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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었을 때 낙양에서 학문을 익혔는데 조정의 높으신 분들에게 부름을 받았으나 빠꾸를 쳤다. 함께 [[강동이장]]이라고 불리는 [[장소]]와 함께 손책에게 등용되었고 참모의 역할을 수행했는데 한명이 종군하면 한명은 후방을 지켰다. 여포가 서주를 먹었을 때 장굉을 불러들이려 했으나 손책과 장굉 모두 여포를 싫어해 거절했다. 손책의 명으로 조조에게 사자로 보내져 허창에 머무르게 되었는데, 조조의 천거로 시어사에 임명되었다. 허창에서 공융 등과 친교를 맺었고, 손책이 요절하고 손권이 뒤를 잇자 이틈에 강동을 넘보던 조조에게 상중에 다른 세력을 치는 것은 도리가 아니며 도리어 조정의 이름으로 은의를 베품이 옳다고 간했다. 조조는 이를 받아들여 손권에게 토로장군과 회계태수를 제수하고, 겸하여 손권을 자기 막하로 끌어들이라고 설득하게끔 장굉을 강동으로 다시 보내줬는데 손권은 그를 맞아 회계 동부도위로 삼았다. 손책이 단양의 도적들을 토벌할 때에도, 손권이 합비에서 싸울 때에도 군주가 직접 전선에 나가 싸우는 것은 옳지 않다고 여러 번 간했고, 장소와 더불어 동오 문관들의 원로격 존재로 내정을 보좌했다. 손권에게 근거지를 말릉(건업)으로 옮기도록 진언해, 211년 천도가 실시되었고 장굉은 이어 오에서 손권의 가솔들을 데려오는 임무를 맡았으나 이듬해 병에 걸려 60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이 때 건업으로 천도한 것은 신의 한 수라고 볼 수있는데 건업으로 천도를 하기를 위해 계획적으로 대대적인 개발을 했는데 이 덕분에 강동의 여러 지역이 개발되고 건업은 후에 강동의 여러 세력의 수도, 중심지로 쓰인다. 난징의 역사에서도 매우 중요한 인물이며, 서예가로도 유명한 인물로 소전을 잘 써서 당시에 명성이 있었다고 한다. 공융이 장굉에게 이전의 수고로운 필적은 대부분 전서였는데, 전 편의 글씨를 보고 흔연히 홀로 웃었으니 다시 그 사람을 보는 것 같다고 평가했다. [[분류:삼국지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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