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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대 고종 이희''' !! → !! 27대 [[순종#대한제국 2대 황제, 조선 27대 왕|순종]] 이척 |- |} {{틀:대한제국의 암군}} {{한국통사}} == 개요 == [[일본 제국]]의 국민 중 특수 신분인 왕공족의 토쿠슈큐 리타이오(德壽宮 李太王). 참고로 왕공족은 당시 귀족 중 화족보다도 높은 등급의 신분이였다. 일본 똥꼬를 얼마나 빨아댔길래 일제로부터 화족보다도 높은 등급을 얻었는지 참 대단한 거 같다. 이완용도 못얻은 걸 ㄴ 전직 황족이기 때문에 체면 좀 살려주려고 준 계급임. 고종이 나라를 말아쳐먹은 좆병신 무능왕 새끼이긴 해도 딱히 고종이 노골적으로 친일을 해서 준 건 아님. 만약에 평민으로 강등하거나 그랬으면 조선 백성들이 더 심하게 반발하고 일본 입장에서도 피곤하니까, 피곤한 일 만들고 싶지 않아서 줬을 가능성이 매우 높음. [[대한제국|대한국]]의 1대 황제이자 [[조선|대조선국]]의 '''군밤왕''' 즉위 하자마자 내린 첫 어명이란게 자신에게 단 한번도 공짜로 군밤을 주지 않았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광화문 밖에서 장사하는 군밤 장수 아무개를 죽여라" 라는 것이였다. 씨발 일국의 왕이라는 새끼가 돈주고 사먹어도 모자랄 판에.... 하여간 신분이 높던 낮던 공짜 좋아하는 헬조선 종특은 알아줘야 한다. 다만 이는 황현의 매천야록에서 나오는 야사다. 진짜로 믿지는 말자. 애초에 이 이야기로 까는 사람들도 이 상황 자체가 진실여부 다 거르고 워낙에 어이없고 실소나오는 상황이기에 적절히 조롱하거나 드립치는 용도로 사용하지 진짜 믿는 경우는 거의 없다. 참고로 휘가 '[[이명박|이명복]]' 이다. 좆본한테 독살당해 뒤졌다는 의혹이 있는데 정확한건 모른다. 제일 확실한건 나폴레옹처럼 그냥 무덤 까서 시체 조사하면 바로 결과 나오는 거지만 전주이씨 씹새끼들이 게거품 물며 지랄발광 할게 뻔하기 때문에 그대로 방치한채 좆일감정 일으킬 시즌되면 독살 떡밥 흘리는 중이다. 이 망할놈의 암군이 남긴 것이라곤 대한제국의 계승권과 대한민족의 정체성 확립 외엔 딱히 없는 것으로 보인다. 능력은 좆도 없는데다가 왕까지 했으니..... 이 새낀 걍 백성으로 태어나는게 나았다. == 상세 == 망국의 원흉이라 꼽기도 하지만, 의외로 노오력은 많이 했다. 노력은 가상 했다만 [[잘 모르고 무식한 사람이 신념을 가지면 무섭습니다|무지한데다가 당시 국제 정세에 대한 이해도가 1도없었고 밑의사람들이 개혁하자고 아무리 이야기해도 전제군주제가 아니면 안된다고 빼애액 너 반역!이라면서 오히려 사사건건 개혁에 훼방만 놓았다.]] 고종이 병신이라 욕을 많이 먹지만, "당시 좆선은 올림포스 12신들을 다 대려와도 회생시키지 못 할 만큼 절망적이었으니, 그가 얼마나 병신인지는 별 의미도 없다"고 하기엔 [[태국|섬라]]의 [[쭐라롱껀대왕]]이라는 예시가 있어서 느그좆이다. 그냥 씨발 병신새끼 맞다. 인조랑 다른점은 인조가 집권할때는 인조가 광해군이 주장한 중립외교를 무시해서 좆된거지만 고종때는 식민지가 존나 많이 생길 때라서 어쩔수 없었다는 개논리가 먹히기라도 한다... 는 일본이 청나라와 러시아의 코에 펀치를 연달아 때려서 두 거인들이 일본한테 맞아서 [[청일전쟁|청나라도 멍들고 혹 나고 눈물코피눈물코피눈물코피]] 됐고 [[러일전쟁|러시아도 멍들고 혹 나고 눈물코피눈물코피눈물코피]] 돼서 이 역시 느그좆이다. 그나마 아빠가 [[경복궁|우리집]] [[당백전|짓느라고 국가재산 다 까쳐먹어서]] 어쩔 수 없었다 정도가 먹히기라도 한다. [[민자영|마누라]]한테 꽉 잡혀 사는 현대 중년 남성의 모습. 아빠 눈치보고 마누라 눈치 보고 눈알이 한 100개쯤 되는냥 눈칫밥만 먹고산다. [[민자영|민비]]년이 말아먹은 것도 많지만 고종도 워낙 빡대가리에 무능 그 자체라 암탉이 없어도 알아서 망했음. 고종 민비 둘이서 쌍으로 나라 말아먹은 부부사기단이다. 또라이기질이 넘치던 새끼인데 지 나라도 언제 먹힐지 모르는 위험한 상황에서 미군을 돈주고 사와 [[만주]]정복을 하자는 개소리를 지껄였다. 정말 미친놈인게 미국에게 일본과의 을사조약 무효로 해주세요 징징 거렸다가. 천조국 성님들이 '미친새끼가 개소리 하네' 하면서 까였다. 당시 미국은 조선을 무능하고 망해도 이상하지 않을 나라같지도 않은 나라(팩트)로 보았고 오히려 일본에 호의적이었다. 이런 국제적 정세도 읽을줄 모르는 병신이었다. 나라 망해가는데 [[황제]]에 등극하고, 절대왕권을 누린다. 본인 왈 광무황제라고 하던데 아무도 그렇게 안 불러준다. 그리고 후손들도 역사 강의 빼고 아무도 저렇게 안 불러준다. 애초에 다른거 다 거르고 그냥 자신의 이렇다할 확고한 신념 자체가 없어 여기저기 우유부단한 것이 가장 큰 문제다. 선동도 잘 당해서 지 손으로 독립협회도 없애버렸고.. == 패륜아 == {{패드립}} {{패륜}} {{패륜아}} 지 애비가 청나라에 납치되었다가 돌아온 날 마중은 나갔지만 안부같은건 물어보긴 커녕 아무말도 안했고 지 애비 흥선대원군이 뒤지는 날 지 형인 흥친왕 이재면은 아버지의 임종을 지켜보았지만 정작 본인은 자신을 왕으로 만들어 주는데 큰 도움을 준 지 애비의 임종을 지켜보기는 커녕 장례식에도 안깄다. ㄴ 참고로 흥친왕은 대놓고 친일까지 했던 인물이다. 그런 인간도 한 일을 안했다는 건... 흥선대원군은 아무리 못나도 자식이라고 끝까지 고종을 보고싶어했다. 유언조차 "주상(고종)이 보고 싶구나. 아직도 오지 않았는가?"라고 아들을 그리워하다 죽었다. 이정도면 개호로폐륜아 새끼라고 보면 된다. 뭐 이유가 없던 건 아니고 고종이랑 왕권 다툼을 실질적으로 한 건 항상 흥선대원군이었다. 민비도 고종이 직접 애비랑 싸울 수 없으니 대타로 써먹은 것에 가깝다. 게다가 자신의 이복동생인 이재선에게 사약을 쳐맥이질 않나 자신의 조카이자 지 형 흥친왕의 아들, 즉 대원군의 장손인 이준용을 유배조치까지 하기도 하는 패륜을 저질렀다. ㄴ 아니 병신아 이준용은 반란기도했잖아 원래 둘의 사이는 애비와 아들 사이가 맞나 싶을 정도로 조온나 안좋았다. 그렇다고 영조-장조(사도세자) 만큼은 아니고 == 사실은 흥선군의 자업자득 == [[흥선대원군]]은 아들한테 세자가 아닌 왕을 내주고 사실상 모든 권력을 가졌는데 이는 조선역사 최초였다. 결국 이것때문에 둘 사이는 점점 틀어지게 되는데 고종이 성인이 되고 대가리가 좀 커지자 '아 시발 내가 왕인데 울 아버지는 왜케 지 멋대로함?'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고 흥선대원군은 헬조선인 아니랄까봐 아들을 못 믿고 전형적인 가부장적, 명령적인 아버지상을 가진데다 권력뽕맛을 못 잊고 늙어 뒤질때까지 틈만 나면 아들대신 권력을 잡으려고 지랄한다. 사실 생각해보면 고종 즉위부터 내정개혁까지 죄다 흥선군 머리에서 나온거고 실행까지 다했고 자식놈은 바지사장 역할만 했는데 머리좀 굵어졌다고 지가 친정한단소리 하면 같잖게 보이긴 할꺼다. 이후 행적을 봐도 병신인건 누가봐도 알정도고 덕분에 고종은 가뜩이나 병신인데 더 병신이 되버린다. 위에서 말한 이준용의 반란기도에는 흥선대원군의 입김이 있었고, 을미사변 때는 왜넘들이 궁궐에 침입해서 왕비 죽이는 걸 묵인하기도 했다. 이건 고종이 패륜아라고 할 것도 못되고, 흥선대원군의 자업자득이 꽤 있다. 흥선대원군이 권력잃고 한 짓 보면 아버지라 사이만 나빠졌지 모가지가 서너번은 날아가도 이상치 않을 수준. == 제국 선포의 의의와 한계 == [[제국]]의 정의는 동양의 경우 중원을 제패한 국가 제후국을 거느린 국가임이 조건이고 서양의 경우 기독교의 수장인 교황의 영지인 교황령과 로마 황제 계승의 연속성을 가진 로마 제국의 계승국들 서로마 제국, 신성 로마 제국, 동로마 제국이 제국의 조건을 충족하고 식민제국의 경우 본토를 지칭 할 때는 제국이라는 호칭을 쓰지 않았다. 대한제국의 경우 중국의 속국이 아님 독립국을 강조하기 위해 제국 선포를 한 것이다. 친족을 왕으로 책봉하는 일본제국을 모델로 제후왕 대신 고종의 친족들을 영친왕, 의친왕 등 친왕으로 책봉해 조선 왕족 직위를 근대화하려는 시도로 보인다. 그러나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가치관 중 어느 하나도 서구문명을 받아들여 발전 한 것이 하나도 없는데 제정 선포가 별 의미가 있을리 없었다. 동양의 제국이랑 서양의 제국이랑 뜻이 다름 애초에 서양 쪽은 몰라도 동양에서는 [[제국]](帝國)이란 말이 황제(帝)가 통치하는 나라(國)라는 뜻이지 무슨 상위국 이런 개념이 아님 게다가 미국은 여러 주(州)가 가입되어 있는 합중국 그러니까 [[연방제]]의 개념이지 타 민족이나 국가를 통치하는 제국의 개념이랑은 다름 대한제국은 조공을 바치지 않는 독립국의 군주를 표방한 국가였음. 하지만 제국은 동양이든 서양이든 막론하고 휘하에 왕국을 둬야 제국인데 고종은 이런 왕국 설립은 안하고 그냥 제국만 선포하는, 제국이 뭔지도 모르는 짓을 했다. 하려면 체계적으로 태봉 왕국(현재의 북한 영토), 백제 왕국(충청도 + 전라도), 신라 왕국(강원도 + 경상도)를 두고 거기에 각 왕자들을 왕으로 책봉해 파견해야 한다. 중국 한나라의 경우도 황제 휘하의 왕들이 분명 있고 그게 황족이면 왕, 일반인이면 태수라 했다. 일본 역시 천황과 그를 대리하는 쇼군이 있고 휘하 왕의 역할을 한 게 다이묘였다. 그런데 고종은 이렇게 안하고 무턱대고 제국 선포만 했으니 행정알못이다. 위의 미국 역시 주지사가 왕 역할을 하는 거였다. 황제가 통치하는 나라라고 했는데 황제란 자기 왕국을 갖고 있는 왕을 부하로 둔 군주라는 뜻이다. == 조선 최후의 로맨티스트 == 쥐어잡혀 살긴 했지만 아내이자 왕비인 명성황후를 지극히도 사랑 했다고 한다. 처음에는 별로 관심도 안주고 후궁들 하고 ㅍㅍㅅㅅ에만 열중 했으나 나이 먹고 친정하게 되자 금슬이 좋아졌단다. 근데 애는 귀빈엄씨 한테서 낳았다. ㄴ 숙종도 와꾸는 어중간했던 인현왕후 정치용 방패로 이용해먹으려고 애처가인척 한거랑 비슷한거 아닐까? 아무래도 민비가 [[질내사정|안싸]]를 허락하지 않았나보다. 얼마나 콩깍지가 씌였는지 지마누라가 나랏돈 존나게 까먹어 가며 돈지랄을 해도 그냥 그러려니 하며 넘어갔고 나중에는 자신도 덕질에 맛들여 차덕후 커피덕후 밀덕후가 되버렸다. 사실 등쌀에 눌린거지만... 민비가 좆본 양아치들의 칼에 푹찍으악 당하자 반쯤 정줄을 놓고 살기도 했다. 그후로 후궁이었던 귀빈 엄씨를 궁에 들이긴 했지만 지 마눌님에 대한 그리움은 여전했는지 그당시 얼마 깔리지도 않은 전화를 민비의 무덤에서 자신 안방까지 핫라인을 개통 시켜서 아침마다 무덤에다 대고 ' 임자 오늘 날씨가 추운데 거긴 춥지 않소? 오늘따라 당신이 보고 싶구려.' 하는 등 개씹 오그리토그리 한 전화질을 했다고 한다. {{틀:손발퇴갤}} 요즘사람들이 보기에는 '어맛, 죽은 자신의 아내를 생각하는 고종오빠 멋쪙ㅠㅠ' 이러겠지만 저 당시 전화는 최첨단 문물이자 존나 비싼거였다. 현대로 치환 하자면 대통령이란 새끼가 지 애비 무덤 좀 편하게 보겠다고 글로벌호크 하나 사서 지 애비 무덤 위에서 날게 하며 허구엇날 틈만 나면 컴퓨터로 바라보는거랑 다를게 없다. 그 정도 수준이 아니라 전화는 1990년대까지만 해도 엄청난 최첨단 문물이라서 2000년 이전까지는 사람들이 전화통화를 하려면 죄다 [[공중전화]]에 코인 또는 카드를 넣고 사용해야 했다. [[김형곤]], [[원미경]] 주연의 [[회장님 회장님 우리 회장님]] 영화판을 보면 오직 김형곤 회장만 [[휴대폰]]을 들고 다녔으며 나머지 이사들은 그 높은 직책임에도 불구하고 죄다 공중전화에 매달려서 통화해야만 했다. 전화는 1999년까지만 해도 엄청 귀한 물건이었다. ㄴ '휴대전화'랑 헷갈린 거 아니냐? 구한말에나 최첨단 문물이었지 60~70년대 이후로는 전국에 깔린 게 전화인데? 고종이 한 전화도 오늘날의 공중전화기의 전신이다. == 인스타충 == {{돈밝힘}} 일단 먹는거랑 입는거에 존나 관심이 많았다. 당시 서양 요리가 들어오면서 서양식 음식을 들여오고 서양식 식기와 요리, 코스요리도 도입해서 3끼 중 1끼는 서양식 만찬을 하며 먹을 정도였다. 특히 [[커피]]를 그렇게나 좋아했다. 아이 좋아라. 뜨뜻하고 달콤하고 향긋한 커피의 향취에 흠뻑 젖은 고종은 커피라면 종류별로 모아다가 하나씩 시식하는 것이 취미였다. 그래서 고종은 냄새만 맡아도 아메리카노인지 모카인지 카푸치노인지 바로 간파할 정도였다. 그래서 돼지새끼인건가.하여튼 이성계때부터 내려온 180키는 150따리 파오후새끼인 고종이 다까먹는다. 응, 그렇다고 200키 [[연산군]]이 훌륭한 건 아니고. 하루는 러시아 역관인 김홍륙이 고종을 시해하려고 커피잔에 독을 탔는데 고종은 입에 넣었다가 절대로 커피맛이 아닌 맛을 느끼자마자 독을 탄 걸 간파하고는 바로 뱉은 뒤 남은 커피를 땅에 부어버렸다. 문제는 똑같은 짓거리를 해놓은 다른 커피를 [[순종(조선)|아들내미]]가 마시는 바람에 그 아들내미는 생명이 위독해졌다. 어의를 급히불러 치료했는데 살아난 대신 몸이 개작살났다. 이빨은 전부 빠져서 어린 나이에 틀니를 끼고 다녀야 했다. 고종은 그렇게나 커피를 좋아했다. 거기에다 기록은 없지만 고종 시기 궁에서 사용하던 와플 기계가 발견 되면서 고종이 와플도 먹었을 것이다. 그리고 썬글라스에 서양식 명품 옷을 존나 좋아했다. 뭐 씨발 당대 왕정시대에 왕이 존나 좋은 명품을 입는것 자체는 별 문제는 아닌데 옷만 서양 명품옷 입고, 국가는 조선말기 막장 체제를 유지시키는 존나 병신같은 짓을 한다. 하다못해 척화로 유명한 흥선대원군 조차 근대화는 못했어도 킹갓세종을 비롯한 후대 여러 왕들이 그럭저럭 쓸만하게 만들어 놓은 건강한 조선시대를 만들려고 했었다. 근데 고종 이 새끼는 인스타충 답게 까페에 디저트에 패션에 과시거리는 존나게 사면서 조선말기 망가진 체제를 어떻게 하려는 시도도 없었다 ㅄ == 백성 여러분, 경복궁은 안전합니다. == [[아관파천]] 항목으로 == 청일전쟁 때 일본군에게 무기조공 == {{배신자}} 국사교육과 많은 역사서에서는 병기사(兵器史)에 관심이 없기 때문에 거의 다루지 않는 부분이지만 고종이 일본군에게 3개대대급의 무장을 그냥 조공한 적이 있다. 많은 사람들은 대한제국군이 화승총과 조총 따위로 무장하고 있을 거라고 잘못 생각하는데 이 시기 대한제국군은 충분히 근대화되어 있는 군대였고 무장수준은 일본이 경악할 정도였다. 일본군이 경복궁을 점령했을 때 그거 재탈환하려는 병력만 따져도 소총(강선총) 3천정과 야포 20문, 개틀링 기관총 8정을 보유하고 있었다 한다. 이 정도면 현대로 따져도 씨발 3개대대는 완편하고 남는 수준이다. 고작 야포 20문이라고 반문할 수도 있겠지만 이거 19세기다. 수도방위만 생각해보면 전술적으로 충분히 유의미한 전력이다. 그러나 고종은 전투를 지시하긴커녕 그냥 군대해산하라고 명령내리고 덕분에 근대식 군대를 유지할 수 있는 유일한 기회를 놓쳐버렸고, 이 아까운 무기들은 고스란히 일본군의 손에 넘어가 청나라와 싸우는데 쓰였다. 씨발? (참고로 1907년 대한제국 군대해산과는 다른 사건이다.) 그리고 결국 일본군이 청일전쟁에서 승리함으로서, 대한제국의 자발적인 무장해제는 동아시아 국가 간의 균형을 붕괴시키는 나비효과를 일으킨다. 사실 수도에도 이 정도의 병력과 무장이 있는데 동학농민군을 진압하러 상당수의 병력이 남하한 상태였다. 그곳에서도 야포와 개틀링으로 동학 농민군을 격퇴했다는 사료가 남아있는 것을 생각해 볼 때 최소한 전술단위적으로는 유의미한 병력규모가 유지되고 있었다고 봐야 한다. 심지어 중국을 통해 독일제 무기를 수입하고 있었기에 부분적으로는 일본군보다 앞서고 있었다. 야포 20문이면 5km밖에서 보병사단 1개정도는 눈깜짝할 사이에 일소할 수 있다. 일본군은 좆선보다 훨씬 큰 나라인 청일전쟁 때도 평양성 전투에서 고작 1만 7천의 병력밖에 동원하지 못했다. 이것도 대한제국이 일본군이 상륙하고 보급하는걸 멀거니 눈뜨고 쳐다만 봐서 가능했던거다. 애초에 바다 건너 전선을 유지한다는게 절대 쉬운 일이 아니다. 만약 대한제국군이 필사적으로 일본의 상륙과 보급을 방해했다면 이것보다 훨씬 못한다고 봐야 한다. 보급이 무제한적으로 이루어지는거랑 민병대, 게릴라수준의 산발적 저항이라도 보급선에 타격이 있을거라고 예상되는 상황은 난이도가 차원이 다르다. 자국 땅에서 무제한적으로 보급을 받는 상황에서 전면전을 벌였으면 어땠을까? 말하자면 열강일본 vs 좆약소국좆선이라는 일반적인 인식과는 달리, 만약 대한제국과 일본군이 전면전을 붙는다 하더라도 일본군의 무혈 승리를 장담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던 거다.(좀 나중 일이긴 하지만 이탈리아도 훨씬 약소국인 에티오피아에게 보급난항으로 개처발린 전적이 있다) 솔직히 일본상대로 이길 거라는 건 생각하기 어려워도 최소한 근대국가로서의 군대를 마련할 단초정도는 되었을 것이다. 근데 이런 병력도 다 날려버린게 고종이다. ㄴ ㄹㅇ이다 그냥 청나라에 붙어서 보급로만 끊으면서 견제했어도 쪽본은 ㅈㅈ다. 러일전쟁도 다이겼다고 하지만 막상 남은건 빚더미뿐이었는데 전쟁 장기지속이 가능한 국력이 아니었다. 물론 평양성 전투 때 동원한 병력이 그렇다는 것이고, 청일전쟁 내내 동원한 병력은 30만명 정도로 추산된다. 이 때 대한제국군은 절대로 일본군을 이길 수 없었다. 다만 대한제국군이 격렬하게 저항했다면 일본도 막심한 피해를 감수했어야 할 것이고 그렇게 피해를 감수해야 하는 상황이라면 애초에 청나라와의 세력균형이 깨질 것을 우려하여 상황 자체를 회피할 가능성이 높다. 중요한 건 최소한 반항하겠다는 제스처를 취했어야 하는데 그 최소한의 제스처조차 없었다는 것이다. ㄴ 종합해서 보니 고종새끼 일본군한테 존나게 물심양면으로 도움줬네? 그래서 나중에 한일합방때 왕공족으로 분류되서 품위유지비 존나 받아쳐먹을 명분이 이때 생긴듯. 애초에 대원군은 방계 왕족이지만 깡그지였다. 세도정치 세도가들의 잔칫상에서 밥 얻어먹을 만큼 무시당하면서 밑바닥에서 구르다가 집정자의 위치까지 혼자 오른 치밀하고 지독한 새끼였고 프랑스군 함대의 무력시위 때 같은 전쟁판이 벌어질 때 깡다구도 부릴 줄 알았다. 그런데 고종이건 광무제건 뭐라고 부르건 상관없이 이 새끼는 그 독종이자 자수성가한 아버지 덕분에 팔자에도 없던 왕 자리에 앉은 녀석이다. 물론 내치 측면에서는 칭찬할 만 하나, 이 시대에 맞는 리더십과 배짱. 즉, 전쟁판이 벌어질 때 해야하는 판단을 정말 못했다. 그리고 전쟁판 속에서 권력을 잡았던 일본 군부는 고종의 이 약점을 매우 잘 알았다. 결과론적이지만 고종이 중공 침략을 받을 시기의 베트남 공산정부나 제국주의 시대의 태국처럼, 아니면 직전 자기 아버지가 서양군에 하듯 교환비가 나오지 않더라도 일단 뻐기는 깡다구라도 부릴 줄 알았다면, 그래서 점령하기에 좆같은 지역이라서 점령이익이 적고 손해가 크다는 인식이라도 좀 주었다면 중립지역으로나마 남아 농사지어서 일본 배 불려주는 씹병신짓은 하지 않고 자기 원래 영토에서 황제놀이는 하며 지 좋아하는 커피랑 식도락 또한 마음껏 즐길 수 있었을 것이다. 한국에도 이익이었고. 아쉬운 점이다. == 디시인의 평가 == {{병림픽}} 일반대중들의 인식과 다르게 조선을 매각한 댓가로 일본정부의 비호를 받으면서 호위호식하면서 살았다 고종자식들도 귀족대우받면서 잘먹고 잘삼 ㄴ 고종이 최후의 순간까지 항전하진 못했던것은 사실이지만 고종이 자발적으로 조선을 매각했다는건 일본 측의 프로파간다로 봐야지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선 안된다. 고종이 나라를 팔았다는 류의 주장들의 근거는 고종실록 등의 기록에서 찾을 수 있으나, 고종실록은 조선왕실에서 만든 것이 아니라 '이왕직'이라는 일본제국의 통치기구인 조선총독부의 산하기관에서 편찬한 기록물로 그 신빙성이 떨어진다. 그 근거로 주한일본공사관 문서중 1905년 을사조약 체결일의 기사를 보면 실록에는 없는 부분이 나오는데 ''(30) [伊藤 大使의 한국 외교권 日本委任 필요성 陳奏 件] 往電第443號'' ''1905년 11월 16일 오후 3시 發'' ''林'' ''桂 外務大臣'' ''伊藤 大使는 어제 오후 3시 반 國分 書記官을 대동하고 內謁見을 마치셨다. 황제는 통역으로서 朴鏞和를 배석시키는 외에 그 좌우측근을 물리치고 약 3시간 반 이상에 걸쳐 대화가 있었다. 그 요점은 다음과 같다. (중략) 대요 위의 정황에 기초하여 본관은 오늘 외부대신에게 정식으로 約案을 제출하려고 한다. 또한 대사는 오늘오후 각 대신, 기타 중요한 원로대신을 여관에 초청하여 約案의 대체에 관하여 설명을 할 작정이다. 당국의 사태로서 비밀누설은 결국 면할 수 없는 바입니다. 이번의 우리 제안과 같은 것도 이미 궁중과 각 대신이 알게 된 이상은 외국 사신 중 이를 탐지하여 본국정부에 전보하는 사람도 있을 것임으로 일본정부에서도 우리 재외공사에게 電訓을 보내서 시의에 따라서는 정식 통지를 하기에 앞서 그 내용을 주차국 정부에 內示하실 필요가 생길 것입니다.'' 즉 고종은 실제로는 궁궐을 포위당하고 협박을 당해서 일본에게 나라를 넘긴 것이지, 나라를 자발적으로 팔았다고 보긴 힘들다. 한국주차군 병력이 궁궐을 겹겹 포위하는 상황 속에서 3시간동안 이어진 토론은 분명하게 황제와 대신들을 압박하는 용도였고, 한규설이 졸도해버린 이후에는(귀비 처소로 달려갔다가 쓰러졌는데, 다른 대신들은 그가 사망한걸로 앎) 반대를 표명하던 권중현과 박제순이 조건부 찬성으로 입장을 바꾸는 등 상당히 험악한 분위기가 연출되었고 한국군은 주한일본군 병력에 의해 이미 무력화 된 상태였고. 고종은 조약 체결 이후 11월 21일에는 독일 공사관을 통해 한국의 독립 보장을 요청하는 전문을 보냈으며 독일 뿐만이 아니라 1906년 1월 29일에 작성된 국서, 1906년 6월 22일에 헐버트 특별위원에게 건넨 친서, 1906년 6월 22일에 프랑스 대통령에게 보 친서, 1907년 4월 20일 헤이그 특사 이상설에게 준 위임장 등등 여러국가에 한국의 상황을 호소 한 바 있으므로, 이를 통해 실록에 기록된게 전부는 아니라는걸 알 수 있다. 물론 고종의 이러한 발악은 소용이 없었고, 외교만으로 상황을 타개하려던 시도는 모두 실패로 끝났지만, 고종이 앞장서서 나라를 팔아먹었다는 것과는 큰 괴리가 있다. 더군다나 고종이 자발적으로 나라를 팔고 호의호식 하는데에 연연했던 인물이라면 어째서 '헤이그 특사 사건 직후 고종이 강제 퇴위를 당한 것인지'가 설명이 안된다. 물론 고종이 무능한 인물임에는 사실이나, 그가 말년에 일제로부터 보조금을 받으며 풍요롭게 살았다는 것이 곧 고종이 나라를 자발적으로 매각했다는 근거가 될 순 없다. 가령 삼국지에서 등장하는 후한말 헌제는 조조에게 저항하다가 [[민비|지 후궁인 동귀인까지 살해당하고]] 허수아비 취급을 당하고 결국 조비의 압박에 못 이겨서 조비에게 선양을 하고 퇴위를 했으나 헌제는 위나라에게 산양공으로 봉해지며 물질적 지원을 받는 등 표면적으로 우대를 받았다. 그러나 이것이 헌제가 조씨일가에게 나라를 자발적으로 팔았다는 논거로 볼 수 있을까? 또한 한일합방조약은 이미 당대에도 그 절차의 문제점이 지적 된 바가 있다. -프랑스 국제법학자인 프랑시스 레이Francis Rey는 1906년「대한제국의 국제법적 지위」라는 논문에서 ‘을사조약은 완전히 무효’라고 주장했다. 한국 정부 측 동의표시의 결함과 일본 측이 한국에 대해 확약했던 보장의무 위반이라는 두 가지 하자 때문에 효력을 갖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아무리 힘이 곧 법이었던 제국주의 시대라 하더라도 약소국을 병합함에 있어서 국제법적으로 준수해야 할 사항인 보장의무를 위반했다는 부분 탓에 한일합방은 당대에도 그 위법성이 지적되었다는 것이다. 물론 제 아무리 명분이 어떻든 제국주의 시대는 힘이 약하면 호소할 곳도 없던 시대였던만큼, 일본은 청일전쟁과 러일전쟁을 통해 한반도에 대한 자신들의 지배권을 확고히했고 이러한 실력을 인정받았기에, 제 아무리 을사조약이 국제법상 위법이었다 한들, 다른 열강들이 일본제국의 대한제국 합병을 문제삼지 않았던 것이고 능력은 부족하지 않았지만 근대라는 격동기에 일본과 중국이라는 막강한 국가 사이에 있는 근세 국가를 이끌고가 살아남기에는 부족한 인물이었다. 전생에서 간잽이라도 한 건지 이놈 저놈 간을 존나 보다가 했다. 차라리 운요호사건이나 청일전쟁,러일전쟁때 지 애비가 프랑스 미국 상대로 한 것처럼 패기라도 부렸으면 당시 일본으로선 답이 없었다. 솔까 러일전쟁때는 아관파천까지 한 주제에 일본에게 나라를 그냥 보급거점으로 쓰게 해주는 병신짓을 함. 그땐 정말 일본도 온국력을 쏟아부은 거라 아무리 병신같은 전력인 조선이라도 러시아와 함께 한반도에 진주한 일본군을 쫓아내거나 그게 안되면 러시아와 전쟁중인 일본군의 보급로를 끊거나 솔까 게릴라전이라도 했다면 한반도를 보급거점으로 삼고 있던 일본은 그냥 좆망했다. ㄴ 당시 의병하던 조선 사람들도 있었지만 조선을 러시아의 마수에서 해방시키기 위한 성전이라는 일본의 프로파간다에 그대로 넘어간 사람도 있었다. 그런 세력은 소수였을뿐이라고? 지랄. 독립협회에서 다른 나라한테 이거줘거 뜯어주는거에는 암말도 안하던 새끼들이 러시아가 뭐만 달라하면 지랄난리를 쳤던게 전쟁 전 고작 3 4 년 전이다. 러시아 은행이 진출한다니까 난리를 치면서 반대를 했고 그 반대급부로 일본 제일은행이 금융을 좌지우지 하는데도 아무 말 없었다. 당시 많은 사람들이 일본 보다는 러시아가 더 큰 위협이다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나라에서 가장 고학력자들인 지식인들 마저도 국제정세에 이렇게 어두웠던거다. 시절이 언젠데 1880년에 들어온 조선책략에서 지껄이던 소리를 아직까지 재잘거리고 있으니 ㅉㅉ 사람들 눈에는 그렇게 보였던 거다. 그래서 진짜로 그렇게 생각하던 사람들이 많았고 정작 전쟁 끝나고 일제가 2차 한일협약. 즉 을사조약 체결하면서부터 그때에 가서야 사람들이 눈치를 깐거다. ㄴ 러시아 식민지 되려고? 그리고 시발 그딴짓 하면 바로 영국이 영일동맹 빌미로 상륙해서 1머전이 조선땅에서 일어난다. ㄴ 좆본이 조센 침략하기전에 포츠머스조약 맺어서 이미 러시아한태 허락 다 맞아놓음. 지금의 관점에서 보면 칼자루가 일본에서 러시아로 넘어갔을 뿐일 경우도 배제할 수는 없지만 그냥 넋놓고 가만히 있으면 먹힐 상태인데 발버둥이라도 쳐야 정상 아닌가. 어떤 병신들은 이거보고 영국이 일본 돕는데 발악한다고 되냐 하는데, 그때 독일 카이저 빌헬름 2세가 영국 존나싫어한걸 까먹으면 안되지. ㄴ 그 빌헬름 2세가 당시 아프리카 쳐먹겠다고 프랑스와 쌈박질 중이라 조선은 관심도 없었다는 걸 까먹으면 안되지. 게다가 '''독러동맹 깨부수고 러시아 앞마당 산둥반도에 대놓고 식민지 만들어서 러시아 통수친''' 빌헬름 2세가 잘도 러시아 지지하겠네? 거기에 예전에 아편전쟁만 해도 찬반 반반 나오던 전쟁이었는데 러일전쟁서 일본이 러시아 상대가 아니라 조선상대로 게릴라 때려잡고 소탕전이나 하고있고 학살질하면 잘도 영국인들이 와 하고 지지하겠다?? ㄴ 영일동맹 병신아, 설마 해적 씹새끼들이 그딴 걸 신경 쓰리라고 생각한거냐? 지들도 인도에서 존나게 학살했고 프랑스의 서아프리카 학살이나 벨기에의 콩고대학살도 묵인한 새끼들인데? 그리고 좆본이 이상황서 러일전쟁 이겨라고 돕다가 독일하고 러시아가 붙으면 그건 유럽서 진거. ㄴ국뽕들 논리대로라면 아프리카에서 숱하게 일어난 게릴라나 중국 정규군은 왜 털린거냐? 설마 화승총 따위로 좇본군을 이길 수 있으리라 생각한 거?? ㄴㄴ 좆본은 러일전쟁에 이기고도 빚더미로 싸운전쟁이라 전쟁배상금도 없이 러시아한테 화의신청 헤애할정도였고 아무리 조선이 병신이였어도 작정하고 지랄했으면 좀더 유리한 상황으로 이끌어내는게 불가능하진 않다. 위에 국뽕새끼들 헛소리하는데 발악하는건 둘째치고 도대체 뭘 가지고 발악하냐? 일단 국제정세는 둘째치고 제일 중요한 당사자인 좆선의 꼬라지부터 짚고 넘어가라. 줄루족보다 100배는 못한 군대에 한성과 궁궐은 이미 사실상 점령 상태이고 민심은 개씹창인데 빌헬름 운운하면서 합리화 해주려는 꼴 보니 역겹다. 무능한 빡대가리라 애초부터 제대로된 계획도 없었겠지만 마음만 먹으면 하늘에서 없는 군대가 떨어지냐 무기가 떨어지냐 민심이 생기냐 물자가 생기냐? ㄴ라고하는 빡대가리 치고 구한말 국제정세나 내부상황이나 의병 규모에 대해 아는새끼를 보질 못했다. ㄴ제대로 된 나라에 의병이 있을 리도 없고 기껏해야 사냥꾼들 주력으로 땅파먹는 놈들이랑 씹선비 좀 가지고 있었겠지, 그리고 벨 에포크 시기 국제정세는 조선에게 가장 병신같이 돌아가고 있었는데, ㄴ의병 규모말인데 다합하면 14만은 채운다 교전횟수도 2000회가 넘어가고 ㄴ병신아 주력으로 땅파먹는 놈들이랑 씹선비들 지들끼리 독립군으로 발악하는것보다야 나라 자체에서 발악하는게 훨씬 낫지 않았겠냐 ㄴ애초에 별기군 키운다고 구식군대는 썩은쌀에 모래섞인거 받게해서 임오군란 불러온새끼가 누구인지는 비밀이다. 하인들이 업어다 출퇴근시킨 별기군은 덤 애초에 일본이 을미사변 이후로 국제여론 최악이라 조금만 머리 굴렸으면 나라 태국정도로 지킬 수 있었는데 그걸 굳이 아관파천해서 러시아랑 동맹맻어서 미영프 삼국의 어그로를 끌었다. 러시아가 조선 쳐먹어서 부동항 얻으면 가장 먼저 동남아에 있는 지들 식민지부터 박살나는데 그걸 놔둘리가, 러일전쟁 때 일본 지원하고 각각 영일동맹이랑 가쓰라-테프트 협정으로 일본의 조선 지배 인정한 이유가 이거다. 그 대가로 받은 게 인도와 필리핀의 지배 인정이니, 결론적으론 국제정세 판단 못하고 지랄하다가 털린 병신이라고 할 수 있겠다. 아무튼 걍 지 애비처럼 패기라도 부렸으면 나라는 안뺐겼을거 마지막까지 거한 병신짓을 한 덕분에 헬조선에서 근왕주의자는 싸그리 멸종당하고 왕정 복고는 완전 물거품이 됨. 거기다가 교육계에서는 무슨 자주 독립 실현을 위해 힘쓴 새끼로 나오는데 일본에서 차관끌어다가 민비랑 사치부린 새끼에게 그딴 평가를 내리는 거 보면 얼척이 없다. ㄴ지 권력 좆될거 같으니까 뒷북으로 헤이그에 특사 한번 보냈다고 저러는 거임. 왕정복고하자는 애들이 그거 울궈먹었지. 그리고 나라살려볼라고 진짜 개고생한 김홍집에게 민비살해범 누명을 씌워서 멍청한 백성들에게 죽게만든 새끼다. 그것도 이새끼는 좆본새끼들한테 쫄아서 러시아대사관으로 아관파천해서 히키코모리마냥 짜저있는걸 김홍집이 찾아가서 나오라고 설득하려던걸 말이다. 이새끼가 괜히 을사육적취급 받는게 아니다. 국제정세, 나라상황 다 좆까고 그냥 정치자체를 해서도 안되고 능력도 없는 새끼가 왕을 쳐해서 안그래도 씹창난 나라 더 좆같이 만들었다. 천조국에서 민주주의를 깨닫고 와서 순진하게 좆본을 믿고 삽질 후에 탈조선한 필립 제이슨이 만든 독립신문을 신하들 말만 처듣고 줏대없이 폐간한 건 [[헬조선]]권력층 다운 병신스럼을 보여준다. 위에도 나와있지만 동학농민운동때 수도지켜야한다고 병력 따로 빼둔 상황에서 우금치전투때 참여시킨 병력이 3천가량인데 그때 쪽본군 200에 넘겨줬다는 장비가 소총(강선총) 3천정과 야포 20문, 개틀링 기관총 8정이다. 당시 쪽본군도 기관총이 없었다. ㄹㅇ 그냥 패기부리고 지랄했으면 쪽본은 빚더미에 앉아서 자멸하는거지 이게 불가능한게 아니다. 지나가던 결론충이 결론을 내리자면, 이 새낀 그냥 동서고금의 명군 대가리를 다 끌어와야 간신히 나라를 지켜낼 수 있었던 시기에 자기한테 안 어울리는 황제란 자리에 앉아있던 허수애비였다. 일단 고종을 만나본 외국 대사들이나 성교사들 얘기를 들어보면 사람이 빡대가리는 아니다. 나름 유우머감각도 있고 교양도 있었던 모양. 하지만 그게 한창 미쳐 돌아가는 헬조선이란 똥통의 소용돌이에서 빠져나올 정도는 아니었다는 게 이 병신의 최대 문제다. 애초에 이 새낀 왕이 될 만한 재목이 아니었다. 왕이란 새끼가 아빠한테 휘둘리고, 마누라한테 휘둘리다가 결국 정치다운 정치는 제대로 해보지도 못했다. 게다가 이 새끼도 유교 탈레반이었던지라, 나라를 지키기보다는 황실을 지키기 위해 애썼다. 괜히 을사육적으로 불리고 있는 게 아니다. 한일보호조약 때도 '뭐 몇 군데만 고치면 도장탕 해줄수 있다!'는 말도 했다. 독립협회도 대충 밀어주다가, 입헌군주제로 바꾸자는 얘기가 돌자 존나 밀크부단한 새끼가 전대갈급 추진력으로 순식간에 밀어버렸다. 기록 읽어보면 알겠지만, 이 새끼의 마인드는 지는 롤을 하는 새끼들의 전형적인 마인드다. 1차포탑 내주고, 2차포탑 내주고, 억제기까지 내준다. 왜냐? 그래도 황실만 남아있으면 괜찮아! 데헷 :)이란 마인드였지만, 결국은 허공에 좆질하는 꼴이었다. ㄴ 독립협회는 입헌군주제 하자고해서 해산된게 아니라 공화정하자고 했다고 모함받아서 해산된거다 워낙 욕을 많이 쳐먹어서 윤치호나 이완용 같은 개화파들의 병신짓을 묻어줘서 훗날 역센징들이 일뽕을 빨아제끼게 도와주는 공로를 세웠다. 다른 나라였으면 병신이라고 욕 먹었을 개화파들이 고종빨로 몇몇 놈들에게 구국의 영웅으로 묘사되는 걸 보면 인생은 타이밍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이완용을 하수인으로 부리는 플레이어다. 상당한 정치적 수완이 있는데 그예로 이완용을 대리로 내세워 좆같은 이왕가를 보존시키며 일본이 준돈으로 호위호식하며 죽을때까지 잘먹고 잘살았다. (이점에서 망국의 책임을 지고 스스로 목메고 자살한 명나라 마지막 황제하고 대비된다.) 그리고 갑오개혁 을미개혁으로 이어지는 조선근대화 과정에서 아관파천해서 모든개혁을 퇴행시키고 광무반달을 행하여서 조선의회를 폭파시키고 지 스스로 조세권,입법권,사법권,군사권,외교권 등등 다 해먹는 반인반신도 부러워할 초월적 권한을 누렸다. 특히 광무퇴행에서 대부분의 세금을 이왕가 금고로 돌려놔서 지가 사치품사는데 다 써버리는 행태는 가희 일품!!!.. 사실상 남자민비 하여튼 시대보정 하더라도 ㅎㅌㅊ군주인데 한국 반일정서상 많이 미화된 케이스 다시 한번 말하지만 아 자식은 매국노들의 수장이며 망국책임을 전혀 지지 않았고 백성과 나라를 일본에 팔아먹은 돈으로 죽을 때까지 호위호식하며 잘먹고 잘살았다 물론 고좆의 자식들도 일본에서 귀족대접 받으며 졸라게 잘먹고 잘살음.. 팩트는 이러한데 왜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이왕가놈들이 일본병합후 일본에게 탄압받았다는 인식이 강해서 동정여론이 강하다.... 빨리 인식의 전환이 필요 하다고 할 수있다. ㄴ정확히 말하면 고종은 그래도 황위 잃기 싫어서라도 좀 개겨보긴 했는데, 대원군파가 주축이 된 나머지 왕가넘들은 그냥 완전히 개가 되었다. 그래서 왕조 복귀시키자는 넘들이 그거 하나 빨면서 왕조 복귀 외쳤다가 고종 죽고 나서 버로우탔다. 근데 또 고의적으로 나쁜 놈은 아니었다. 물론 자기가 무능한건 어쩔수 없는 확정사실이다. 뭐라뭐라해도 고종이 왕에 걸맞는 재목은 아니었어. 그냥 그시대를 헤쳐나갈 능력이 없는 사람이였다. 머가리가 ㄹㅇ좆병신이거나 연산군같은 씹새끼는 아니였지만 당시 상황이 영정조수준의 좆되는 정치력을 갖고있어도 될까말까한 판이라. 나믺키엔 비운의 군주라고 써있다. 광광ㅜㅜ 하나는 맞게 써놨는데 죽는거 존나 쫄려한다더라 ㄴ 이건 해외기록에도 있는데 독살당하는걸 우려하여 러시아 대사가 밥남겨서 상자에 싸온거 굽신굽신하며 받아먹었다는 기록이랑 계란이나 통조림같이 애초에 밀봉된거 아니면 안먹었다는 기록이 있다. ㄴ왕위잃기 싫어서 발악하다가 이왕가 지어주니까 입싹닫고 명치천왕 발밑으로 들어간 암군 곶종 클라스 지리고갑니다 물론 이와중에도 [[커피|가배]]한잔의 여유를 아는 품격 있는 남자. 밤이오면 심장이 뜨거워지는 남자, 그런 감각적인 남자 결국 그 가배 한잔을 잘못마셔서 1919년 사망하게 된다. == 그나마 잘한 점 == 대한제국 시대에 조선시대때 서양의 ㅈ같은 이미지들을 좀 개선해내었고 경제력이 크게 향상되어 일제시대때 우리 국민이 그래도 좀 살았다. 실제로 1894년에 조선의 위생상태가 엄청나게 ㅈ같엤었는데 1901년 대한제국이 서울에 위생상태를 좋게하여 서양인들의 조선을 보는 시선을 크게 개선시켰다. 영국이 우리보고 협상맺자고 한 이유도 그것때문이었을거다. 장기적으로 봤을때 좋을것같으니까. 근데 고종새끼는 그걸거절해서 일본에게 떠먹혀서 문제이다. 참고로 역센징들은 일본이 들어오기 전엔 조선길가엔 똥만 있을 정도로 미개하단 소리를 했는데, 사실 길거리 똥 치우는걸 체계화한건 대한제국이 먼저다. 동시대 조선이 한양 길거리에서 똥을 치워뒀을때 일본은 아직도 길거리 똥이 남아있었다. 애비인 [[이하응]]대까지 [[전주 이씨]] 개새끼들이 해왔던 [[가톨릭]] 탄압을 고종부터는 중지했다. 이 덕분에 조선은 유럽으로부터 긍정적으로 이미지가 개선되기 시작했다...는 실제로 일본이랑 청나라한테 존나 털린 다음에 통상조약이 물밀려오듯이 들어오면서 억지로 하게 된 경향이 크다. 흥선대원군은 1873년에 실각했는데 가톨릭의 자유는 조불수교가 시작된 1886년부터 허가된 거 보면 고종의 자의는 아니다. 물론, 이를 노리고 가톨릭 응디 뒤에 숨어서 형님형님형님형님 거리면서 한반도에 상륙한 [[개신교]]는 안자랑이다. 근데 고종은 애초에 경제력향상보다 일본제국이랑 러시아 제국에게 먹히지말아야지 이런생각을 먼저해서 일단은 국력부터 키우고 경제력향상을 했어야 했다. 만약 국권탈취가 되지 않았더라면 우리나라는 좀더 잘살았겠지. 고종이 경제성장 하나는 ㄹㅇ 잘한건 맞다. 이건 인정하자. 근데 다른게 다 병신이여서 문제지. 철도, 전기등의 근대화 작업들을 아시아가운데서 꽤나 빠르게 하고 이 근대화한걸 가지고 수출을 하고 경제개발을 하고 상업과 기업들을 적절히 장려하여 우리는 일제시대때 최소한 그리스, 포르투갈만한 경제력을 지니게된다. [https://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3&oid=353&aid=0000028827] : 출처이다. 대한제국 칙령 제41호로 울릉도를 울릉군으로 승격시킨 다음 강원도에 부속시켜서 독도를 울릉군과 강원도가 관할하게 함으로서 독도가 우리 영토임을 확실히 하기도 했다. == 같이보기 == [[나폴레옹 3세]] - 얘도 더럽던 파리 도시정화와 미관에는 힘 썼지만 외교랑 군사적 판단이 중요했던 시기에 이 두가지가 없어서 프로이센에 프랑스가 탈탈 털리게 된다. 살만 찌우면서 대책없이 어그로만 팍팍 끌어대다가 옆나라 배 불려 줬다는 점에서는 어느정도 비슷하게 볼 수 있다. 참고로 [[병인양요]] 일어났을 때가 얘 집권기였다. 게다가 이 놈은 [[멕시코|대통령이 있는 나라에 황제를 즉위시키는 병신짓을 했다.]] [[도쿠가와 요시노부]] - 고종과 비슷한 보신주의적 성격의 지도자이다. 고종처럼 왕권 전통은 유지하되, 개혁을 실시하여 군사의 근대화를 추진시키는 등, 고종과 비슷한 점이 크다. 더불어 망국(에도막부)의 군주이다. 차이점이라면 고종은 외세를 끌어들여 자국을 전쟁터로 만들었으나, 요시노부는 외세 개입을 막아내어 일본 내전 격화의 피해를 막아내고 시대적 흐름을 이해하여 일본제국 메이지 덴노에게 정권을 이양하였다. 그래서 고종보다 평이 낫다. [[경순왕]] - 고종과 비슷한 보신주의적 성격의 지도자이다. 더불어 망국(신라)의 군주이다. 둘 다 외세를 끌어들이긴 했지만 차이점이라면 경순왕은 [[왕건|외세]]를 기가 막히게 잘 이용해서 비록 나라는 멸망했지만 나라'''만''' 멸망하는 선에서 끝났으며 백성들은 멸망 이전의 계급장을 그대로 달고 있게 되었으며 본인이 퇴위하고 백성들의 국적이 바뀐 것 말고는 달라진 게 없지만 고종은 외세를 끌어들여 백성들을 지옥에 떨어뜨려 놓았다. 라마 5세 - 고종과 비슷한 시기에 재위한 태국의 군주. 외교 잘못해서 나라쳐먹힌 고종과 달리, 대나무 외교라는 치트키를 발동하여 국가를 보존하는데 성공한다. 중립의 좋은 예시 {{역대 조선 대한제국 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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