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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빠름}} [[파일:전격전 정책.jpg]] ==개요== [[제2차 세계 대전]] 초기에 [[나치 독일]]이 [[폴란드]]와 [[프랑스]]를 따먹을때 썼던 테크닉이다. 번개와도 같은 빠른 진격 덕분인지 독일어로 블리츠크리그(Blitzkrieg)라고 불려졌으며 전격전(電撃戦)이라는 명칭은 일본에서 유래된 한자다. ==방법== [[파일:WW2 Blitzkreig.jpg]] 요약하자면 속도를 요구하는 [[기동전]]으로 이 전술의 방식은 다음과 같다 :1.[[루프트바페|공군]]의 지원을 받은 1선 전차 부대가 빠른 속도로 신속하게 적의 방어선 취약지점에 돌파구를 형성해 후방으로 진출 :2.후속하는 부대가 돌파구를 확장시켜 적 방어선을 자른 뒤 적을 고립시키게 함 :3.뒤따르는 보병 부대가 나눠져서 고립된 적의 부대를 섬멸 시키는 것 그 사이에서 선발부대는 최대한으로 후방에 진출하는게 우선이였고 적과의 교전은 우선 순위에서 밀리게 된다. ==진실== ㄴ병신같아서 진실 틀 뺐다 '''원래는 없는 전술이다''' 전격전 그딴건 당시 군사 전문가도 아닌 [[기레기]]들이 만들어낸 허상이였던 것. 그것도 [[독일]]의 전투 수행 방식에 대해 [[소련]]과 서방 세계의 전술적, 작전술적 개념들을 이것저것 짬뽕시킨 것에 불과하다. 한마디로 노리고 만든게 아니라 우연히 잘 맞아 떨어진 것. 이런 개념을 먼저 창안한건 다름아닌 풀러, 리델하츠 등 [[영국]]의 군사학자들이였고, 당시 연합군이였던 영국은 이 전술을 이해 못해서 그냥 버린걸 기동전 덕후인 [[하인츠 구데리안]]이 이 개념을 주워 먹어서 실천에 옮긴 후 그 결과가 충격적이자 앞서 말한 블리츠크리그라는 중2병 스러운 이름으로 지은 것이다. [[군사학]]적으로 증명되지 않는 전술이라는 점에서는 [[소련|상대 국가]]가 쓰던 [[우라 돌격]]과 비슷하다. 혹시 아직도 이걸 실존하는 전술이라고 하는 좆문가 밀뜨억 새끼들에겐 '전격전의 전설'이라는 책을 보여주든 이 책으로 머가리를 한대 치든 하자. 꿈깨라 독뽕새끼들아 그리고 어설픈 밀덕 독뽕새끼들이 착각하는 점이 있는데, 독궈의 기동전 원리는 아군의 기동에 의한 적 신경망의 마비가 아니라 전통적 교리인 '실재하는 적 전력을 기동을 통해 포위, 물리적으로 섬멸하는 것이 핵심'이다. 결코 1선부대가 적 주력과 전투를 회피하는게 아니라고. [[공지전|기, 보, 항공기의 협동]]도 이미 1차대전때 정립된 후티어 전술의 응용일 뿐. 풀러의 마비론은 독퀴새끼들도 받아들인 적이 없고, 심지어 쏘오련의 종심돌파이론 창시자인 투하체프스키도 부정한 이론이다. 마비는 씨발. 그나마 전통적인 전격전에 대한 착각 + 풀러의 마비이론에 최대한 가까운 결과를 낸건 미군이었다. [[패튼]]이 이끄는 미 3군이 이런식으로 고속 기동전을 벌였다. 물론 후속하여 개피보면서 돌파구를 확장해야 하는 땅개들과 포병들이 빡쳐했던건 덤. 원래 없는 개념인 전격전이 이렇게 유명세를 탄 제일 큰 원인은 바로 6주만에 항복한 프랑스에게 있다. 2차대전 이전 최강의 육군국으로 불리던 프랑스가 믿기지 않을 정도로 빨리 항복하자 너도나도 '오오 이건 독일의 기발한 전략전술 때문인게 분명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근데 제대로 파고보니 바게뜨 놈들이 피자랑 스시의 싸대기를 후려갈기는 트롤러였던거지. 진짜 리얼인게 프랑스는 지도부가 모두 틀딱이여서 진거다. 원래 나이 많은 장군들이 틀딱의 경도가 좀 심하게 딴딴한데, 독일 틀딱들이 프랑스 틀딱들 보단 덜 딴딴해서 이긴거임. 실제로 전차의 스펙은 프랑스께 더 우수했음. 통신기를 안달아서 다말아먹었지만 애초에 무전기 안 단 원인도 그 틀딱들 반대 때문이엇으니까. :ㄴ '지도부가 틀딱'운운하기 전에 그냥 그때 프랑스 자체가 질려고 작정한거다. 1차대전때의 아버지 세대들과 얼마 후 소련인들이 처절하게 갈려나가면서도 버티다가 결국 전쟁을 승리로 이끌었는데, 2차대전의 바게뜨 놈들은 한 번 허를 찔려서 주력부대를 잃으니 항복 아니면 도주만 하다가 6주만에 나라 전체가 항복한거다. 통신기 달렸나 안달렸나는 부차적인 것의 부차적인 요소일 뿐이다. ==위 글에 대한 반박== 1. 전격전이라는 단어는 어느 진영에서 먼저 사용했는가? 일단 젼격전이란 단어는 1938년 독일의 군사문헌에서 등장하고, 그 이전에도 사용되었던 단어이다. 하지만 이 단어를 프로파간다의 목적으로 의도적으로 퍼뜨린것은 연합군 쪽이라고 볼 수 있는데, 이들은 자신들의 전력이 훨씬 우세했음에도 패배했다는것을 감추고, 자신들의 패배를 정당화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이 단어를 언론에 노출했다. 그렇다면 독일쪽이 이 단어와 관련된 프로파간다에 반박을 했으면 됬을텐데, 왜 독일측도 이 단어를 즐겨 사용했을까? 그건 연합군이 퍼뜨린 '무적의 독일 전차군단'의 이미지를 독일 또한 원하고 있었기 때문이다.독일은 미국의 전쟁 불참과 영국의 항복을 바라고 있었으며, 이러한 이미지는 그 목적에 도움이 될 것이기 때문에 프로파간다의 목적으로 독일측도 연합측 언론을 따라서 사용한 표현이다. 2. 그렇다면 전격전은 무엇인가? 전격전이란 2차대전 초기 당시의 독일의 불리한 지리학적 정세를 극복하기 위한 만슈타인의 천재적인 임기응변에 불과했다. 본래 작전술이나 전술이란, 최초 행위자가 아닌 다른 사람이 실행해도 어느 효과를 볼 수 있어야 하는것이 조건이고, 또 1940의 서부전역 자체가 일정한 형태의 전술이나 전략이 있었던건 아니었기 때문에 전격전이 정식 작전술이나 전술로서 취급을 받기에는 어려움이 있다. 하지만, 알랙산드로 대왕이 페르시아에 대해 이소스 전투에서 임기응변으로 승리했음에도, 기병에 의한 포위라는 '방식'자체는 남긴만큼, 만슈타인의 '전격전' 또한 현대의 기갑부대에 의한 종심돌파와 포위라는 기본적인 '방식'을 제시한 것에 의의가 있다고 생각한다. 3. 전격전의 전설이란 책은 과연 좆문가의 책인가 일단 이 책은 정치역사학 박사인 칼 하인츠 프리저가 쓴 책이다. 방구석 좆문가인 디시위키충이 쓴 글 보다는 훨씬 더 신뢰성이 높다. ㄴ책 저자가 좆문가란 게 아니라 그 책으로 좆문가 밀덕을 참교육하라는 소리잖아 4. 그러면 만슈타인의 전격전은 리델하트와 같은 영국 군사이론가의 영향을 받았는가? 보통 만슈타인과 구데리안을 까내리고 싶을때 리델하트와 폴러는 꼭 등장한다. 하지만 리델하트나 폴러의 이론과 같은 완성되지 않고, 기초적인 이론은 이미 우후죽순처럼 여러 군사 전문가에게서 나오고 있었다. 게다가 위의 병신이 지 입으로 말했듯이, 간접접근을 중시하는 리델하트와 폴러의 이론과는 달리 독일의 교리는 포위섬멸을 중시했다. 이는 고전적인 독일의 용병방식으로 그 둘과는 좆도 관련이 없다. 그리고 리델하트와 실제 전격전과의 결정적인 차이점은 기갑과 공군의 통합작전의 유무이고, 리델하트의 저서에는 언급조차 되지 않은 것이다. 게다가 리델하트 그 자체가 독일 언론에 빌붙어서 자신의 명성을 올린것으로 유명한 자로, 이런 사람에게 만슈타인이 영향을 받았다고 하는것은 실례다. 1940년의 서부전역은, 만슈타인의 획기적인 생각과 독일의 전통적 군사교리가 합쳐저서 만들어진 것으로, 다른나라의 군사이론가의 영향을 받았다고는 절대로 말할 수 없다. 5. 독일의 기동전 원리는 아군의 기동에 의한 적 신경망의 마비가 아니라 전통적 교리인 '실재하는 적 전력을 기동을 통해 포위, 물리적으로 섬멸하는 것이 핵심'인가? 실제로 간접적인 접근이 의도치 않게 먹혔다고 볼 수 있는 전선은 1940년의 서부전역 밖에 없긴 하지만..정확한 말이다. 독일군은 간접접근이 아닌, 직접적인 섬멸을 교리적으로 중시했고 이를 모든 전선에서 실행했다. 그러나, 작전술적으로는 위의 말이 맞다고 할 수 있겠지만, 전술적인 면에서 독일의 기동전 교리는 1차대전의 돌격대 전술에서 태동한 것이다. 독일군은 철저한 명령형 전술을 토대로 적군의 약점을 신속하게 잡아낼 수 있었고, 약점을 통한 돌파와 그로 인한 간접적인 적군의 붕괴를 전술적으로는 노렸다. 결국 적군의 강점을 회피하고 약점을 노려서 돌파하여 간접적인 붕괴를 노린다는 얘기는 부분적으로는 맞다고 생각한다. 6. 과연 프랑스군은 좆병신이었는가? 지금의 관점에서 볼때 좆병신이 맞지만, 1940 그 당시의 관점에서 봤을때에는 그렇게 좆병신은 아니었고 오히려 그 시대의 관점에서 봤을때, 1차대전의 결과만 생각해 보더라도 프랑스와 영국의 전략이 더 승리할 가능성이 높다고 평가할 수 밖에 없다. 기동력 측면에서 독일에 밀려 역습에 계속해서 실패한 프랑스군이나, 전황을 바꿀 수 있는 단 한번의 아라스에서의 영국의 역습이 철저하게 실패당한것을 볼 수 있듯이 '''(이때 영국군은 제병합동전투의 기본조차 못 보여주는 눈갱을 저질렀다)''' 군사적 능력이나 교리적으로 프랑스는 영국과 별 다를게 없는 상황이었는데. 영국이나 프랑스나 지휘체계나 전략 면에서 거기서 거기였고, 만약 프랑스와 영국이 지정학적 위치가 뒤바뀌었을 때에도 전투는 비슷하게 전개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프랑스와 영국이 시대에 뒤처진 좆병신이라고 보기보다는, 기존의 방어적인 교리로 영국과 프랑스가 전쟁을 수행하려고 할 때, 독일이 갑자기 혁신적인 교리를 들고 나왔다고 말해야 더 정확할것이다. 위에 병신이 프랑스가 너무 보수적이었기 때문에 진것이라고 설명했는데, 프랑스의 장교단이 보수적이었다는것도 당연히 전쟁의 변수중에 하나이다. 그냥 틀딱새끼들이라고 욕하고 가볍게 볼 것이 아닌것. 7. 독일군의 전술적 항공기 운용은 1차대전때 확립된 것인가? 사실 항공기 운용법이야 말로 독일과 영국 프랑스간의 가장 큰 차이점 중 하나라고 볼 수 있다. 연합군측은 항공기를 전략적인 측면에서 봤고, 항공기를 적의 전략적인 목표, 즉 공장이나 도시를 파괴함으로서 간접적인 승리를 얻는것을 목표로 운용하려 했다. 따라서 항공기의 직접적인 전장지원은 '매우 예외적인 경우'에만 허락되었고, 이를 신청하는 행정절차 또한 매우 복잡했다. 그러나 독일측은, 항공기를 전술적인 측면에서 봤고, 항공기의 항속거리를 희생하더라도 직접적인 전장지원 가능성이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따라서 이를 위한 행정절차따위는 없이 ,무전으로 공군지원을 요청하면 45분이내에 지원이 올 정도로 간단하게 공중지원을 요청할 수 있었다. 게다가 항공장교가 기갑제대에 직접 배치되고, 직접 장갑차에 타서 지휘를 할만큼 독일군의 육군과 공군간의 협력은 대단히 유기적이었다.이러한 전술 우선적인 사고방식은 후에 영국본토 항공전에서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하긴 하지만, 서부전역 한정으로는 매우 큰 위력을 발휘했다. 이 방식은 1차대전의 초보적인 항공기 운용과는 차원이 다른 운용방식이고, 연합국과 독일간의 항공기 운용법 차이를 볼 때, 1차대전때 전술적인 공군지원체계가 완성되었다고 하는것은 정말 엄청난 개소리이다. [[분류:밀리터리]][[분류:군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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