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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세기}} {{심플/노답}} {{심플/극혐}} {{심플/발암}} {{심플/공포}} 1450년 [[세종대왕]]께서 별세하시고 [[문종(조선)|문종]]이 뒤를 이어서 왕으로 즉위했다. 하지만 문종은 병세로 2년 겨우 넘기고 [[단종(조선)|단종]]에게 왕위를 물려주었다. 이때 단종의 나이가 겨우 12살이었는데, 당연하겠지만 신하들은 그를 어리다고 깔보았다. 그러나 단종은 나이 때문에 이에 대해서 제대로 말할 수도 없는 지경이었다. 세종에게는 여러 명의 아들이 있었지만, 그 중에서도 조심하라는 둘째 아들 [[수양대군]]과 셋째 아들 [[안평대군]]을 경계하라고 했다. 그나마 안평은 학문, 예술 쪽에 관심이 있었던 반면에 수양은 본인의 할아버지인 태종 이방원의 성향을 닮아 무예, 군사 쪽에 일가견을 보여 더욱 경계했다. 그래서 세종과 문종은 살아 있을 때부터 [[김종서]], 황보인을 비롯한 충신들에게 수양을 조심하라고 말하고 단종을 잘 돌봐달라고 하였으며 단종 세력에는 3정승이, 수양대군 세력에는 군부 세력을 쥐고 있었다. 이후 1453년에 들어서서 아직 15살인 단종을 몰아내고자 마음 먹고 10월 10일, 3정승을 죽이고 단종 세력을 무참히 살해했다. 이 사건을 계유정난이라고 한다. 이때 죽은 사람들이 세종과 문종이 가려뽑은 조선의 최고 브레인들이란 걸 생각하면 절로 탄식을 자아낸다. (물론 신숙주처럼 권력에 붙은 최고급 브레인도 일부 있지만) 단종은 별다른 저항 없이 가만히 지내다가 2년이 지나서 정승지(세종 시절 집현전 학자)의 피드백에 따라 왕위를 수양한테 선위하고 물러났다. 결국 친히 [[헬조선]]왕조의 국왕으로 즉위하여 [[헬게이트]]를 열었으니 이놈이 바로 [[수양대군|세조]]다. 이후 상왕으로 물러나 있으면서 숨죽이고 살던 단종도 모르는 사이에 사육신이 나타나, 성삼문이나 금성대군 등의 세력들이 단종 복위 운동을 도모했다. 이를 계기로 수양은 단종을 노산군으로 떨어뜨리며 강원도 영월로 유배를 보냈고 1년 뒤에 단종을 죽였다. 단종 사인으로는 자살설, 암살설이 존재하지만 이걸 알 필요는 굳이 없다고 본다. 그 뒤로 조선 왕위에 정통성이 생기는 일은 [[숙종(조선)|숙종]] 이전까지 없었다. 참고로 노산군을 단종으로 올려준 장본인이 바로 이 숙종이다. 주역으로는 [[한명회]], [[신숙주]] 등이 있다. 비슷한 사건으로는 궁정동에서 여자 끼고 놀다 벌집핏자가 된 다카기가 일으켰던 [[5.16 군사반란]]과 [[29만원]]이 무한 리필되는 직불카드를 가진 [[문어]] 아저씨가 일으킨 [[12.12 군사반란]]이 있다. {{읍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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