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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플/망함}}{{심플/파멸}}{{분노}} '''石門戰鬪''' [[나당전쟁]]이 한창이던 672년, [[신라]]와 [[당나라]]사이에서 벌어진 전투. [[고구려]]부흥군과 으쌰으쌰해서 지금의 [[요령성]] 봉성시인 오골성에 선빵을 때린 우리의 신라군. 하지만 안시성의 고구려 부흥군과 합류하기전 [[말갈]]출신의 인간병기인 이근행에게 탈곡당하고 요동은 ㅌㅌ하고 빠르게 고구려 부흥군이 있던 황해도로 철수했다. 그리고 이근행은 평양으로 이동해 황해도의 고구려부흥군을 조지기로 결정했다. 근데 [[이근행]]이 당군의 대빵으로 등판하고 당시 신라 정예군은 끝까지 버티고있던 [[백제]]잔당을 토벌하는데 몰빵되서 어중이떠중이들만 몰렸기 떄문에<ref>사실 고구려부흥군한테 북방전선을 문제없이 넘긴다음 백제잔당을 조질려고 했는데, 백제잔당이 당나라랑 짝짜꿍해서 쳐들어와서 전선이 개판이 되었다.</ref> 한시성, 마읍성털린뒤 연백평야지역일 석문에서 탈탈 털리고 의전서열 탑10안에 드는 7명의 장교들과 수많은 병사들이 죽는 수모를 겪게 되었다. 이 대패로 인해 황해도의 고구려 부흥군은 전멸했고 신라는 전선을 경기북부로 내린뒤 신라 전역에 성을 쌓는등 철저한 방어태세로 일관했고 신라군은 [[매소성 전투]]라는 쌉대박을 터뜨리기 전까지는 '하 시발... 저 짱깨새끼들한테 절대못이겨'하면서 엄청난 전투의욕 상실과 좌절, 슬픔에 시달려야했다. 안그래도 수도가 [[경주|한쪽]]에 틀어박혀서 북진을 제대로 못하던 신라는 이 전투때문에 [[대동강]]이남에서 깔끔히 손털게 되었고 [[왕건]]이 황해디언들을 이주시켜서 평양을 재건시키기전까지 완전히 황폐화되었다. [[분류:전투]][[분류:한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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