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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다와라 호조씨가 사나다의 나구루미 성을 점령한 대가로 벌어진 전투.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기존에 소부지레이(惣無事令, 함부로 싸우면 뒤질 것이라는 얘기)를 선포했었는데 이를 호조가 기세좋게 어긴 셈이 됐으니 히데요시로서는 호조를 밟아줄 필요가 있었다. 당연히 호조는 어떻게든 변명해보려고 노력했으나 히데요시에게는 좆도, 단 1도 안 먹혔다. 히데요시는 지 휘하에 있는 다이묘를 모두 소집해 병력을 총출동시키게 되는데 그 병력이 약 21만명. 임진왜란 첫 침략할때 병사 숫자랑 유사한 수준이다. 그나마 임진왜란이랑 다른 점은 손해가 별로 없었다는거? (물론 해외 원정과 국내 토벌전은 여러모로 상황이 다르지만) 진짜 전국 다이묘가 다 모였는데 [[다테 마사무네]]란 중 2병 놈이 밍기적거리다가 뒤늦게 합류했더랜다. 마사무네는 이때 히데요시가 얼마나 무서운 새끼인지 실감했다고 함. 하기야 다테는 호조의 동맹인데 좋다고 달려갔음 그것도 좀 이상해보일 수 있겠다. [[호조 우지나오]]를 비롯한 호조 일가는 최강 거성인 오다와라에서 농성을 해봤지만 적에게 완전히 포위-봉쇄당한데다 예상과 다르게 히데요시군의 군량이 떨어지지도 않자<ref>오히려 히데요시는 이 때 적들 코앞에서 시장과 유곽을 열어서 오다와라에 농성중이던 호조 병사들의 사기를 떨어뜨리는 심리전을 펼칠 정도였다. 당시 히데요시는 자기가 손에 넣은 은광과 금광의 재고를 탈탈 털어 만전을 기햇기 때문에 그 물량빨은 호조가 상상하던 것 이상이었다.</ref> 당황하면서 화의를 맺기로 한다. 사실 그냥 항복이라고 보면 됨. 실제로 당주인 [[호조 우지마사]]는 할복해야 했고, 아들 우지나오는 고야산에 추방당하며 가문이 통째로 몰락. 이 사건을 계기로 '개깡패 땡중 겐신도 우릴 어찌하지 못했다'며 뻐기던 호조는 무너졌고 히데요시의 천하가 찾아왔다. [[분류:센고쿠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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