성장과 함께 자국 노동자들과 빈곤층들의 삶을 개선하기 위한 사회안전망 구축까지 병행하는 사회적 시장경제를 집권하면서 내세웠다는 것이다. ㄴ 물론 양차대전 한참 전부터 준 초강대국, 기술강국, 노동강국이었던 도이칠란트의 경제를 재건하는 것과 개판 5분전을 떠나 거의 아무것도 없는 국가의 경제를 발전시키는 건 감안해야겠지만, 그걸 감안해도 박정희 정권은 시민의 권익에 상당히 무관심했다. ㄴㄴ 그걸 감안했는데 그런 소리를 하냐? 박정희 시대의 대한민국은 니가 말했던 것처럼 경제적으로 매우 열악한 상황이었고, 공산화 위협에 맞서 최대한 빨리 국가경제를 건설해야 되는 상황이었다. 복지정책, 균형발전 이런 거 따지느라 경제발전이 미적미적 거렸으면 북한과의 체제대결에서 패배하고, 나아가 적화통일로까지 이어질 수도 있었다. 단순히 경제성장 최대한 빨리시키고 싶어서 그랬던 게 아니라, 국가의 명운이 걸려있는 상황이었다. 그리고 노동자들의 노동권이나 이런 건 좀 부족했다 치더라도 [[새마을 운동]]같은 농촌 근대화 프로젝트들을 실행하거나 이중곡가제 같이 농가 소득 증대를 위한 정책들을 추진하는 등 국민경제 발전에도 상당히 많이 신경섰다. ---- {{-}} {{역대 독일 연방총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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