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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를로스 헤스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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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rlos Norman Hathcock II''' 생몰년도: (1942~1999) 미국 해병대의 부사관 [[베트남전]]당시에 활약한 미 해병대의 전설적인 저격수이며 One Shot, One Kill개념의 창시자이시다. 저격술에서 가장 어렵다고 하는 역저격에 뛰어날 정도로 명사수였고 공식사살기록인 93명의 반 가까이를 적 저격수 사살수로 채웠다고 한다. 그의 공식 사살전과는 미국 기준 제 4위 였으나 당시 미국 사살판정기준이 별도의 장교가 사살을 직접 확인해야지만 인정되는 것이었기 때문에 실제 사살숫자는 그보다 훨씬 많아, 총 전과는 300명을 넘을 것이라는 추정도 있다. 베트남전 초기 헤스콕의 보직은 헌병이었다. 왜냐하면 해병대에는 특화된 저격수가 없었기 때문이였다. 그는 역저격에 특화되서 적 저격수와의 저격 대결에서 이기기도 했는데 한 전투에서 12명의 적 저격수를 카운터 스나이핑(역저격. 적 저격수를 사살)으로 머가리를 깨트린적이 있었다. 적 저격수의 조준경에 정확히 구멍을 내는 헤드샷을 할 정도로 경이로웠다. 이 기록은 현재까지 실전에서 유일한 성공사례이다. [[베트콩]]놈들은 그를 하얀 깃털(white feather,Lông Trắng)이라고 할 정도로 지렸다고 한다. 그외에도 [[M2 브라우닝]]으로 세계 최장거리 저격기록(약 2,300m)을 세웠고 이 기록은 35년이 흘러서야 깨졌다. 그리고 물위를 달리는 고속보트 위에서 대략 700m거리밖의 베트콩을 저격하는 등 곡예에 가까운 경이로운 저격술을 보여줬다. 그러나 케산 공방전 당시 기계화 정찰대를 따라 이동중, 탑승한 장갑차가 지뢰를 밟아 부상을 입었으며, 차량이 불타기 시작하자 탑승한 동료 전원을 끌어냈으나 자신은 큰 화상을 입었고 특히 손을 심하게 다쳐 죽음의 고비에 몰리기도 했다. 결국 그의 강한 정신력으로 재활에 힘을 쏟아부어서 그 이후 미 해병대 저격 교관으로 근무하게 되었다. 이때의 부상으로 인해 다발성 경화증(MS)이 남았고 하도 심해져서 복무 20년을 채우기 55일 전에 군에서 방출을 한다. 그덕분에 군이 자신을 쫓아낸 듯한 느낌을 받을 정도로 평생을 [[PTSD]]에 시달렸다고 한다. 다만 방출은 헤스콕에 대한 배려 차원으로 해줬는데 그 당시엔 병 문제로 은퇴하는 것(의병제대)이기 때문에 100% 장애 연금을 받게 되는 것이며, 반대로 20년을 채운 후 정상 은퇴할 경우에는 최종 월급의 50% 밖에 받지 못하도록 되어 있었다. 그는 전역후 상어 낚시를 하면서 우울증을 극복했으나 다발성 경화증이 악하되서 1999년 향년 만 56세의 나이로 사망한다. 그는 화려한 전과와 미 해병대 저격학교의 모토인 'One shot One kill' 개념을 창시 한것에 큰 의의가 있었다. 그리고 그는 [[네이비씰]] 팀 식스(현 DEVGRU,데브그루)와 많은 군경([[SWAT]])에 저격 강습을 했었다고 한다. [[분류: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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