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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개정 교육과정 세계사 2단원}} {{숙청}} {{착짱죽짱}} {{반달리즘}} '''[[문화대혁명]]의 프로토타입'''. '''문화대혁명이 아니라 이게 [[착짱죽짱]]의 시작이다.''' ==프롤로그== 1644년 오삼계의 투항으로 대륙을 날로먹은 청나라. 하지만 대륙에는 명나라 유민들이 눈시퍼렇게 뜨고 살아있었고. 특히 [[광동성]], [[복건성]]과 같은 강남지방에는 명나라 말기 사회의 엘리트층이 되었던 향신계층이 청나라의 대륙점령에 강하게 반발했다. 그래서 홍타이지가 대륙을 먹고나서 한번 피바람이 불었다. 근데 문제는 강희제때 터지기 시작했는데..... ==서막: 명사집략- 적당히좀 하지== 명나라는 자기가 자체적으로 만든 명실록과 여러가지 문헌들을 합쳐 명사집략이라는 책을 편찬중에 있었다. 하지만 명나라가 망하고 나서는 편찬이 정지되었다. 당시 편찬자중 한명이던 '주국정'이 사료의 소실을 우려해 사초와 원고들을 싹다 싸들고 강남으로 도망쳤지만, 훗날 재정문제로 강남지방의 유력인사이던 '장정룡'에게 팔아넘겼다. 장정룡은 자기 집안의 몸값을 폭업시키기 위해 명사집략의 편찬을 다시 시작했다. 하지만 본인은 학식도 없고 병도 있어서 제대로 시작도 못해보고 급사하자, 편찬은 그의 동생인 '장정월' 자기가 알던 여러 학자들과 명사들을 데리고 명사집략의 빈부분을 보충하고 서론과 평가를 적었다. 근데 이것이 화근이 되었다. 이때 장정월과 함께 편찬을 주도했던 엘리트들은 '''극단적인 반청주의자들이었다'''. 그들은 청나라를 존나게 싫어해서 강희제가 청나라를 안정시키고 있는 와중에 청나라 황제의 '''이름을 대놓고 쓰면서''' 청의 정통성을 부정했으며, 명과 청의 전투를 기록하는 과정에서 명의 연호를 쓰고 후금/청군을 반란군으로 적었으며, 항장 출신 상가희와 경정충을 나라 팔아먹은 도둑놈이라 비판했다. 거가다가 명나라의 연호를 그대로 쓰고 있었다. 그런 상태의 책을 그대로 '''출간했다.''' 자기나라 황제의 이름을 대놓고 쓰지, 자기 군대를 반란군이라 칭하지, 이런 막장스러운 글의 내용은 청나라 전체에 쫙 퍼졌다. 뒤늦게 사태를 파악한 장정월은 심히 문제가 되는 부분을 지우고 명사집략의 집필을 눈치챈 지방관료들에게 돈을 먹임으로써 이 문제를 덮으려고 했으나...... , 강희제(당시 7살인데도 개빡쳤다!)도 직접 '''이 책을 읽어봤다'''. 당연히 강희제는 제대로 빡쳐버렸고 편찬자이던 장정월 일가는 멸족에 장정룡은 부관참시를 당했다. ==남산안- 대명세사건== '''이때부터 청나라는 정신나간 마녀사냥을 시작햇다.''' 1711년 청나라에서 명망이 높던 엘리트 대명세는 명대의 사료들을 인용하면서 자기 문집인 '남산집'을 냈다. 문제는 여기서 남명황제인 주유랑의 연호인 영력을 사용한것. 청나라는 이를 문자삼아 종북몰이 같은것을 시전해서 대명세는 벌집핏자로 만들고 그의 글들은 모조리 태웠다. 그리고 그의 유가족들은 만주로 유배를 보냈다. ==영향== 글자하나로 목이 달아나던 환경이 조성되면서 기존의 서양학문을 적극수용하고 양명학같은 현실주의 학문이 나오던 중국의 학문계가 보수화되어 고증학으로 흐르게 된다. 또한 중국인들이 이때부터 서서히 짱깨로 변해가기 시작했다. 과거 중국인들의 민도를 이끌고 가르치던 향신계층들이 이사건으로 싹다 갈려나가고 미개한 여진족들의 풍습이 중국한족들에게 유입됬기 때문. 덕분에 청나라 말기에 중국인에 대한 멸칭인 '짱깨'란 말이 탄생했다. 이민도가 지금까지 내려온게 지금의 섬짱깨이며, 훗날 문혁으로 최악의 상태에 다다른 것이 바로 지금의 대륙짱깨라고 할수 있다. -착짱죽짱이 정조 시대 유생인 박항이 청나라의 선비 채연과 나눈 대화에서 유래되었다는 말이 있다. 박항은 청나라를 여행한 후 견문록과 비슷한 화운잡기(華雲雜記)를 남겼는데 해당 기록은 아래와 같다.- “ 余問曰, 或善或惡, 誠如白絲之染, 無不出其所學, 本無自然乎. 蔡練笑執筆曰 外人蓋然, 華人則否. 其利己害人, 莫甚焉. 食之如豚, 淫之如猿, 一見衆人家物, 卽生貪心, 邪道取之然後言義, 此乃華人本心也. 雖韓倭之土, 必有先生所擧, 中國則不然, 善人已皆死, 華人之步土者, 至惡之類而已. ” 내가 다시 묻기를 "사람이 선하거나 악한 것은 참으로 흰 실이 물드는 것과 같아서, 오로지 그 배운 것에서 비롯되는 것이며, 본디 악하거나 선한 것은 없지 않겠습니까?" 하였는데, 채연이 웃으면서 붓을 쥐고 쓰기를, "다른 나라의 사람들은 그럴지도 모르겠지만, 우리 중국인은 다릅니다. 이 세상에 이기적이고 다른 사람을 해하는 것으로 중국인보다 심한 족속은 없지요. 돼지처럼 먹고, 원숭이처럼 음란하며, 다른 사람의 재물과 집을 보면 곧바로 욕심을 내어 나쁜 방법으로 빼앗은 후에야 의리(義理)를 말하니, 이는 우리 중국인의 본성입니다. 비록 삼한과 왜국(倭國)에는 선생이 말한 사례가 반드시 있겠지만 중국은 그렇지 않습니다. 선한 자들은 이미 모두 죽었고, 두 발로 땅을 걸어다니는 중국인들은 모두 지극히 악독한 무리들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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