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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후 === 제갈량은 한중 정군산에 매장하도록 유언했는데, 산에 의지해 분묘를 만들고 무덤은 관이 들어갈 정도로만 하며,평상복으로 염하고 기물을 쓰지 말도록 했다. 유선은 충무후(忠武侯)라는 시호를 내려 주었다. 제갈량이 죽기전에 표를 올려 "성도에 뽕나무 8백 그루가 있고 메마른 땅 열다섯 경이 있으니 자제들이 입고 먹기에는 스스로 넉넉합니다. 신이 밖에서 임무를 받들 때는 따로 조달할 것 없이 제 한 몸의 먹고 입는 것은 모두 관부에 의지했으므로 따로 생활의 방도를 차려 적은 양을 보태지는 않았습니다. 신이 죽었을 때 안으로 여분의 비단이나 밖으로 남은 재산이 있어 폐하를 저버리는 일이 없도록 하겠습니다." 라고 했는데 죽은 뒤에 보니 그 말과 같았다. 제갈량 가문은 이후에도 존나게 잘나가서 제갈첨이 유선의 부마가 되기도 했으나 촉이 망할때 위군 막으러 싸웠다가 뒤졌다. 언 놈이 삽질햇다고 하는데 중과부적 상태에서 한 번은 격퇴했는데 그게 삽질? 제갈량 사후에도 사천 지역 사람들은 제갈량을 수백 년 넘게 공경했는데, 각지에 세워진 제갈량 사당은 물론이고 제갈량 서거 당시 그를 추모하기 위해 머리에 흰 띠를 둘렀던 것을 대가 바뀌어서도 벗지 않아 나중엔 이게 사천 사람들 특색으로 굳어지게 됐을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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