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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를린 봉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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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라스}} {{예토전생}} 2차 머전을 거치면서 베를린이 오른쪽 부랄 왼쪽부랄로 나뉜걸 소련이랑 미국(자본주의)측에서 사이좋게 나눠먹었는데 스탈린이 "으따! 베를린이 동독에 있으니까 길만 막으면 먹을 수 있겠지?"하고 포위한거다 일단 포위한거까지는 존나게 완벽한 계획이었다. 당시 200만 베를린 시민에게 남은 물자는 식량은 36일치고, 석탄은 45일치였다. 봉쇄 소식이 알려지자 모든 사람들이 먹을거를 야동 파일 마냥 고이고이 숨겨두기 시작했다. 인간 백정 스딸린 동지의 머가리에서 나왔다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엄청나게 착한 방법이었다. 하기야 상머성 이론으로 나가사키 불짬뽕 만든걸 지 눈깔로 봤는데 스탈린이 아무리 인간백정이라고 해봐야 핵폭탄보다야 사람을 못죽이지 암암... 2차 머전으로 박살난 독일이었으니 군머를 동원한다는 건 독일을 분자 단위로 갈아버리겠다는 발상이었으니 모든 사람이 이제 소련이 베를린을 득템하는 구나 했다. 지금 사람들 눈깔로 봐도 소련의 득템이었고, 그때 사람들 상식에는 소련의 득템은 140% 확정이었다. 그때까지는... ==반전== {{예토전생}} 하루에 비행기들이 매일 3600톤의 물자를 실어날라야 했다. 요즘 수송기랑 당시 비행기랑 비교하면 요즘 수송기는 배틀크루저였으니까 당시 사람들 눈깔로 비행기로 3600톤의 물자를 매일 실어나르는 병신짓을 하는 새끼는 없을 것이고, 그것은 불가능한 것이었다. 하자!라고 해도 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첫 공수 작전때 100대를 날렸는데 실어 나른데 82톤이었다. 수송기 하나가 1톤도 못실어나른다는 말이었다. 당시 사람들 상식으로 보면 3600톤의 물자를 매일 실어나르는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진ㅉ짜 한대가 1톤을 실어 나르면 3600대가 매일 돌아다녀야한다. 깡촌에서 태어나신 스탈린 동지 눈에는 3600대의 비행기가 매일 왔다갔다 하는건 그의 두뇌를 초월하는 일이었을거다. 문제는 스탈린이 깡촌 출신이었다는 거다. 미국은 세계의 중심이었고 존나게 큰 빌딩을 존나게 지었다. 전쟁이 일어나기 50년 전의 미국 모습이다. 보는 김에 보빙사 일화도 보고 가라 http://m.todayhumor.co.kr/view.php?table=bestofbest&no=298141 깡촌에서 태어난 스탈린 눈깔에는 3600대의 비행기가 매일 날아다니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었지만 미국에서는 가능한 일이었다. 작전 한달이 되면서 수송기 물량은 1천대에 도달했고, 시간이 지나면서 수송량 500톤, 8월 1천톤, 새해 1년이 되자 17만톤, 2월에는 15만톤, 3월에는 19만톤톤으로 매일 5800톤의 물자가 하늘에서 쏟아지는데, 그 물량은 매일 필요한 물자보다 2200톤이나 더 많은 양이었고, 굶어 죽게 생긴 베를린 사람들이 식량을 쌓아놓기 시작하는 괴현상이 벌어지기 시작한다. 시발 굶어뒤지게 생겼는데 하늘에서 (당시) 급식충들이 좋아하는 사탕과 초콜릿이 쏟아지고(처음에는 조종사들이 바지 주머니에 담아서 갖다 준건데 굶어 뒤지게 생긴 베를린 사람들이 식량을 쌓으니까 아예 공수 품목에 포함되셨다) 꼴초들 금단 현상으로 미쳐 뒤지지 말라고 담배까지 컨테이너(?)채로 실어나른다. 깡촌에서 나고 자란 스딸린 동지는 충격과 공포에 휩싸이신다. 아마 하늘에서 신이나 외계인이 내려와서 사람들을 구해준 정도가 아니었을거다. 인간 백정 새끼답게 수송기를 숙청하는 방법이 있었는데 이 작전 지휘하던 분이 도쿄핫을 만드신 커티스 르메이 셰프였이게 함부로 나댔가단 모스크바 볼쇼이 쇼가 아니라 모스크바 '불'쇼이 쇼를 하게 생기는 거였다. 불쇼이 쇼를 하면서 자기 뼈로 테트리스를 하기 싫었던 스탈린은 안하겠소! 다시는 안하겠소!를 외치며 봉쇄를 때려쳤다. 이때 미국의 상식을 초월한 물량전을 두 눈으로 목격한 스탈린은 죽을때까지 미국과의 직접적인 충돌을 피했다. == 둘러보기 == {{1940년대}} {{2015 개정 교육과정 세계사 6단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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