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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중간 여자}} {{쌤통}} {| class="wikitable" width=59% ! colspan=6 style="background-color:#94153E; color:#ffffff;"|'''[[틀:역대 조선 대한제국 황후|{{색상|white|'''조선의 역대 왕비'''}}]]''' |-]] !colspan=2 | '''숙종 원비<br> 24대 [[인경왕후]] 김씨'''!! → !! '''숙종 계비<br> 25대 인현왕후 민씨''' !! → !! '''숙종 3비<br> 26대 [[옥산부대빈]] 장씨 |-] {| class="wikitable" width=59% ! colspan=6 style="background-color:#94153E; color:#ffffff;"|'''[[틀:역대 조선 대한제국 황후|{{색상|white|'''조선의 역대 왕비'''}}]]''' |-]] !colspan=2 | '''숙종 3비<br> 26대 [[옥산부대빈]] 장씨'''!! → !! '''숙종 계비<br> 25대 인현왕후 민씨<br>(복위)''' !! → !! '''숙종 4비<br> 27대 [[인원왕후]] 김씨 |-] |} [[숙종]]의 두 번째 중전이다. 1680년에 숙종의 첫 번째 중전인 [[인경왕후]]가 죽고, 1년 뒤에 숙종의 두 번째 중전으로 간택되어 궁궐로 들어왔다. 별로 미인은 아니었지만 [[가남풍]] 수준의 추녀였더라면 아무리 가문이 좋아도 간택되지 못했을 것이다. 확 예쁜 장희빈과는 달리 인현왕후는 예쁘다 만 얼굴이다. 요즘 연예인으로 따지자면 장희빈이 [[쯔위]]와 동급이라면 인현왕후는 [[윤채경]]과 동급이다. 그러나 숙종과 관계가 좋지 않았고 궁궐 밖에 있던 [[장희빈]]을 다시 궁궐로 불러서 숙종과의 관계를 좋게 만들려고 노력했다. 그러나 장희빈에게 매를 때리고 계속 경계하라는 말을 하면서 결국 1689년에 [[기사환국]]으로 서인이 조정에서 쫓겨나고 남인이 다시 조정에 복귀하면서 남인 집안 출신인 장희빈은 중전이 되었고, 서인 집안의 출신인 인현왕후는 숙종에 의해 쫓겨나게 되었다. 쫓겨난 인현왕후는 자신의 친정집에서 5년을 보내다가 1694년에 [[갑술환국]]으로 다시 조정에 복귀하였다. 이번에는 남인이 쫓겨나고 서인이 조정에 돌아왔다. 그래서 인현왕후가 다시 중전이 되고 장희빈은 다시 후궁 신분으로 강등되었다. 하지만 여러 가지 병에 시달리다가 1701년에 죽고 말았다. 야사에 의하면 이때 장희빈이 폐비를 거부하며 폐비 민씨의 절을 기어코 받고야 말겠다며 지가 먹고있던 밥상을 엎고 나 세자 낳은 여자야를 시전하다가 숙종에게 뒤지게 쳐맞았다고 한다. 중궁전을 당장 비우라는 숙종에게 내가 무슨 죄를 지어 폐비를 당하냐며 차라리 죽이라고 숙종을 꼬라보고 쌍욕을 퍼부었고, 심지어 숙종을 패려고 하다가 역시 숙종에게 힘으로 밀려 지가 역으로 참교육 당했다. 그리고 그대로 궁녀들에게 머리채 잡혀 쫓겨났다고 한다. 그가 죽고 나서 몇 달 뒤에 장희빈도 처형당했는데 왜냐하면 인현왕후가 죽기 전에 장희빈이 인현왕후를 저주한 사실이 [[숙원 최씨]]에 의해 발각되었기 때문이다. 숙원 최씨는 원래 인현왕후의 무수리였다가 인현왕후 생신상 차리는 걸 본 숙종의 눈에 들어 숙종의 후궁이 되었고, 인현왕후가 자신에게 친절하게 대해주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눈엣가시던 희빈이 중전이 되면 자신이 무사하지 못할 거란 사실을 알고 숙종에게 저주한 사실을 고해바쳤다. 그러자 대노한 숙종은 장희빈에게 사약을 내려 죽게 하였다. 야사에서는 이때 장희빈이 사약을 거부하며 발악하고 아들 [[경종]]의 [[부랄]]을 잡아 [[심영]]을 만들어버리는 등 패악을 부리자 더더욱 대노한 숙종이 궁녀들을 시켜서 장희빈 가슴을 문짝으로 누르고 막대로 입을 벌려 사약 세 사발을 뒤질 때까지 퍼부었다고 한다. 강제로 사약 세 사발을 퍼먹은 장희빈은 오장육부가 녹으며 분수처럼 피를 토하고 바닥에 고꾸라져 추하게 죽었다고. 죽자마자 생전에 저질렀던 악행이 너무 많아 하늘의 천벌이 내려졌고, 원래라면 시체가 천천히 썩어야 정상이나 장희빈의 시체는 천벌로 인해 순식간에 썩어 생전의 그 예쁘던 모습은 어디로 가고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끔찍하게 변형되었다 고 한다. 온 궁궐에 시체썩는냄새가 진동했고 숙종은 당연히 그 지독한 냄새에 매우 불쾌해하며 당장 시체를 궁 밖으로 내다 버려라 명했다. 결국 궁녀들과 내시들이 다 썩어 얼굴도 알아볼 수 없게 된 장희빈의 시체를 궁 밖 길거리까지 끌고 가서 음식물 쓰레기 버리듯이 내다 버렸다. 장희빈에 대한 분노가 아직도 풀리지 않았던 숙종은 저 교활한 년의 시체를 짐승 밥으로나 주고 장례도 절대 치르지 말라 명했다. 그 이후로도 숙종은 죽을 때까지 장희빈에 대한 분노를 누그러뜨리지 않았으며 경종이 뭐 잘못할 때마다 장희빈이 낳아서 장희빈 유전자를 받아서 그런 거라고 대놓고 흉을 볼 정도에, 틈만 나면 이미 죽은 장희빈에게 저주를 퍼부었다고 한다. 노론 이 장희빈 악녀화를 위해 지어낸 얘기일 가능성도 있으나 사실이 아니라는 증거도 없으니 믿거나 말거나 {{진실}} [[숙종]]에게 있어서 장희빈은 한낱 장기말에 불과한 존재였다. [[송시열]]이 자신에게 마치 [[장거정]]처럼 굴자 숙종은 안그래도 인현왕후가 별로 미인은 아니라는 점을 이용해서 장희빈과의 사이에서 득남을 했고 그걸 도에 지나칠 정도로 큰 잔치를 해서 트랩을 파놨는데 송시열이 여기에 걸렸다. 하지만 송시열이 사망하자 무게추가 남인에게 기울었고 그것 때문에 숙종은 장희빈에게 또 죄를 뒤집어씌워 죽였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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