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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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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를 평가한 글귀들== {{감성팔이}} 넷우익들이 어디서 원균 명장론따위를 주워쳐듣고 만들어진 영웅이라고 헛소리를 찌그리지만, 조선시대 내내 넘사벽급의 갓갓으로 평가받았던 분이다. *당대의 평가 {{인용| :사신은 논한다. 이순신은 사람됨이 충용(忠勇)하고 재략(才略)도 있었으며 기율(紀律)을 밝히고 군졸을 사랑하니 사람들이 모두 즐겨 따랐다. :(중략) :부음(訃音)이 전파되자 호남(湖南) 일도(一道)의 사람들이 모두 통곡하여 노파와 아이들까지도 슬피 울지 않는 자가 없었다. :국가를 위하는 충성과 몸을 잊고 전사한 의리는 비록 옛날의 어진 장수라 하더라도 이보다 더할 수 없다. :조정에서 사람을 잘못 써서 순신으로 하여금 그 재능을 다 펴지 못하게 한 것이 참으로 애석하다. :만약 순신을 병신년과 정유 연간에 통제사에서 체직시키지 않았더라면 어찌 한산(閑山)의 패전을 가져왔겠으며 양호(兩湖)가 왜적의 소굴이 되겠는가. 아, 애석하다. ::<선조실록 106권 중 노량해전에 대한 기사>}} {{인용| :공은 엄하고 진중하여 위풍이 있는 한편 남을 사랑하고 선비에게 겸손하며 은혜와 신의가 분명하고 식견과 도량이 깊어 기쁨과 노여움을 잘 나타내지 않았다. 일찍이 하는 말이 :“대장부 세상에 나서 쓰이면 죽을 힘을 다해서 충성할 것이요. 쓰이지 못하면 농사짓고 살면 또한 족한 것이니 권세있는 자에게 아첨하여 뜬 영화를 탐내는 것은 나의 부끄러워 하는 바라”하였다. ::<조선시대 인조때의 승지, 최유해>}} {{인용| :절개에 죽는다는 말은 예부터 있지마는 :제 몸 죽고 나라 살린 것 이분에게서 처음 보네. ::<조선시대 제19대왕, [[숙종]]>}} {{인용| :우리 역사상의 장수들로서 보통 때에 조그만 적을 만나 공로를 세우고 이름을 날린 이는 많았지만 공과 같은 이는 나라가 쇠약해지고 전쟁을 꺼려하는 때에 천하에 더할 수 없이 강한 적을 만나 크고 작은 수십 번 싸움에 모조리 다 이겨내어 :... 나라를 다시 일으키는 근본을 삼은 것이니, 저 한때의 공을 세운 신하들로서는 따를 수 없는 일이다. :더구나 그의 몸을 세우는 절개와 국란에 죽는 충성과 또 행군하고 용병하는 묘리며 복잡한 사무 등을 처리하는 지혜는 이미 다 보고 아는 일이라 :비록 옛날의 명장이나 어진 장수들로서 백년에 한 둘 밖에 나지 못하는 그런 인물로도 이 분을 넘어설 이는 없을 것이다. ::<조선시대 인조때 대제학,이식>}} {{인용| :이순신(李舜臣)의 사람됨을 신이 직접 확인해 본 적이 없었고 한 차례 서신을 통한 적 밖에 없었으므로 그가 어떠한 인물인지 알지 못했습니다. :전일에 원균(元均)이 그의 처사가 옳지 못하다고 한 말만 듣고, 그는 재간(才幹)은 있어도 진실성과 용감성은 남보다 못할 것이라고 여겼습니다. :그런데 신이 본도에 들어가 해변 주민들의 말을 들어보니, 모두가 그를 칭찬하며 한없이 아끼고 추대하였습니다. :또한 그가 4월에 고금도에 들어가자 만사를 적절히 조치하여 불과 몇 달 사이에 민가와 군량이 옛날 한산도에 있을 때를 능가한 것을 알고 비로소 그 역량이 남보다 뛰어남을 알게 되었습니다. ::<좌의정 한음 이덕형(李德馨)의 장계에>}} {{인용|:“왜적이 가장 무서워하는 것이 이순신의 해군입니다. 그를 가둬서는 아니 됩니다. 원균을 대신 보내서는 안 됩니다.” ::<도체찰사 오리 이원익>}} {{인용| :“이순신의 화평하고 어진 덕과 과단성 있게 일을 처리하는 재능 그리고 상과 벌을 곧바로 주는 용기 같은, :만일 다른 사람이 이런 정도의 분이라면 백세에 이름을 날릴 사람이라 하겠지만, 이순신에게 있어서는 그저 당연히 해야 할 하찮은 일로 여겼을 뿐 공명을 바라지 않았던 그런 사람이었다.” ::<영의정 백사 [[이항복]]>}} 누구의 평에서든 간에, 글쓴이의 이순신 장군님에 대한 흘러넘치는 존경심을 엿볼 수 있다.. 이러한 글귀들만 읽어 보아도 엿보이는 이분의 헌신에 감격의 눈물이 절로 흘러넘친다. 편집하면서도 놀랐다. 이정도로 후빨받기 진짜 힘든데... 빨지 않을 수가 없다 ㅠㅠㅠㅠㅠㅠ 세계사를 통틀어 봐도 명장으로 평가받을지언정 인성이 글러먹어 말년을 그르친 지휘관들이 천지인데 이분의 행적은 시기심이 생길 정도로 혼자 깨끗하다. 다른나라도 아니고 헬조선에서 태어나고 자랐으면서도... *후대의 평가 육군에서 날고 기던 사기캐(알렉산더라던가 칭기스칸이라던가 나폴레옹이라던가)들을 제외한 수군 제독 중에서는 전세계 명장 순위 에서도 10위권 안에 드는 치트키 사용자 학자나 훗날 군사전문가들 중에는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제독으로 평가하는 사람도 적지 않다. {{인용| :이순신은 서양 사학자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고 있다. 이순신은 전략적 상황을 널리 파악하고 해군전술의 비상한 기술을 가지고 전쟁의 유일한 참 정신인 불굴의 공격원칙에 의하여 항상 고무된 통솔원칙을 겸비하고 있었다. 그의 맹렬한 공격은 절대로 맹목적인 모험이 아니었다. 영국인에게 Nelson과 견줄 수 있는 해군제독이 있다는 사실을 시인하기는 힘든 일이지만 이순신이 동양의 위대한 해군사령관이라는 것은 틀림없는 일이다. ::<영국 해군준장, 조지 알렉산더 발라드>}} 서양에 넬슨 동양에 이순신이라는 위인이 한국이란 작은 나라에 있었다라는 것에 위대함을 느끼면 된다. 캬 ㅆㅂ 막걸리 더 가져와 <br>ㄴ이미 윗쪽에서 다마셔서 없음 넬슨은 프랑스 나폴레옹을 격퇴한 영국 전설의 제독이다. 다만 넬슨은 사생활이 별로여서 좀 까이는 면이 있다. 갓순신니뮤는 그런 거 없다. 나라를 지킨다는 사명감에 일생을 외롭게 싸워온 이순신에게는 안타까운 마음도 나지만 그러기에 그의 업적은 길이 빛나야 한다는 생각을 한다. 찬사를 아끼지 않은 다른 추모어록들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인용| :영국사람으로서는 넬슨과 어깨를 견줄 사람이 있다는 것을 시인하기란 항상 어렵다. 그러나 만일 그렇게 인정될 만한 인물이 있다면 그는 한 번도 패배한 일이 없고 전투 중에 전사한 이 위대한 동양의 해군사령관이라는 것은 틀림없는 것이다. ::<영국 해군 제독 '알렉산더 발라드>(Alexander Ballard) 저서 'The Influence of the Sea on the Political History of Japan' (1921) 중 <ref>[http://www.military-quotes.com/forum/lord-high-admiral-lee-soon-t15962.html The Influence of the Sea on the Political History of Japan (1921)] 알렉산더 발라드</ref>}} 까고 싶어도 깔게 없다. 세종대왕도 고기를 너무 좋아했다더니, 흉년에도 고기를 먹었다더니 또는 장영실 숙청과 같은 약간이라도 비판거리가 있는 반면 성웅께서는 인성, 군공, 행실 등 모든 면에서 까는 것이 불가능 하다. 역사학자들이 기를 쓰고 깔거리를 찾았지만 결국 못 찾고 GG를 쳤을 정도. 고기먹는 이야기는 충무공껜 하지말자. 명랑해전 후(모친상중) 어사육 받고 마음이 힘들었다고 기록하셨다. 진짜 행실쪽으론 당할 사람이 없다. {{인용| :그러나 일본은 뭍에서 성공을 거둔 반면, 바다에서는 일대 타격을 받았다. 한반도 사람들은 항해에 능한 민족이었고, 조선에는 이순신이라는 뛰어난 장군이 있었다. 이순신 장군은 전략가, 전술가이며 탁월한 자질을 지닌 지도자였을 뿐만 아니라, 기계 제작에도 뛰어난 재능을 지니고 있었다. 아시아의 해군 전술은 여전히 화살공격을 가하고 배를 들이받아 적선에 올라타는 차원에 머물러 있었으며, 대포는 배에 장착되지 않은 상태였다. 이순신 장군은 어떤 공격에도 버틸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대단한 방어력을 지닌 배를 고안했다. 그 배의 선체는 속도를 낼 수 있고 작전 행동을 할 수 있도록 고안되었다. 갑판 위에는 거북등처럼 철갑을 씌워, 불, 화살, 탄환 등이 뚫고 들어오지 못하게 했으며, 적이 배에 올라타지 못하도록 철갑 위에는 큰 못을 박았다. 뱃머리는 공격적으로 적선을 들이받을 수 있도록 강화했으며, 둘레 전체에 포문이 설치되었다. 일본 선원들은 용감하게 싸웠지만, 이순신 장군의 철갑전함에 저항할 수 없었다. 조선이 바다에서 승리를 거둔 결과 히데요시의 지상공격은 마비되고 말았다. 1597년 히데요시는 다시 한반도를 침략했지만, 이번에는 조선 사람들과 중국인들이 지상에서 보다 효과적으로 싸웠고, 일본인들은 바다에서 또다시 패배를 맛보았다. 히데요시는 1598년에 사망했다. 한반도를 무모하게 침략해 실패함으로써 결말이 좋지 못했지만, 그의 모국에서의 군사적, 행정적 업적은 대단한 것이었다." ::<버나드 로 몽고메리> '전쟁의 역사', 책세상 95년 1판 1쇄/2004년 개정증보판 1쇄}} ㄴ정작 자기는 끝까지 북 아프리카 전역이 독소전쟁급의 전역이라고 철썩같이 믿었으며 엘 알라메인 전투가 스탈린그라드 전투 급의 격전이라고 믿었다. 그리고 주코프에게 개쪽을 당했지 ''북 아프리카에 전개된 독일군이 몇백만이 되었나 봅니다?'' ㄴㄴ버나드 로 몽고메리 이 양반 마켓 가든 작전에서 자기 탓(만은 아니었지만)으로 패전한 거 부하한테 뒤집어씌웠다. 그 부하는 연금도 못받고 죽을때까지 공장에서 일하다가 죽었다고 한다. 인성의 상태가? {{인용| :강력한 연합군 함대가 한국 동남부에 위치한 부산항 입구에 정박한 일부 일본 함대를 공격하여 적함 80여척 중 27척을 격침시키고 나머지는 도주했다. 이후에 벌어진 전투에서도 전투함과 수송선을 포함한 70여척의 일본 함선이 이 연합국 함대에게 포착되어 섬멸되었다. 일본군 함대에 가해진 이 강력한 타격들은 한국에 주둔한 일본 육군을 고립시키고 본토 기지에서 차단시켰다.(잠시 뜸을 들이고) 며칠간 진행된 이 해군 작전은 1592년 여름에 수행되었으며, 연합군 함대를 이끈 지휘관은 한국의 이순신 제독이었다. 이처럼 역사적으로도 일본 해군은 이미 큰 패배를 맛보았던 것이다." ::<체스터 니미츠> 1944년 10월 9일, 진주만 미 해군 기지에서 시행한 브리핑 중 (1944년 10월 10일자 뉴욕 타임즈 기사)}} {{인용| :역사를 통틀어 정면 공격과 기습 공격, 병사를 뭉치고 산개시키는 전술에 모두 뛰어났던 장군은 몇 되지 않는다. 육군에서는 정복전의 대가였던 나폴레옹이 그런 장군이었고, 해군 중에는 더욱 천재적인 전술가로 동양에서는 한국의 이순신, 서양에서는 영국의 호레이쇼 넬슨을 꼽을 수 있을 것이다. 불행히도 이순신은 조선에서 태어났기에 서양에 별로 알려지지 않았지만, 임진왜란의 기록이 부족하다는 것을 전제하더라도 의심할 여지가 없는 최상급의 지휘관이다. 누구든 이순신과 비교되기 위해서는 네덜란드의 미힐 더 라위터르(Michiel de Ruyter)보다는 뛰어나야한다. 호레이쇼 넬슨은 인간성과 성실성 측면에서 이순신만 못하다. 이순신은 거북선이라고 알려진 뚜껑 덮인 배를 발명했다. 그는 진정으로 위대한 지휘관이었고 300여년 전 해군 전술의 달인이었다. ::<사토 테츠타로 제독> (A Military History of the Empire (Japanese: 帝國國防史論), p. 399, by Admiral Tetsutaro Sato of the Imperial Japanese Navy)}} 고루한 학자들 말고도 현대 갓양키형님들에게도 개간지 [[상남자]]로 인정받았다.<ref>[http://www.badassoftheweek.com/admiralyi.html]</ref> 절대간지와 남다른 포스를 자랑하신다. [[소인배]] 새끼들은 깔게 없으니 난중일기에서 남들 뒷담화만 존나 까는 치졸한 인간이라 까지만, 알고보면 전부 까일만 해서 까인 놈들이다. 원균은 말할 것도 없고, [[김억추]]니 [[배설]]이니 하는 휘하장수놈들도 이순신의 평가처럼 실제로 이순신 없던 칠천량에서 병신인증 했다. (말이 나와서 말인데 김억추는 참 가관도 그런 가관이 없다. 실록에 임진년 기사를 보면 그 전란중에 오죽이나 무능하면 쫌 갈아치우라고 계속해서 말이 나온다. 어디 장군질 좀 할사람 없냐고 눈에 불을키고 찾고 엔간한 의병장은 몽땅 벼슬주고 하는 전쟁중에 저런걸 보면 무능하기도 했거니와 겁이 진짜 많았나보다. 그런데 이런 횽아라도 후손들은 우리 할아버지가 명량에 참전하였다며 역대급으로 미화시킨 행장을 쓴다. 꿈에 관우가 나와서 이래저래 하면 이길수 있다고 했다나;;;; 후손들이 난중일기를 읽기는 읽은 모양인데 본인들 할아버지가 이순신한테 하루가 멀다하고 겁나 욕쳐먹는건 안읽고 이순신이 명량 전날 꿈꾼 일만 읽었나보다;;;) 휘하장수란 놈들은 죄다 이순신이란 상관 잘 만나서 역사에 이름 남긴 거고 그냥 [[헬조선]] 평균 장수수준이었다. 아니 그리고, 일기쓸때 넘한테 보여줄거야 하고 쓰는놈 있음 나와봐라.(변태색이가트니라고...) 난중일기는 철저히 개인이 남에게 밝히지 않고 간직하려한 기록이다. 말그대로 '일기'이다. 그런데 참으로 불가사의하고, 그렇기에 이순신이 어떤 사람인지 알수 있는건, 거의 7년을 넘는 개인의 기록이고, 그 개인은 오만 부당한 탄압에 시달렸던 사람이다. 그런데 임금님 원망 한줄이 없다.(!?;;; 그런데 실제로 이것이 일어났습니다) 도대체 이순신이 까일 이유를 모르겠다. 사실 선조가 이순신을 시기하거나 두려워할만했다. 생각해보자. 나라는 파탄났고 전쟁중이라 임금이 피신해야할정도로 국가 막장 테크를 타고있는데, 전방전선에서 지원도 없이, 아니 오히려 조공을 바치면서 자급자족하고, 자신만의 배도 구상해서 만들고, 모든 전쟁에서 승리하고, 단 한번의 큰 피해보고도 없다고?? 전략전술을 100% 완벽하게 구사하고, 당시 화포의 한계도 극복하고, 기동성이 더 우수한 배를 상대로 접근전조차 허용하지 않는 역량이라고?? 그뿐이냐? 전쟁으로 떠돌이가 된 백성들을 돌봐주고 그들로부터 엄청난 신뢰와 신망을 얻은 장수가 바로 갓갓갓이다. 백성들이 피난을 전라좌수영으로 온다. 말 다했지 뭐;;;; 선조는 이순신의 역량이 너무나 거대해서 두려워했을 것이다. 초반에 밀어준건 역량이 대단한 장수라고 밀어줬지만, 너무나 거대한 역량에 임금으로서의 지위에 위협이 될정도였으니... 잊지말자 조선이란 국가는 고려말 유능한 장군 이성계가 세운 국가였다. ㄴ근데 이순신은 이성계와 다르게 목숨 걸고 따르는 사람들이 별로 없었다. 애초에 13 : 133으로 붙을 때 이순신 혼자서만 죽도록 싸우다가 이길 것 같으니까 그제서야 다른 사람들이 합류할 정도. 한신이나 가르친링을 봐라. 따르는 사람들이 없으면 그냥 왕이 명령만 내려도 군대 해산된다. :ㄴ 즉, 하성군 그 병진은 자기가 왕인데도 자기 권위에 자신이 없었던 상병진이라는 결론. (하기사 [[이몽학]] 개객기 때문에 멘탈 박살난 게 있긴 했지만...) (여기 적혀 있던 십새의 망언을 지웠습니다. 대충 이순신 장군님이 하지 않은 말을 했다는 식으로 불쾌히 적혀있기에 지웠습니다.) 그러나 이순신은 이런 말들을 한 적이 없다. 역시나 병신새끼들이 지맘대로 각색해서 어록이라고 뿌리는 것이다. 어휴.. 우선 이순신은 역적 가문도 아니었다. 애초에 역적 가문 출신은 문과고 무과고 과거시험 자체를 못 본다. 이 디키만 해도 내가 이런 말을 덧붙이지 않았다면 분명 이순신이 이런 말을 했다고 여러 곳에서 깝치고 다녔을 것이다. 이순신이 이런 말은 한 적이 없지만 뒤에 있는 것들은 전부 사실기반이다. 이 말은 실제로는 칭기즈 칸이 했다. ㄴ 개소리다 실제로는 김종래라는 기자가 쓴 자기계발서에 나오는 말인데 병신들이 이순신이나 칭기즈칸이 한 말이라고 떠들어대는거다. ㄴ 칭키스칸의 집안은 칸을 배출할수있는 자격을 가진 집안이였다.. 자기가 겪은 삶의 고통을 남에게 대입해서 너의 고통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주입하고 싶어하는 꼰대새끼들이 이순신의 이름을 팔아다가 만들어낸 창조적 개소리일 뿐이다. 이순신이 저 말을 했다고 생각하는 것은 이순신을 은근슬쩍 꼰대질이나 하고 다닐 옹졸한 인간으로 생각한다는 것과 마찬가지다. 쓰시마 해전을 승리로 이끈 일본 해군 제독 도고 헤이하치로(東郷平八郎)가 이순신을 존경한다느니 했다는 카더라가 있으나 ㅈ도 근거가 없는 국뽕용 인터넷 구라다. :ㄴ 출처가 국뽕은 아니고, 오히려 일제시대 관장사에서 파생된 거다. 개색희들이 남의 나라 장군을 한일합방했다고 자기네 제독으로 족보세탁 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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