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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증법적 유물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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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지주의}} {{빨강}} {{공산주의}} {{위백}} 좆무위키 진신류 씹새들이 탄압해서 디시위키에 백업한다 == 개요 == [[마르크스주의]]의 핵심 사상이자 그 자체의 근원되는 사상. 단어의 의미를 그대로 해석하면 의식의 외부가 의식의 방향성을 결정하고 주관의 외부가 주관의 방향성을 결정한다는 [[유물론|유물론적 관점]]에 [[변증법]]을 도입해 그 안에서 지속적으로 대립과 투쟁이 일어나고 있으며, 그것은 더 큰 종합을 향해 나아간다는 관점이다. 개념 자체는 그래서 그렇게 특이한 것이 아닌데, 예를 들어 종이의 발명이 관료제의 발전을 더 촉진하느냐(사적 유물론) 민족국가의 성립이 관료제의 발전을 더 촉진하느냐(사적관념론)는 문제를 두고 생각해 보았을 때, 어떤 것이 더 우선적인 변수가 되어서 실체에 직접적으로 작용하게 되는지는 각각의 대립하는 조건들 사이의 대립과 투쟁의 결과물로서 변증법적으로 드러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발견과 이들이 전개한 논리 자체는 굉장히 보편적인 것이었는데, 이는 순수하게 변증법적 유물론이라는 개념이 인간의 의식 전반에 영향을 끼치는 제반 조건을 파악할 수 있게 만들어주었기 때문이었다. == 변증법과 유물론 == 변증법은 게오르기 헤겔이 말한 시대정신(혹은 세계정신)이란 대명사로 풀이할 수 있는데, 독일고전학파는 형이상학의 시대정신이 존재하여, 역사의 변화는 곧 시대정신의 변화라고 설명하였다. 허나 마르크스는 관념적인 시대정신이 아닌 벨 에포크 시대의 영향을 받아 지식과 과학에 따{라 시대가 바뀐다고 설명하였다. 그런즉 관념적인 해석의 변증법을 살리려면 유물론이 죽게 되고 유물론을 살리고자하면 변증법이 죽게 되는 모순은 마르크스 사후 엥겔스도 정확하게 풀이해내지 못하였다.(엥겔스는 자연변증법이라는것으로 그것을 시도하려했지만, 자연변증법은 히틀러의 우생학에 기반한 인종투쟁만큼이나 말도안되는 유사과학이다. 양자역학의 발전으로 물질상관관계는 ' 물질 ' 이라는 개념을 소멸시켰다.) 그럼에도 마르크스와 엥겔스가 변증법적 유물론을 제창한 이유는 19세기에 유물론이란 형이상학(기독교적 사상)이 지배하고 있는 서유럽에서 수구를 타파할 수 있다 여겨지는 과학적인 이념이었고, 이를 바탕으로 시대는 생산수단에 따른 계급투쟁의 연속성이라는 계급투쟁변증법적 역사관을 수립하여 수구와 분리된 교조적인 자신들만의 과학적이라 믿는 무오류의 혁명적인 세계관을 만들어내기 위함이었다. 이렇게 만들어진 변증법적 유물론은 관념론을 자신들의 이념으로 판단할 수 있게 되어 심취하기 좋게끔 만들어졌고 한번 심취하면 혁명가라는 자아도취에 빠지기 좋은 사상으로 완성되었던 것이다. == 마르크스와 유물론 == 마르크스의 유물론은 얼핏 보기에 합리적으로 발생하였다 할지도 모른다. 그 동안 독일철학의 범람 중에는 관념론이 그 핵심 이였는데, 그 중에는 동양의 주자학 같은 매우 조잡하며 증명할 수 없어 고려할 가치가 없는 추상적이고 피상적인 철학들도 존재하였고,([[루드비히 비트겐슈타인]]의 철학이 특히 그러하다.) 이러한 철학에 대한 도전으로 마르크스는 유물론을 지니게 되었을 수도 있다. 그렇게 유물론을 신봉하게 되자 곧이어 그는 [[포이어바흐]]의 무신론에 영향을 받아 헤겔 관념론의 집대성인 변증법을 비판하게 되는데, 그러면서도 변증법을 " 유물론 " 이라는 세계관 안에서 해석하기에 이른다. 헤겔은 역사와 사회의 발전은 당대의 인민들이 원하는(정확히 풀이하자면 무의식중에 바라는) 시대정신으로 나아간다고 풀이하였는데, 여기에다가 유물론(사적 유물론)이라는 교조성을 결합하여 궁극적으로 ’사회는 변증법에 따라 변할 것이다. 단 앞으로 미래에는 공산주의 공동체가 '반드시'도래하게 될 것이다’ 라고 주장하였던 것이다. 마르크스의 생애 가장 큰 터닝 포인트는 1848~1849년에 발생한 독일의 3월 혁명 이였는데, 오스트리아제국의 재상 메테르니히는 독일의 힘을 약화시켜 오스트리아의 지배를 공고히 하고자 독일을 38개의 지방자치로 쪼개놓았고 이러한 조치는 프랑스 제 1제정의 지배아래 신음하며 발생하였던 독일의 민족주의적 독일통일이란 저항을 불러일으키게 되었다, 허나 독일의 3월 혁명은 완전한 실패였다. 이러한 혁명의 목소리는 중앙권력을 약화시켜 독일을 더더욱 분열시키기에 이르렀으며, 이내 독일의 인민들은 [[분리주의]]나 [[자유주의]]가 아닌 강력한 중앙권력에 의해서 통합되어야한다는 목소리에 공감하기 시작했다. 그러한 시대정신을 타고 등장한 것이 비스마르크였고, 그는 유명한 철혈연설을 통해 "혁명은 실패했으며, 통일은 피와 철 그리고 강력한 중앙권력에 이뤄질 수 있다" 라고 선언하게 된다. 결국 프로이센은 헤겔이 예언했던 대로 시대정신을 향해 비스마르크라는 영웅에 의해서 통일을 이루게 되었고, 정작 마르크스가 지지했던 프랑스의 파리코뮌은 대단히 야만적 이였던 코뮤나들의 학살행위로 프랑스 인민들의 지지를 얻지못하고 파리에서만의 운동이 되어 멸망하게 되었는데, 상황이 여기까지 흘렀다면 마르크스는 생각을 고쳐 사상에 대한 수정이 불가피했었지만 결국 그는 그것을 수정하지 않고 죽게 되었다. 종합하자면 마르크스는 철학에 관심이 있어 그것을 실제로 구현할 수 있는 방법으로 모색하였으며, 독일의 3월 혁명을 통해 자코뱅적인 성격을 띄게 되었고, 이후 영국으로 이민을 온 뒤 산업혁명의 기적과도 같은 발전과 그 그늘 속에 가려진 피 지배층의 참혹한 현실을 보면서 그러한 모순을 해결할 수 있는 철학을 만들어냈다고 여기게 되는데, 그것을 본인은 과학적인 " 진리 " 라고 불렀으며 이후 대중들에 의해 변증법적 유물론이라 불리우게 된다. == 사적 유물론과의 관계 == 문제는 이것을 사적 유물론(Dialectical and Historical Materialism 줄여서 'DIAMAT' 이라 불린다.)으로 들여와서 필연성으로 환원시켰을 때 발생했다. 일견 당시에는 특출한 것으로 보일 수는 있었어도 이상할 건 없었던 개념을, 당위로서의 필연성으로 이끌어낸 [[블라디미르 레닌]]에 의해 [[공산당]] 독재를 합리화하는 도구로서 사용되었던 순간 자신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를 알지 못하면서 그것을 하게 되는 절망적인 상황에 놓이는 경험에 이르게 되었던 것이다. 그 원인은 다음과 같다. 역사의 발전을 실체로서 파악하는 것까지가 변증법적 유물론의 기본 개념이었다면, 이 기본 개념을 확장시키면서 이것을 그럼 이용해보면 어떨까 하는 발상이 출현하게 되었는데, 그러면서 동시에 공산주의라는 매우 오래된 기원을 가진 개념을 끌어오게 되었다. [[공산주의]] 항목을 보면 알겠지만 그 역사는 고작 수 백 년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고대 세계에서부터 진행되어 오던 매우 원시적인 사고방식 중 하나였다. 그래서 역사적으로 진행된 많은 대안 공동체 운동들은 공산주의적인 모티프에 기반을 두어 이뤄졌는데, 그 기원은 기독교가 탄생했던 시점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민주주의가 그랬던 것처럼 공산주의 또한 활용할 수 있는 게 아니냐는 생각을 해볼 수도 있겠지만, 민주주의가 처음부터 완전하게 거듭나는 것을 불가능한 목표지점으로 삼아 교조화를 막은 것[* 알다시피 민주주의는 견제의 원리를 깔아두고 있으며, 이상은 존재하되, 완성될 수는 없음을 전제한다]에 비해 마르크스-레닌의 공산주의는 그렇지 않고 처음부터 완결된 원리와 법칙성을 가진 것으로 시작했다. 역사의 발전 단계를 유물론적으로 해석한 사적 유물론은 19세기 놀랍고 비약적인 생산성의 증대를 이룬 [[벨 에포크]] 시대의 영향을 받아 종국에는 모든 인간이 자기가 필요한 만큼 가져가고 능력만큼 생산하는 공산사회로 귀결한다는 오류적 사상을 만들어내기에 이르렀는데, 그리하여 이를 당위로서 여기고 곧바로 현실정치에 대입 시키는 것이 가능하다고 여기면서 자신들의 이념을 교조주의의 무오류로 만들게 된다. 이렇게 교조주의적인 이념이 자리 잡게 되면 무오류의 공산당 외에는 다른 이념이나 정당이 존재할 이유가 없어져, 이로 절대 권력이 출현하게 되는 것은 당연한 결말이었다. 일당 독재를 지속해왔던 공산국가의 공산당은 사적 유물론에 맞추어 역사의 진행단계를 일일이 판단하려고 들었고, 이것이 무오류라 여기면서 그걸 하려고 했다. 요컨대 '''당이 하는 일은 절대 옳다'''는 신념은 바뀔 수가 없는 기본 전제였던 것인데, 문제는 이것이 맞는지 틀린지를 판단할 방법이 존재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래서 무엇이 되었건 틀린 것이 될 수 없었고 당 지도부의 결정 아래에서 이뤄진 일들은 자신들의 옳고 그름에 대한 판단을 '''우선적으로 배제하게''' 만들었다. 현실적이지 않은 해결책을 마구잡이로 밀어붙여도 그걸 견제할 수 있는 수단이 없어졌으며, '''급기야 공산당은 실제로 공산주의를 이룩할 수 있느냐 라는 비이성적인 믿음을 강요하기 시작했다.''' 그렇다고 당의 지도부에서 자기들이 뭘 하고 있는지 알 수 있었냐 하면 그런 것도 아니었다. 올라오는 보고에 근거해 개혁이 잘 이뤄지고 있다고 판단했는데, 무오류의 공산당은 절대 틀릴 수가 없으므로,'''그 당이 틀렸다고 주장하는 것이야말로 반동행위'''이기 때문에 무슨 문제가 생겼을 때 그걸 곧이곧대로 이야기할 수가 없었던 것.(오늘날 종교단체에서 종교의 무오류적 성격을 빙자 혹은 남용해서 내부비판을 차단한 것과 비슷하다.) 쉽게 말하자면 19세기 러시아의 급진혁명가들은 공산주의를 성서에 등장하는 새 예루살렘과 같이 결국 역사의 종착점에는 하늘에서 내려올 새 예루살렘 [[하나님의 왕국|말쿠타 디스마이아]]의 이상사회처럼 " 반드시 " 공산주의 사회가 이룩할 것이라며, 실제로도 볼셰비키는 러시아 정교회에 익숙한 러시아 인민들에게 새 예루살렘이라는 표어로 쉽게 공산주의 이념을 선전했다. 그런 교조적인 이념이 존재하지 않는 공산주의사회를 있는 것처럼 세뇌시켰고 이 때문에 인민들에게 각자 희생을 통해 공산주의 유토피아 건설을 완성해야한다는 명목으로 교조주의적 입장에 따른 이분법적 사관으로 인권탄압과 무산자독재주의로 표방되는 독재정치를 합리화시켰던 것이다. 변증법적 유물론은 사적 유물론을 만들어냈지만, 사적 유물론은 보편적으로 보이는 법칙성을 교조화함으로써 실패하였고 결국 '''공산당 창당 120년'''이 넘어가는 시점에서도 반드시 도래할 것이라던 공산주의는 '''단 하나의 공산주의 국가에서도 실현되지 못하였다.''' == 잉여생산량과 사적 유물론 == 더 심각한 것은 변증법적 유물론에서 정의하는 잉여생산량에 있다. 위에서 설명한 사적 유물론에서는 인류의 시대를 고대 노예제 사회, 봉건제 사회, 자본주의 사회, 사회주의 사회, 공산주의 공동체 등으로 규정하였으며, "모순" 에 의해서 인류의 역사는 계급투쟁의 역사라고 정의하였다. 지식이 발전할 때마다 사회는 진화를 이뤄냈지만 계급에 있어서는 피지배층과 지배층이 여전히 존재하여 이런 피지배층과 지배층간의 빈부격차를 " 모순 " 으로 지목하고 이 모순이 사회를 바꾸는 이유라 설명하였다. 그러면서 마르크스는 잉여생산량이 바로 모순을 만들게 되는 주체이며, 벨 에포크의 낙관주의적 성격의 영향을 받아 종국에는 잉여생산량이 모두가 풍요를 누릴 만큼 증식될 터이니 그때 비로소 모순이 사라지고 모두가 평등한 공산주의공동체가 만들어질 것이라 말하였던 것이다. 유럽의 황금시대였던 벨 에포크시대가 1차 대전으로 종식된 것을 둘째치더라도 잉여생산량이 공산주의국가들 사이에서 모순의 주체이자 악의 근원으로 지탄받은 이상 자본축적은 공산주의사상에서 이단으로 간주된 것은 당연한 행동이었다. 이러한 잘못된 잉여생산량에 대한 정의로 '''[[집단농장]]'''같은 공산주의만의 특유의 끔찍한 모순이 발생하였고, 이런 모순은 또다시 변증법적 유물론의 교조적 사상에서 '과연 공산주의국가에서 모순이란 존재할 수 있는가?' 라는 소련판 [[예송논쟁]]이 전개되기도 하였다. 급기야 [[트로츠키주의]]자들은 '세상만국의 자본주의국가들이 모순 그 자체로서 이 모순국가들을 없애버려야 공산세상이 열린다' 라는 주장까지 일삼게 된다. == 자본론과의 관계 == 다음과 같은 말로 자본론을 요약할 수 있다. 비참한 삶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는 노동자를 보며 자본가는 일순 동정심을 느낄 수 있겠지만 그도 경쟁이라는 사슬에 묶인 노예일 뿐이다. 시장은 더 저렴한 물건을 찾게끔 형성되어있고 그는 이러한 구조에서 벗어나 노동자들에게 더 많은 임금을 줄 수가 없다. 그 러므로 자본주의구조의 핵심인 시장은 소비의 주체인 인구의 대다수가 무산자이므로 작동할 수가 없어 잦은 공황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그런즉 이런 구조의 자본주의사회가 붕괴되는 것은 필연적이다 이런 내용을 아무 생각 없이 비판 없는 태도로 자본론을 읽는다면 진실로 심각한사람임에 틀림없다. 오늘날 우리가 누리는 이 풍족한 소비문화는 마르크스가 예언한 것과는 너무나 다른 풍경이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하자면 자본론은 틀렸다. 서구에서 나치과학자 [[프리츠 하버]]의 [[질소비료]]개발과 자동차왕 [[포드]]의 컨베이어 벨트식 산업은 적은 노동력으로도 훨씬 더 많은 생산량을 인류에게 가져다주었고, 이로 여유가 생긴 자본가들은 점차 노동자들의 임금을 올리게 되는데, 이때 즈음 [[벨 에포크]]시대 특유의 민족주의열풍에 따라 철혈독재 [[오토 폰 비스마르크]]를 선두로 민족후생에 국가가 전면에 나서게 된다. 이미 마르크스가 자본론의 집필을 마칠 때면 비스마르크는 독일을 통일해서 독일 인민들의 삶의 질을 진작시키고 있었을 때였다. 즉 자본론은 변증법적 유물론의 유물사관을 뒷받침하고자 하는 경제학서였지만, 그 내용은 기계론적 유물론자 특유의 인간이성불신에 따른 부정적인 시각으로 점철된 탓에 인류의 가능성을 철저히 부정한 것을 전제로 삼았기로 결국 틀릴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 세계에 미친 영향 == {{인용문|어느날 소련의 인민학교에서 학생들은 혁명교양을 배우고있던 차였다.<br>학생 : 저 선생동지 혁명이란것은 정확히 무엇인지 궁금합니다.<br>선생 : 오 포포프동지 잘 말해주었어요 혁명은 바로 우리가 열심히 노동을 하여 '''자본주의국가인 미국을 따라잡는것이랍니다.''' }} 이 변증법적 유물론은 서구의 황금기를 등에 업어 탄생한 오류이지만 그것이 비서구의 사회 러시아에서부터 공산조선까지 널리 퍼진 이유는 분명하다. 안타깝게도 지난날 비서구의 세계에서는 자주적인 이성과 문명의 발전 없이 놀라우리만큼 진보된 서구의 문명을 받아들이게 되었고, 식민통치에 의해 착취당하며 모순된 경제구조를 지니게 된바, 이런 나라들에 대해서는 변증법적 유물론이 날카로운 설득력으로 사람들을 현혹시키게 되었던 것이다. 결국 그 실체는 이러한 나라들이 " 공산주의 공동체 " (이것은 [[벨 에포크]]적 시대가 영원히 이뤄져야지만 가능한 사회다.)를 이룰 수 있는 능력이 전무하였기에 끔찍한 교조주의에 의한 독재로 파멸을 맞이하였으며, 과거 식민지 경험이 있었던 나라들이 공산주의에 빠질 수밖에 없었던 이유였기도하다. == 비판 == How can I accept a doctrine which sets up as its bible, above and beyond criticism, an obsolete text-book which I know to be not only scientifically erroneous but without interest or application for the modern world? How can I adopt a creed which, preferring the mud to the fish, exalts the boorish proletariat above bourgeois and the intelligentsia who, whatever their faults, are the quality in life and surely carry the seeds of all human advancement? Even if we need a religion, how can we find it in the turbid rubbish of the red bookshop? It is hard for an educated, decent, intelligent son of Western Europe to find his ideals here, unless he has first suffered some strange and horrid process of conversion which has changed all his values. "어떻게, 내가 알기로는 과학적으로 틀렸을 뿐만 아니라 흥미도 현대 세계에의 적용도 없는 한물 간 교과서를, 비판을 초월하여, 성경으로 떠받드는 독트린을 받아들일 수 있는가? 어떻게 천박한 프롤레타리아 계급을 부르주아 계급과 지식인 계급(그들의 문제가 무엇이건 간에 성공했으며 확실히 인류 진보의 씨앗을 지니고 있는 자들) 보다 높게 보라는, 물고기보다 흙탕물을 선호하는 교리를 받아들이란 말인가? 설령 우리가 종교가 필요하다 하더라도, 그걸 어떻게 빨간 서점의 그 혼탁한 쓰레기 속에서 찾으란 말인가? 이상하고 지독한 개종의 과정에 시달리지 않았던 한, 서유럽(문명국)의 교육받고 품위 있으며 지적인 젊은이가 여기서 이상을 찾는 일은 거의 없다." [[존 메이너드 케인스]] Keynes, John Maynard (1931). Essays in Persuasion 변증법적 유물론의 가장 큰 문제점은 바로 위에서 열거한 지독한 도그마에 있다. 대부분의 공산주의국가는 변증법적 유물론에 기초한 이데올로기를 무조건적인 독트린으로 간주하였고, 결국에는 '''프롤레타리아를 위한 이데올로기 민주정'''이 아닌 '''이데올로기를 위한 프롤레타리아 독재정'''이 펼쳐지게 되었던 것이다. 이러한 모순을 지목한 [[페르디난트 라살]]은 [[사회민주주의]]라는 분파로 갈라져 이에 분개한 [[마르크스]]는 저서중에서 가장 사적 유물론의 도그마가 짙게 묻어나는 [[고타 강령 비판]]을 통해 [[사회민주주의]]를 격렬하게 비판하였다. 후에 라살의 사회민주주의 개념을 더욱 발전시킨 제2인터내셔널의 에두아르트 베른슈타인은 아예 공산주의의 핵심 교조주의강령인 사적 유물론과 계급투쟁을 부정하였고, 사유재산과 자본주의를 종속시키면서도 공산주의, 사회주의와 접목시키려는 시도를 하였는데 그로 그는 완전한 이단으로 낙인찍히고 말았다. 이런 사회민주주의자들은 공산주의계열에서 수정주의자라 불리며 경멸과 멸시를 받았는데, 그것이 밑거름이 되어 오늘날 공산주의를 대체할 이념으로 좌파계열에서 옹호하지만 그렇다고 사회민주주의조차 완벽한 해답은 될 수 없다는 것을 유물론적으로 설명해 볼 수도 있다. 시간을 거슬러 인류사를 수십만 년 올라가보면 인간이라고 정의하기에는 부족한 유인원들이 존재했다. 그들은 현생인류보다 열등한 존재들이였지만, 수십만 년의 시간동안 우등번식을 통해 보다 진화하여 현생인류가 도달했다는 것이 오늘날 진화론의 핵심이다. 그렇다면 과거에 보통의 유인원보다 우등한 유인원끼리의 교배를 통해 탄생한 보다 우등한 유인원과 거친 야만의 세계에서 살아남지 못하고 도태된 열등한 유인원의 존재는 우리 현생 인류에게도 진화가 진행 중이며, 특히 '''인간에서의 우열'''이 존재한다는 것을 입증하는데 이른다. 즉 인류는 선천적인 유전으로 평등할 수 없는 진화의 산물이라는 결론에 이르게 되는데, 여기서 유물론적으로 사회의 모순 즉 '''빈부격차'''에 대해 설명이 가능해진다. 우리가 즐겨보는 텔레비전 프로그램에서 준수한 외모의 연예인들은 공사현장에서 노가다를 하는 인부보다 적게는 수십 배 많게는 수천 배의 수익을 올린다. 그에 대한 이유는 우리가 이미 인지하고 있는데, 바로 준수한 외모와 그런 준수한 외모를 가치로 만들 수 있는 사회 때문인 것이다. 극단적으로 보면 에두아르트 베른슈타인은 그것을 깨달았던 것이다. [[제국주의]]시대에는 [[우생학]]이라 불렸던 인류 간 우열을 그는 프롤레타리아 독재정으로 평등화시킬 수 없으며, 그럴 경우 닥치는 부작용에 대해서도 알고 있었기에 공산주의보다는 건전하다고 할 수 있는 사회민주주의를 지지했던 것이다. 지난 날 이데올로기의 대립에서 적어도 공산주의를 지지한다는 자들은 공산주의가 인류를 구원케하리라고 무조건적인 믿음을 보냈지만, 결과론적으로 보아도 공산주의, 나아가 사회주의는 아직까진 성공했다 보기 힘들다. 그 실패한 이유 중에서도 사회적인 불평등을 절대 인정할 수 없다는 교조주의는 사회를 더 발전케 할 수 있는 기회를 원천적으로 차단하였고, 오늘날 사회민주주의역시 폭력으로 인한 유혈사태만 하지 않을 뿐이지 마찬가지로 사회적인 불평등을 절대 인정할 수 없다는 도그마를 지니고 있다. [[엘리트주의]]를 부정하며, 프랑스의 엘리트에 대한 온갖 규제를 쏟아내던 [[프랑스]] [[사회당]](바로 사회민주주의의 시초인 그 당이다.) 소속 [[올랑드]]대통령이 지금 어떠한 대접을 받는지 알아보자. == 10월 혁명과 유토피아의 허상 == 평의회에서 꺼저라! 너희들의 자리는 없다 이 역사의 쓰레기통으로 들어갈놈들아!! 1917 .9 레프 트로츠키 평의회에서 사회민주주의자들을 공격하며 했던말. 우리는 공산주의에대해서 비판할때에 무엇보다 결과론적 태도에대해서 매우 주의를 기울여야한다. 소비에트 연방이 망했기에 공산주의가 실패한것이 아니라 공산주의가 잘못되었기에 그것을 그대로 실행한 소비에트 연방이 망한것이지만, 많은 사람들은 으레 '''" 이론은 완벽하였으나, 그것을 시행하는 사람이 잘못되었다 "''' 라는 식으로 공산주의 이론에대해 무오류적인 시각을 보내기때문이다. 자본주의의 핵심은 경제성장에대한 신용과 그 신용을 담보로하는 레버리지에 있는데, 마르크스가 저서에서 밝히기를 앞서 말한 벨에포크라는 시대적 낙관론에 근거하여 과신용에 따른 무분별한 레버리지로 인하여 경제공황이 5번이나 발생하였었다. 그러므로 마르크스는 금융의 신용에따른 레버리지에대해 매우 불신적인 태도를 비추고있는데 그래서 만들어진것이 사회주의프로그램이다.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저작을 읽어본다면 그 사회주의프로그램을 머리속으로 그려볼수가있는데 그것을 실제로 현실에 구현한것이 바로 러시아다. 소비에트는 10월혁명을 통해 러시아의 산업과 금융을 무상몰수하여 국유화를 하였고 이를 자신들의 통제로 유토피아로 만들 생각을 가지고있었다. 허나 소비에트의 볼세비키들의 바램과는 다르게 10월혁명후의 러시아는 모든것을 징발하고 모든것을 무상몰수하는 사회주의프로그램때문에 기아와 경제공황이 들이닥쳤으며, 혁명이 일어난 1917년을 넘기기도 전에 12월에 들어서면 혁명을 일으킨 소비에트에대한 노동자들의 신용과 신뢰가 모조리 사라지게된다. 일이 이렇게되자 트로츠키는 다급히 전쟁을 종료시키기위해 [[브레스트-리토프스크 조약]]이라는 매우 굴욕적인 조약으로 [[독일제국]]에게 폴란드,우크라이나,발트삼국을 할양하였으며, 이에 격분한 러시아인민들은 10월혁명의 최선봉에 섰던 크론슈타트 해병들을 비롯하여 혁명에 참가했던 사회혁명당,사회민주당들이 소비에트 볼세비키에대한 유혈투쟁을 시작하였다. 당시 소비에트의 지지율은 26%에 불과했다. 우리는 여기서 명확히 공산주의이론의 허상을 명확히 알수있을것이다. 사회주의프로그램으로 몰수한 금융은 관료주의의 경직성과 잉여생산량의 사유화를 허락지않는 소비에트정권의 이념적딜레마에 봉착하여 제구실을 할수없게되었고 금융이 멈추자 산업이 박살나기 시작하였던것이다. 중세와 근대의 기초적인 채무관계에서 시작된 금융은 19세기부터 산업의 주요한 원동력으로 작용하며 커지게되었는데, 금융이란 본디 영리를 추구하는 인간의 욕망에 의해서 때론 공격적이거나 확장적인 투자가 이뤄지는법이다. 허나 사유재산을 " 모순 " 이라 지목하는 공산주의이념에 의해서는 그것이 제대로 작동될수가없었고 이는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저작을 뒤져읽어봐도 대안이 없던것이였다. 여기까지 말했다면 내가 공산주의를 치기위해 무엇을 더 말할 필요가 있겠는가??? 산업과 금융의 불가분관계도 이해하지못한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저작을 교조주의로 인하여 신성불가침 무오류의 독트린 텍스트로 받아들이는 자들에 대해 무엇을 더 설명할 필요가있겠는가 == 기타 == 지난날 대한민국의 국가내란을 시도했던 종북반미주의자 [[이석기]]가 미국에서 공부하는 아들에게 메일로 매일 변증법적 유물론을 철저히 공부하라 라고 한 사실이 밝혀졌다. '''[http://www.vop.co.kr/A00000679453.html 뉴스기사]''' 기사에서는 검찰당국이 변증법적 유물론과 [[주체사상]]의 혼동이 있었던 것으로 보이는데, 실제로 주체사상은 관념론에 가깝고 변증법적 유물론은 유물론이므로 변증법적 유물론을 주체사상과 동일선상에서 비교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 하지만 이석기는 아들에게 변증법적 유물론을 철저히 공부하라고 지시하였음에도 정작 본인조차 이 유물론에 대한 개념을 이해하지 못한 것으로 보이며 그의 사상을 살펴보자면 일부는 변증법적 유물론의 유물사관을 받아들였으면서도 일부는 주체사상이라는 관념론을 맹신하는 '잡종사이비'라고 할 수 있다. [[분류:공산주의]][[분류: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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