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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조헬조선}} '''奴兒干都司''' [[조선]]이 [[고려]]만큼 적극적인 북진정책을 시행하지 않게 된 원인중 하나다. 시작은 1403년 [[영락제]]가 만주의 [[여진족]]들을 관리하기 위해 [[길림성]] 통화시 휘남현 휘발성진 근처 북산성자(北山城子)에 설치한 건주위(建州衛)였다. 근데 길림성, 사평지역에만 여진이 있던것도 아닌지라 [[아무르강|흑룡강]]에 설치한 것이 그 누르칸도지휘사사(奴兒干都指揮使司), 줄여서 누르칸도사다. 여기에 한술 더 떠서 1411년 건주위, 우자위(兀者衛), 누르간위(奴兒干衛)를 더 철저히 감시하기 위해 태감(太監) 이시하(赤失哈)휘하 배 25척과 병력 1100으로 또 여진을 뚜까패서 지금의 [[하얼빈]] 쌍성구 지역에 도사를 세워 위의 3개 여진부족을 감시했다. 이게 나중에 관할 권역이 존나게 늘어서 [[사할린]]까지 갔다. [[세종대왕]]이 정벌한 4군 6진도 이땐 누르칸도사의 관할권에 들어갔기 때문에 [[동북 9성]]을 [[경원군]]까지 올리는 눈물겨운 똥꼬쇼를 시전해서 겨우 지배권을 허락받게 되었다. 그리고 누르칸도사가 좆망했을 땐 조선도 망테크를 탔고 4군 6진도 개척하는데 온갖 피똥을 싼 조선 입장에서 그 북쪽의 만주가 먹을만한 땅은 아니었기에 조선은 고종 때까지 북진을 포기한다.<ref>성종 때 두만강 건너 연변, 훈춘 일대를 먹으려고 한번 찔러보긴 했는데 [[사림]] 빼애액에 포기했다.</ref> 하지만 [[선덕제]]시기 [[개원]]으로 쪼그라들면서 실질 지배권은 없어지면서 유명무실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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