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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터리}} {{논란}} {{갑툭튀}} {{짧고굵다}} [[삼국사기]]에서만 언급되는 신건국~후한건국의 혼란기사이 존재한 정체불명의 나라. ==호동왕자와 낙랑공주== 이나라에는 적이 쳐들어오면 스스로 소리를 내는 북과 나팔이 있었다. 이게 무슨 음파탐지해서 적군 위치 알려주는것도 아니고 씨발 매복같은 것도 안통했는지 고구려는 이나라를 어떻게 칠까 존나 고민중이었다. [[대무신왕]]이 아무리 고민해도 답이 안나오는지 머리도 식힐겸 아들 '호동'과 서기 [[30년]] 옥저(이거 낙랑국의 위치비정에 굉장히 영향을 주는지라 사학자들이 중요하게 봄.)로 사냥을 떠났다. 한편 같은 시간대에 낙랑국왕 '최리'와 그 딸년이 또 옥저로 사냥 나왔음. 그런데 왜애앤열? 그 딸년이 호동왕자를 보고 그에게 완전 제대로 뿅가버렸다. 그래서 호동이는 '크~ 저 병신년 꼬시면 게임끝 ㅇㅈ? ㅇㅇㅈ'하면서 공주랑 결혼을 하게 된다. 얼마후 호동은 공주와 대화를 하는데... 호동: 낙랑국의 도성에는 스스로 소리를 내는 북과 나팔이 있다는 소문이 있는데, 그 소문이 사실인가? 공주: 그렇다. 그건 그렇고 결혼했다면서 같이 살지도 못하고 거사도 못치렀는데, 이건 어떡하는가? 호동: 정 원한다면 그북과 나팔을 부숴라. 부순다면 하고싶은거 뭐든 다하게 해주마 공주: 아무리 니가 좋다고 그렇지 일국의 공주로서 그런짓을 할 수는 없다. 호동: 그럼 우리 헤어지든가. 공주:..... 결국 공주는 고뇌끝에 그 북과 나팔을 비밀리에 부숴버린다. 이를 알아챈 호동은 바로 고구려조정에 알렸고 서기 [[32년]], 고구려는 '요오시~'하면서 낙랑국으로 쳐들어왔다. 최리는 아무것도 안하고 가만히 있다가 뒤늦게야 고구려군이 쳐들어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평소같았으면 고구려군이 왔다는 보고도 끝나기 전에 북과 나팔의 자동경보가 울렸을 텐데, 그게 안울린것을 알게 되고, 나중에 고구려군이 도성을 포위할 때가 되야 그 나팔과 북이 부서졌다는 것과 그 범인이 공주라는 것을 알게 됐다. 최리는 결국 자기 딸을 죽여버리고 고구려에 항복을 해버렸고, 낙랑국은 그렇게 고구려에게 먹혔다. [[로미오와 줄리엣]]덕분에 멜로물에서 자주쓰이는 '금지된 사랑'클리셰에 이용해먹기 좋은 이야기인지라 헬조선의 역사기반 멜로물중에는 이 이야기에서 모티프를 얻은게 굉장히 많다. ==논란== 신나라~후한건국사이에 [[왕망]]이나 [[광무제]]나 헬쭝꿔가 한반도에 존나게 개입하기 때문에 이 낙랑국이나 최리가 반드시 후한서에 등장해야한다. 그런데 현실은 개요대로 최리가 삼국사기에만 나온다. 그래서 존재자체에 대해 논란이 많고 존재자체도 의심되는데, 위치? 이것도 어딨는지 모른다. ===일단 기록=== ====왕조의 반란==== 후한서에는 최리가 없고 신나라가 세워질 때 낙랑군에서 '''출신불명'''<ref>어떤데서 국뽕이 김치맨이라고 구라까서 반달방지를 위해 출신불명이라고 문서에 기재</ref>의 왕조(王調)가 서기 25년에 반란을 일으켜 군태수 유헌(劉憲)을 죽이고 자기가 태수직을 차지했다. 이 반란을 서기 30년 왕굉(王閎)과 그 부하양읍(楊邑)<ref>둘다 짜장맨이다. 그중 왕굉은 서주라고 출신지까지 명확히 나와있음.</ref>이 진압하고 광무제가 동년에 진압하라고 새로 보낸 태수 왕준(王遵)을 맞이했다. 후한서에는 이 사건이후로 낙랑에 대한 언급이 없다. ====낙랑군의 행정개혁==== 광무제가 후한을 다시 세운이후로 조정은 돈아깝다고 일부 관직들을 없애고, 관리안된다고 일부현들을 폐지했다. 이때 변방지역인 유주, 병주, 서량일대에 오랑캐들 방어하라고 설치된 군정직 '도위'가 이때 폐지되었다. 그리고 도위가 폐지되면서 걔가 일하던 현도 같이 폐지되는 경우도 있었는데, 낙랑군의 경우는 단단대령<ref>낭림산맥</ref>동쪽에 있는 영동7현(현재의 원산근처~함흥까지)에 동부도위가 있었는데, 이 동부도위를 폐지하면서 영동7현을 폐지했다. 그것도 걍 이전부터 토착민으로 살던 남옥저를 독립시켰음.<ref>이런일이 후한유주, 병주, 구삭주에서 자주 일어났다. 낙랑군외에 요서군과 우북평군도 저렇게 되면서 본의아니게 한나라가 오환에게 땅을 상납하는 꼴이 됐음. </ref> ====삼국사기에 추가로 언급되는 내용==== 신라본기쪽에서 다른 기록이 나온다. 서기 36년에 낙랑의 군대가 신라 타산성을 박살냈고, 낙랑국이 무너진 서기 37년에 신라에 낙랑난민들이 들어와서 왕이 경주일대에 살도록했다는거. 그리고 훗날인 44년 한군이 낙랑을 침공해 고구려를 쫓아냈다는 기록도 있다. ====대충 타임라인 정리==== 이걸 정리하면 서기 25년 왕조가 반란일으켜서 낙랑군장악(후한서)-서기30년 왕굉이 반란진압(후한서), 낙랑국왕 최리가 옥저로 사냥나감(삼국사기)-서기36년 낙랑군이 신라공격(삼국사기)-서기37년 낙랑국띨망(삼국사기)-서기44년 후한이 낙랑을 뺏음(삼국사기)-서기313년 미천왕이 낙랑군 정복(진서, 삼국사기) 이렇게 된다. ===존재에 대한 설=== ====낙랑국=낙랑군==== 가장 오래전부터 나온 설로 이병도가 이를 지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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