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무위키
조무위키
둘러보기
대문
최근 바뀜
임의의 문서로
미디어위키 도움말
도구
여기를 가리키는 문서
가리키는 글의 최근 바뀜
특수 문서 목록
문서 정보
행위
문서
토론
편집
역사 보기
대한민국 제2대 국회의원 선거
편집하기
경고:
로그인하지 않았습니다. 편집을 하면 IP 주소가 공개되게 됩니다.
로그인
하거나
계정을 생성하면
편집자가 사용자 이름으로 기록되고, 다른 장점도 있습니다.
스팸 방지 검사입니다. 이것을 입력하지
마세요
!
{{총선}} 개성, 개풍, 장단, 연백, 옹진이 마지막으로 참여하게 되는 대한민국의 선거다. 이 지역들은 전쟁이 끝나고 [[북한|혁명적인 윗동네]]에 편입되면서 '신해방지구(新解放地區)'가 되어버렸다. ㅠㅠ 미군정 체제에서 치러진 초대 총선(제헌 의회 선거)는 임기 2년을 골자로 하고 있었으므로 1950년에 치러지게 된다. 이승만이 [[반민특위]]를 후루룩 말아먹고 [[김구]]를 쏴버린 상태에서 치른 선거라서 좆망을 직감했기에 원래 12월까지 연기하고 포퓰리즘 정책으로 적자 예산 편성을 시도했는데 천조국 국무장관 애치슨이 엄중 경고를 날려서 5월 30일에 치르게 된다. 1948년 5월 10일 선거로부터 2년 20일이 지난 셈이다. 날짜를 보면 알겠지만 3주 뒤에 전쟁이 터진다. 남북 협상파가 대거 총선에 참여하며 친이승만계를 압도했다. 이미 민심도 친일 청산 실패, 김구 암살한 이승만에게서 떠난 지 오래됐음. 당시 대통령 선거는 국회의원이 뽑는 간접 선거제였으므로 2년 뒤 대선에서 낙선할 것을 우려한 리 박사는 이후 [[발췌개헌]]을 통해 선거 제도를 직접 선거제로 갈아버린다. 선거는 무소속의 승리(126/210)로 끝난다. 투표율은 91.9%이고 정원은 210석이고 전 선거처럼 전부 지역의원이었다. '''민주국민당'''이 24석, 683,910표(9.8%)로 대국당보다 표가 더 많아 제1당이 되었다. 그 다음으로 대한국민당이 24석을 얻고 677,173표(9.7%)를 받아 제2당이 되었다. 대한독립촉성국민회가 14석을 획득했고 총 473,153표(6.8%)를 받아 제3당이 되었다. 그리고 대한청년단이 9석으로 227,539표(3.3%)를 받아 제4당이 되었다.
요약:
조무위키에서의 모든 기여는 CC BY-SA 4.0 라이선스로 배포된다는 점을 유의해 주세요(자세한 내용에 대해서는
조무위키:저작권
문서를 읽어주세요). 만약 여기에 동의하지 않는다면 문서를 저장하지 말아 주세요.
또한, 직접 작성했거나 퍼블릭 도메인과 같은 자유 문서에서 가져왔다는 것을 보증해야 합니다.
저작권이 있는 내용을 허가 없이 저장하지 마세요!
취소
편집 도움말
(새 창에서 열림)
이 문서에서 사용한 틀:
틀:대한민국 국회의원 선거
(
편집
)
틀:색
(
편집
)
틀:총선
(
편집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