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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자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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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t Two: 자본/소득 비율의 변동== ===3~4. 자본/소득 비율의 변신이야기=== [[파일:21세기자본요약11쪽.JPG]] 자본/소득 비율 패턴은 독일, 프랑스, 영국뿐만 아니라 다른 유럽지역에서도 비슷하게 나타난다. 전쟁과 그 여파를 제외하면, 자본/소득 비율은 항상 미국보다는 유럽에서 더 높은 경향이 있다. 유형별로 분류해서 살펴보면 각 국가들의 변화를 더욱 자세히 살펴볼 수 있다. 프랑스의 해외자산 중 거의 절반이 외국 정부, 특히 채무불이행 직전의 러시아 정부부채로 이루어져 있었다. 캐나다는 천연자원이 주로 영국인의 소유였기 때문에 마이너스의 순 해외자본을 기록했다. 현재는 독일과 일본이 각각 국민소득의 50%, 70%의 순 해외자산을 기록한다. [[파일:21세기자본요약13쪽.JPG]] 미국은 유럽보다는 전쟁의 충격을 훨씬 덜 받았기 때문에 미국의 자본/소득 비율을 훨씬 더 안정된 수준으로 유지할 수 있었다. 1913년 당시 미국은 해외자산 보유보다는 영국인에 의해 소유되고 있는 것이 더 많았다. 미국은 땅이 넓고 토지의 가격이 상대적으로 아주 낮아 유럽보다는 농경지의 부가 덜했다. 대신 노예가 유럽보다 부에서 훨씬 많은 부분을 차지했다.<ref>1860년 노예자본의 가치는 평균 2000달러였다. 자유민 농장노동자의 평균 임금 200달러 이므로, 노예가 이들과 동일한 생산성과 수익률을 보인다면 4000달러에 거래되었어야 했다.</ref> 미국 노예의 수는 노예제도의 폐지로 사라지기 전인 1865년에 400만명을 넘어섰다.<ref>영국의 노예제도는 1833~1838년에 폐지되었고, 프랑스는 1848년에 폐지되었다. 프랑스에게 해방되었던 노예의 수는 25만명이었다. 그러나 미국과 마찬가지로 합법적인 형태의 차별은 해방 이후에도 계속되었다. 법적 체제는 차이가 있지만 여전히 노예제를 완전히 청산한 것은 아니었다.</ref> 미국을 남부는 인구의 절반이 인구의 다른 절반을 소유해 소유권의 불평등이 가장 극단적이었다. [[죽창]].. 주욱창... ===5. 자본의 부활=== [[파일:21세기자본요약14쪽.JPG]] 두 차례의 세계대전을 치루고 난 후, 해외자본 상실<ref>1917년에 볼셰비키들이 무효화한 대 러시아 대출이나 1956년에 나세르가 국유화한 수에즈 운하로 채권자들과 소유주들은 커다란 손해를 입었다. 또한 전쟁으로 피해를 본 재산의 복구와 대체에 든 비용 때문에 자신들의 해외자산을 점차 처분할 수 밖에 없었다.</ref>, 낮은 저축률, 물리적 파괴, 소유권 변화, 새로운 정치적 상황으로 인한 자본규제에 따른 낮은 자산 가격<ref>주로 1920년대 초반 그리고 특히 1940년대의 높은 인플레이션 기간에 유럽뿐만 아니라 미국에서도 채택되었던 임대료 통제 정책 때문에 부동산 가격이 역사적으로 최저치를 기록했다. 또한 1930년대의 대공황과 국유화로 주식시장에 대한 신뢰가 흔들렸고, 금융 규제, 배당과 이윤에 대한 과세 등의 정책으로 주식가치를 떨어뜨렸다. 미국과 영국은 유럽보다도 한발 앞서 누진세를 도입하여 불평등을 줄이려 노력했다.</ref> 등에 의해 자본/소득 비율은 급락했다. 그런데 1970년 이후, 40년 간, 자본/소득 비율은 다시 상승하면서 구조적으로는 농경지가 점차 주택<ref>건물이 세워져 있는 토지의 가치 포함</ref>과 영업 자본으로 대체되는 변화가 나타났다. 영국의 자본은 국민소득 대비 기타국내자본이 50%, 주택이 150% 상승했다. 프랑스는 주택이 250% 상승했고, 독일은 순 해외자본 50%, 주택이 100% 상승했다. 미국은 기타국내자본 50%, 주택이 50% 상승했다. 이는 저성장<ref>지난 20세기 선진국의 1인당 국민소득 성장률은 선진국을 따라잡는 신흥공업국의 빠른 성장(3%이상)을 제외하고는 성장이 거의 연 1~1.5%를 넘지 않았다. 1970년 이후 40년간 선진국 간 국민소득 성장률의 차이는 인구증가율의 차이에서 비롯됐다. 인구증가율이 저조해지자 국민소득 성장률이 낮아졌다. 정체된 사회에서는 과거의 축적된 부가 자연히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게 된다. 또 인구증가율이 낮으면 상속자의 수가 줄어들기 때문에 부가 더욱 집중되는 결과로 이어진다.</ref>, 민영화<ref>과도하게 과소평가된 민간자산과 과거 공공자산이 민영화이후 자산 가격 따라잡기로 민간의 부가 증가했다는 설명이다.</ref>, 공공저축의 희생, 작은 도시의 자본손실<ref>부유한 국가들에서 총자본, 특히 부동산자본 이 저축과 투자의 축적이라는 관점에서 아주 잘 설명될 수 있다고 해서 수도와 같은 특정 지역들의 인구 집중과 관계된 대규모의 지역적 자본이득의 존재가 분명 배제되지는 않는다.</ref>로 설명된다. 역사적 자료는 불충분하고 불완전하다. 자본/소득의 비율이 앞으로 어떤 변화를 일으킬지 완벽하게 판단하기는 매우 어렵다. 그러나 현재 예측하고 있는 미래의 자본의 대체탄력성은 대략 1보다 크고, 자본/소득 비율 β가 상승하고 있다는 것이다.<ref>Lawrence H. Summers가 이 주장에 비판적인 의견을 제시했다. 자세한 내용은 후술할 The Inequality Puzzle 참조</ref> ===6. 21세기의 자본-노동 소득분배<ref>노동소득을 보통 임금과 혼용해서 쓰이기도 하는데, 노동소득은 임금을 받지 않는 노동에서 얻는 소득(자영업 등)도 포함한다. 자본소득은 임대료, 배당금, 이자, 특허권료, 이윤 자본이득 등 여러 형태로 노동과 관계없이 자본의 소유로부터 얻어지는 모든 소득이 포함된다.</ref>=== [[파일:21세기자본요약18쪽.JPG]] 역사적으로 자본소득에 분배되는 몫은 국민소득 대비 자본총량과 자본수익률의 변동에 따라 계속 달라져왔다. 장기간에 걸친 지속적인 경향보다는 중기적인 변동이 이루어지고 있다.<ref>로버트 앨런은 19세기 중반의 자본소득 몫이 10% 상승한 것은 주로 기술 변화로 인한 자본생산성의 증가와 농촌에서 도시로의 노동력의 대이동 때문이라고 설명했다.</ref> 19세기 초의 모든 사회에서 대략 4~5%였던 순수한 자본수익률은 오늘날 3~4%로 하락했다.<ref>피케티는 평균 자본수익률이 과대평가되어 있다고 생각해 자본소득에서 자본 관리비용과 공식적인 금융 중개에 드는 비용을 뺀 순수한 자본수익률을 도출하였다. 별도로 세금과 감가상각을 표시하지 않는다면 이 수익률들은 세전 수치다. 모든 세금을 감안했을 때, 대부분의 부유한 국가에서는 자본 소득에 대한 평균 세율이 보통 30%정도다.</ref> 1913~1950년에는 세계대전등 여러가지 상황으로 세후 자본수익률 한때 1%까지 낮아지기도 했지만 이는 아주 예외적인 상황이었다. 자본소득 구성별로 보면 1990~2010년 프랑스에서 이윤이 차지하는 몫이 안정적임에도 불구하고 자본의 몫이 전체적으로 상승한 것은 1945년부터 임대료가 국민소득에서 차지하는 몫이 꾸준히 증가했기 때문이었다. 앞서 살펴봤듯이, 전시상황을 위해 인위적으로 자본의 몫을 감소시킨 역사를 제외하고는 자본과 노동의 몫을 수렴시키는 자연적인 힘은 없었다. 생산성의 향상과 지식의 확산에 기초한 현대의 성장은 노동이 생산에서 중요한 위치를 점하도록 만들어 주었지만, 민주적이고 능력주의적인 합리성을 향한 진보를 이루지는 못했다. <br><br><br>
요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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