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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의 역사}} 대월 말기에 일어난 농민봉기. 서산당의 난, 떠이썬당의 난이라고도 불린다. 당시 대월 남부를 다스리던 무신정권 완주는 장복만이라는 간신배가 실세였다. 문제는 장복만이 워낙 무능해서 백성들의 반발이 날로 갈수록 심해졌다. 조세제도는 천문학적으로 무겁게 걷는데다가 쓸데없이 복잡하고 당시 호구조사 이상으로 높게 잡아서 도주한 사람들이 장난아니게 많았다. 장복만 지 입맛대로 정한 법과 빈번한 횡령은 덤이었고 설상가상으로 외부로부터는 톤부리 조의 딱신 대왕이 완주를 위협하고 있었다. 이 헬-완주의 암울한 상황에서 농민들의 분노가 극에 달하자 서산 지역의 어느 삼걸들은 빡쳐서 농민들을 선동하고 기의를 일으킨다. 완악, 완혜, 완려 이 삼형제들이 일으킨 이 기의는 완주의 백성들 뿐만 아니라 소수민족들, 해상 짱깨세력한테도 지지를 얻었다. 처음에는 세력이 미미하고 훈련 부족으로 관군들한테 얻어터졌지만, 약간 승리를 거둠에 따라 관군세력이나 지방호걸들을 설득으로 포섭함으로서 점차 서산 삼걸들의 우세로 기울어지게 된다. 결국 장복만은 축출되고, 한 술 더떠서 완주 세력이 집결하던 귀인, 광의, 평순까지 서산 삼걸의 수중으로 들어오면서 대월 서산조가 탄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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