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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교육}} [[브라질]] 축구팬들에게는 브라질 축구 역사상 최악의 경기로 기억되고 있다. 이 경기가 최악의 경기로 기억되는 이유는 경기력 때문이 아니라 브라질 축구팬들의 기대가 처음부터 너무 컸기 때문이다. 어느 정도냐 하면 [[우루과이]]전이 아직 남아있음에도 불구하고 브라질의 월드컵 우승 메달을 미리 만들고 우승 축가도 미리 만들었을 정도였다. 근데 우루과이가 우승하는 바람에 메달은 만들어지자마자 다시 [[용광로]]에 들어가서 [[터미네이터]]가 되어버렸다. ==브라질의 기분== * [[아르헨티나]]가 [[피파]]가 개최시켜준다는 약속을 깬 걸로 뿔딱지가 나서 불참했다. 참고로 당시 아르헨티나는 코파를 휩쓸어버리는 등 남미최강팀이었다. '''브라질: 싱글벙글 레벨 1''' * [[잉글랜드]]가 [[미국]] 나부랭이한테 어처구니 없게 쳐발리고 나가 죽었다. 참고로 당시 잉글랜드는 자타가 공인하는 실질적 최강팀이었다. 잉글랜드는 1934년 월드컵이 끝난 직후 그 월드컵 우승팀 이탈리아를 3-2로 쳐발라버리고 덤으로 아르헨티나 출신 이탈리아 선수인 루이스 몬티를 폐기처분 시켰다. '''브라질: 싱글벙글 레벨 2''' * [[이탈리아]] 역시 [[수페르가의 비극]]을 당해 뛸 선수가 없어서 자멸하고 말았다. 참고로 당시 이탈리아는 디팬딩 챔피언이었다. '''브라질: 싱글벙글 레벨 3''' * 결승리그. 브라질은 [[스웨덴]]을 7-1, [[스페인]]을 6-1로 개박살내서 2승 득+13 실-2 차+11를 달성한 반면 우루과이는 스페인과 2-2로 겨우 비기고 스웨덴을 3-2로 역전승해서 1승1무 득+5 실-4 차+1를 내는 바람에 우루과이전은 '''비겨도 우승'''이었다. '''브라질: 싱글벙글 레벨 4''' 아유 종아~ 그러나... ==결승전== 이 경기는 브라질에서 열린 1950월드컵으로 그때 브라질은 결승리그에서(당시에는 지금과는 달리 월드컵에 토너먼트가 없었던 시절이다.)스웨덴과 스페인을 너무나도 압도적이게 이기고 2승 따냈지만 그 반면에 우루과이는 브라질에 비해 상대적으로 힘겹게 1승1무를 따내던 상황이었다. 당연하게도 브라질에서는 이미 우승을 한 것과 다름없던 분위기였다. {{설레발}} {{줘도못먹어}} {{병신}} {{쌤통}} 하지만 막상 경기에 들어서자 브라질은 의외로 우루과이에게 고전하고 있었다. 그래도 후반전에 들어서 먼저 선제골을 넣은 것은 브라질이었고 브라질은 무승부만 해도 우승을 할 수 있기 때문에 사실상 우승을 확정짓는 분위기였다. 그러나 그 이후에 우루과이가 동점골과 역전골을 연이어 넣고 승리하였다. 이로인해 브라질은 충격에 빠졌고 브라질 축구 국가대표팀에서는 많은 변화가 일어났다. 그러나 이 때만 해도 50여년 뒤 [[미네이랑의 비극]] 같은 눈썩는 꼬라지를 예측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결과== 원래 브라질의 유니폼은 다음과 같았다. *상의: 흰색 유니폼에 어깨에 파란 세로줄이 그어져 있었다. *하의: 흰색 *양말: 흰색 그런데 마라카낭의 비극을 당한 유니폼이 저주받은 유니폼이라면서 유니폼을 이렇게 갈아치웠다. *상의: 노란색 *하의: 파란색 *양말: 파란색 그리고 선수들 전원을 물갈이했고 특히 이 경기에서 브라질 골키퍼로 뛴 [[모아시르 바르보사]]는 '''패배를 부르는 선수'''라는 오명 때문에 제대로 된 팀에서 뛰기 힘들어졌다. 은퇴 후에도 감독은 물론이고 심지어는 스포츠 해설자 자리마저 거절당하는 우여곡절을 겪였다. 바르보사는 이 경기 이후 딱 50년을 더 살았는데 '''그 기간이 징역이나 다름없었다'''고 회고했다. 1950년 월드컵에서 뛴 브라질 엔트리멤버는 니우통 산투스 1명을 빼고는 다시는 국가대표에 들어가지 못했다. 니우통 산투스는 엔트리멤버에 올라가는 있으되 이 월드컵에서 단 1초도 뛰지 않았다. 물론 니우통 산투스는 2년 넘게 국가대표에 뽑히지 못하고 있다가 1953년에서야 비로서 국가대표에 다시 뽑혔다. 실제로 마라카낭의 비극때 뛰지 않고 벤치만 뜨겁게 달궜다는 이유에서였다. 그리고 그 니우통 산투스는 [[펠레]]를 도와서 1958년 스웨덴 월드컵과 1962년 칠레 월드컵을 우승하면서 마라카낭의 비극때 당했던 치욕을 완벽하게 씻어내고 명예롭게 은퇴했다. 참고로 1962년 월드컵 당시의 니우통 산투스의 나이는 2014년 월드컵 당시의 [[미로슬라프 클로제]]의 나이와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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