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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에서 선선대왕비를 이르는 명칭. 왕 다음의 파워를 가지고 있다. 왕이 어리면 수렴청정을 하면서 권력의 핵심이 되기도 한다. 보통 왕의 할머니가 대왕대비가 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적지 않다. 왜냐 하면 중전을 거쳐야만 대비가 될 수 있고 대비를 거쳐야만 대왕대비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 때문에 [[사도세자]]가 임금이 되지 못해서 중전에 오를 수 없었던 [[혜경궁 홍씨]]나 아예 후궁이라서 중전에 오를 수 없었던 [[숙빈 최씨]]는 대비가 되지 못했다. 왕위가 자식이 아닌 형제에게, 또 직계가 아닌 방계로 상속되는 경우도 많았기 때문이다. 명종 시절 대왕대비 - 성렬대왕대비(문정왕후 - 명종의 친어머니) 영조 시절 대왕대비 - 혜순대왕대비(인원왕후 - 영조의 법적 어머니) 철종 시절 대왕대비 - 명경대왕대비(순원왕후 - 철종의 법적 어머니) 고종 시절 대왕대비 - 효유대왕대비(신정왕후 - 고종의 법적 어머니) 등등 또 어떤 국왕의 재위 기간 중 선선대 왕비가 생존해 있을 가능성이 높지는 않으므로 대왕대비까지 오른 왕비가 적어야 정상이지만, 조선은 국왕이 단명하거나 쫓겨나는 일이 잦았고, 정비가 사망했을 때 새로 계비를 들이기도 해서 대왕대비의 수가 적지 않은 편이다. 이를 보여주는 예로 인조의 계비 장렬왕후(자의대왕대비)가 있다. 장렬왕후는 15세에 50대인 인조와 혼인하여 인조의 계비가 되었는데 이때가 아들인 소현세자, 효종(봉림대군)보다 어린 나이였다. 아무리 계모라지만 어머니가 자식보다 어렸다. 자식보다 나이가 적고, 자손들이 일찍 사망하면서 인조(혼인 후 9년 뒤 승하)-효종(일찍 사망한 편)-현종(단명)-숙종까지 국왕을 무려 4명이나 보게 되었고, 효종 승하 후 30대에 대왕대비 자리에 오르게 되었다. 조선 역사상 최연소 대왕대비였다. 그럼에도 친자식이 없고, 가문이 좋은 것도 아니어서 권력을 행사하진 못했다. 참고로 영조의 정비 정성왕후는 영조가 엄청나게 장수하는 덕분에 65세까지 중전으로 지내다가 승하했다. 조선 왕비들 중 대왕대비까지 오른 왕비들은 인지도가 높거나 사극에 자주 등장하는 편이다. 선선대 왕비였기 때문에 아무래도 권력을 쥘 가능성이 높고, 오래 사는 만큼 여러 일에 관여할 가능성도 높았기 때문이다. 자성대왕대비(세조비 정희왕후) - 두 번의 수렴청정, 폐비 윤씨 관련 인수대왕대비(덕종비 소혜왕후) - 폐비 윤씨 관련, 연산군과의 갈등 성렬대왕대비(중종비 문정왕후) - 권력 남용 소성대왕대비(선조비 인목왕후) - 폐모론, 인조반정 자의대왕대비(인조비 장렬왕후) - 예송논쟁 예순대왕대비(영조비 정순왕후) - 정조의 정치적 라이벌, 수렴청정 효유대왕대비(익종비 신정왕후) - 흥선대원군과의 정치적 결탁, 수렴청정 다만 명의대왕대비(예종비 안순왕후)의 경우 남편도 단명하고 자식도 왕이 되지 못했으며, 결정적으로 대왕대비 자리에까지 올랐음에도 형님인 인수대왕대비가 계속 생존해 있었기 때문에 묻혀 지냈다. 사극에서는 인자한 할머니 혹은 권력을 쥐고 흔드는 무서운 할머니로 그려지는 경우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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