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무위키
조무위키
둘러보기
대문
최근 바뀜
임의의 문서로
미디어위키 도움말
도구
여기를 가리키는 문서
가리키는 글의 최근 바뀜
특수 문서 목록
문서 정보
행위
문서
토론
편집
역사 보기
부곡
편집하기
경고:
로그인하지 않았습니다. 편집을 하면 IP 주소가 공개되게 됩니다.
로그인
하거나
계정을 생성하면
편집자가 사용자 이름으로 기록되고, 다른 장점도 있습니다.
스팸 방지 검사입니다. 이것을 입력하지
마세요
!
'''部曲''' == 개요 == [[한중일]]에 있었던 존재. == 한국 == {{심플/헬조선}} [[신라]]시대부터 국가가 지방행정제도를 정비하면서 만든 특수한 행정구역이다. 시대마다 취급이 달랐다. 절대다수가 [[하삼도]]지역에 밀집되있었고 그 이북지역에는 [[수원]], [[평택]]지역제외하고 일부 현에 한두개 있는 수준으로 매우 적었다. 비정이 일반 행정구역인 주군현에 비해 어려운 편이다. 하지만 쉬울땐 [[괴산군#감물면|감물면]](충주 감물내미부곡), [[처인구#백암면|고안리]](양지 고안부곡)처럼 친절하게 위치를 설명해주고 어려워도 리밑의 작은 마을에서 민담, 유적등으로 흔적이 드러나는 경우가 차고 넘치기 때문에 사료가 거의 없어 이름만 언급되는 [[발해]], [[삼국시대]]의 행정구역에 비하면 비정난이도가 매우 낮은 편이다. === 고려이전 === {{인용문|이제 살펴 보건대, 신라에서 주군(州郡)을 건치(建置)할 때, 그 전정(田丁) 호구(戶口)가 현이 되지 못할 것은, 혹 향(鄕)을 두거나 혹 부곡(部曲)을 두어 소재(所在)의 읍에 속하게 하였다....(중략)... 김부식(金富軾)이 편찬한 《삼국사기》 지리지는 다시 여기에 쓸 것 없고, 정인지(鄭麟趾)가 편찬한 《고려사》에도 또한 《삼국사》를 그대로 기록하였다. 이제 저명한 성씨(姓氏)는 그 성씨의 근본되는 땅을 싣지 않을 수 없으므로 주관육익(周官六翼)에 의거하여 증거대었는데, 지금 상고할 만한 것은 겨우 열에 하나 둘이며, 모두 읍마다 고적(古跡)의 밑에 달아두었다.|[[신증동국여지승람]] 경기도 여주목 등산장조}}[http://db.itkc.or.kr/dir/item?itemId=BT#dir/node?grpId=&itemId=BT&gubun=book&depth=5&cate1=G&cate2=&dataGubun=%EC%B5%9C%EC%A2%85%EC%A0%95%EB%B3%B4&dataId=ITKC_BT_1299A_0080_010_0010] [[고구려]], [[백제]], [[신라]]모두 일개 구단위정도의 작은 부락을 통치하는 부족국가에서 넓은 땅을 가진 고대국가로 성장하면서 지방행정구역을 정비하기시작했다. 하지만 짱깨식 군현제를 그대로 갖다붙이기엔 애로사항이 많았는지 좀큰 부족국가가 있던 읍락은 [[군]], 좀 작은 부족국가가 있던 읍락은 [[현]]으로 정비했다. 이렇게 군과 현을 정비하는중 현으로 정비하기 거시기할정도로 매우 작은 읍락을 [[부곡]]과 [[향]]으로 정비하면서 한국사에 등장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김부식]] 개새끼가 [[삼국사기]] 지리지를 쓸 때 기록을 안한 것 때문에 더 자세한 것에 대해선 알 수 없다. === 고려 === {{불쌍}} 대개 [[향#鄕|향]], 그리고 고려때 신설된 [[소(행정구역)|소]], 장과 함께 특수행정구역으로 편제되었으며 지역의 향리인 부곡리가 민정을 맡았다. 존나작은 깡촌을 위한 일반 행정구역이 쁘띠 [[반역향]]으로 전락한 기점이기도 하다. 왜냐하면 [[왕건]]이 [[후삼국시대]]에 각지를 점령하면서 자기들에게 저항한 호족과 그들휘하에 있던 주민들을 강제로 부곡민으로 편성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배경때문에 [[신증동국여지승람]]기준으로 원간섭기이전까지 '''381개'''의 부곡이 만들어졌는데, 이중 [[하삼도]]에 '''352개'''의 부곡이 만들어졌다.<ref>[[쌍도국]]에 '''203개'''가 만들어졌고 [[전라민국]]에 81개, [[멍청국]]에 68개부곡이 만들어졌다. </ref> 하삼도 이외지역의 경우 [[수원]], [[용인]], [[평택]], [[안성]]지역에 1몰빵되있던 경기도의 19개 부곡과 강원도 [[강릉]], [[정선]]등 일부지역에 깨작깨작있던 10개부곡이 전부. 부곡의 주민들은 일반주민보다 일은 더 하고 세금도 더내면서 취급은 더 못했고, 지역 향리들은 아무리 날고 기어도 5품이상의 고위관직은 꿈도 못꾸는 꼴이 되었다. 하지만 [[원간섭기]] 부곡에 살던 사람이 [[원나라]] 사신에게 뱃지를 받았거나, [[권문세족]]이 되었거나(이게 대부분이다.), 소수 몽골침공시기 몽골군을 패퇴시킨 부곡에 한해서 현으로 승격되기도 했다. === 조선 === {{해체}} 몽골침공때 수많은 부곡, 향이 흔적도 없이 사라짐 + 향, 부곡제도가 가진 심각한 비효율성 + [[노비종모법]]으로 늘어난 노비(?)등으로 인해 대거 통폐합되었고 그나마 일부 속부곡으로 남은 것도 [[한명회]]의 [[오가작통법]]으로 시작된 면리제가 실시되면서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하지만 조선이 향, 소, 부곡, 처, 장, 그리고 속현을 통폐합시킬 때 수령이나 지역민이 이들의 소속을 지꼴리는대로 정해버린탓에 [[통감부]]의 월경지정리정책과 [[부군면 통폐합]]이전까지 조선 행정지도를 누르렁으로 만드는 주옥같은 월경지와 견아상입지가 대량으로 만들어지고 말았다. == 듕귁, 좆본 == {{노예}} 높으신분의 노비를 의미한다.
요약:
조무위키에서의 모든 기여는 CC BY-SA 4.0 라이선스로 배포된다는 점을 유의해 주세요(자세한 내용에 대해서는
조무위키:저작권
문서를 읽어주세요). 만약 여기에 동의하지 않는다면 문서를 저장하지 말아 주세요.
또한, 직접 작성했거나 퍼블릭 도메인과 같은 자유 문서에서 가져왔다는 것을 보증해야 합니다.
저작권이 있는 내용을 허가 없이 저장하지 마세요!
취소
편집 도움말
(새 창에서 열림)
이 문서에서 사용한 틀:
틀:노예
(
편집
)
틀:불쌍
(
편집
)
틀:심플/헬조선
(
편집
)
틀:알림 상자
(
편집
)
틀:인용문
(
편집
)
틀:해체
(
편집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