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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등포구 편집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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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시흥군 상북면과 하북면, 양천군 양화리였던 곳이다. 허나 1914년 부군면 통폐합 크리로 상기한 곳들이 시흥군 북면으로 통합되었다(양화리는 을축년 대홍수로 안양천의 흐름이 바뀌어서 자연스레 편입된 곳이다). 이후 1920년대에 '영등포면'으로 이름이 바뀌었으며, 1940년 병참기지화 정책의 일환으로 1936년에 경성부에 강제편입되었지만 [[유형원]] 슨상님이 서울 확장 이야기할 때 영등포도 한성부에 넣어야 한다고 언급하셨기 때문에 일본인들이 아니더라도 언젠가는 반드시 서울에 편입됐을 듯하다. 그래도 초기엔 독자적인 정체성이 강해서 이 지역 주민들은 "나 서울사람이요" 안 하고 "나 영등포 사람이요"했다고 한다. 물론 이렇게 말하고 다니던 토박이들이 전부 요단강 건너이고 외지인들이 대부분이 된 후부터는 그냥 서울이다.  
원래 시흥군 상북면과 하북면, 양천군 양화리였던 곳이다. 허나 1914년 부군면 통폐합 크리로 상기한 곳들이 시흥군 북면으로 통합되었다(양화리는 을축년 대홍수로 안양천의 흐름이 바뀌어서 자연스레 편입된 곳이다). 이후 1920년대에 '영등포면'으로 이름이 바뀌었으며, 1940년 병참기지화 정책의 일환으로 1936년에 경성부에 강제편입되었지만 [[유형원]] 슨상님이 서울 확장 이야기할 때 영등포도 한성부에 넣어야 한다고 언급하셨기 때문에 일본인들이 아니더라도 언젠가는 반드시 서울에 편입됐을 듯하다. 그래도 초기엔 독자적인 정체성이 강해서 이 지역 주민들은 "나 서울사람이요" 안 하고 "나 영등포 사람이요"했다고 한다. 물론 이렇게 말하고 다니던 토박이들이 전부 요단강 건너이고 외지인들이 대부분이 된 후부터는 그냥 서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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