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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멸망 == 한때 해동성국이란 별칭이 존재할 정도로 강대국이었지만 발해 왕조는 채 300년을 넘기지 못했는데, 정확히는 228년이다. 왕실에 관한 정보나 해당 고서가 많이 부족해서 어떻게 멸망했는지 뚜렷하게 알 수 없다. 학자들은 거란에게 흡수 통합되었다고도 말하고, 혹은 세력 내의 분열에 의한 내전, 백두산 폭발로 인한 인명 피해로 국력이 쇠퇴해 멸망했다고 주장하는 이들도 있다. 말갈(흑수말갈 제외)족을 복속하여 만주에 고구려보다 큰 영토의 나라를 세웠지만 지배층과 피지배층 간의 양극화가 너무 극심한 나라라서 말갈인 민심의 대거 이반으로 [[거란]]에게 명치를 빡 맞고 그대로 쓰러졌다. [[게르만족]]이 밀려들어오자 온 동네 성문을 활짝 열어제낀 로마의 하층민들을 생각하면 된다. 여러모로 이상한 게, 거란이 공격하기 1년 전에 발해는 거란을 상대로 자사를 죽일 정도의 대승리를 거뒀다. 근데 지는 상황에서도 대승리를 거둘 수 있고, 대승리를 했어도 질 수도 있다. 불가리아 새끼들이 로마군 대패시키며 따먹다가 바실리우스 2세한테 관광 당하고 X되는 거 봐라. 특히 과거 전쟁은 과학기술이 발달하지 않아 ㄹㅇ 도박이나 마찬가지인 경향이 심했다. 솔까 말 타고 다니는 새끼들의 기본적인 전력이 말빨로 존나 강해서 영국군도 고전하던 근대 요새를 유목민 새끼들이 오스만 군 털어버리고 따먹기도 했다. 솔직히 유목민들이 돌대가리만 아니었다면 유목 문명들이 농경 민족들을 존나 쩔게 통치하며 잘 뽑아먹어서 세계 주류 세력이 되었을 듯. 그리고 20년 간 끄떡없던 요동 방어선은 거란이 완전 무시한 채 발해의 중요 지역인 부여부와 수도 상경용천부를 공격했고 어째서인지 대인선은 수도 포위 4일 만에 항복해버린다. 그리고 대인선은 항복한 이후 6일 만에 부흥 운동을 전개했지만 손쉽게 진압된다.(12월에 거란이 침공, 1월 14일 항복, 1월 20일에 대인선이 부흥운동 시작, 7월에 거란군 회군이므로 나라 자체는 쉽게 무너진 것에 비하면 부흥 운동은 꽤 긴 기간 동안 있었다.) 근데 너무 단기간에 허무하게 망한 게 충격이라서 그렇지 사실 이전 기록들을 보면 거란 침공 이전에 고자리, 아어한이라는 흑수말갈 추장이 수하들 이끌고 귀순했는데 이를 반대로 생각하면 자기네 뒤통수에 있는 흑수말갈이 아직도 자기들끼리 발해 뒤통수 후리니 마니로 발해 후방을 흔들고 있었고 거기다 거란 침공 이전인 925년에는 대규모 농민 반란도 있었다. 즉, 이미 내부적으로 개같이 막장이 되어버린 상황이었다. 그리고 거란 침공 당시엔 늙은 재상이 5천(혹은 3만) 군사 이끌고 깨졌다는 기록도 있는데 발해라는 국가의 덩치를 생각해볼 때 저 군사가 전부는 아닐 테고 아마 급히 모집해서 내놓을 수 있는 중앙군의 최대치였을 것이다. 그러니까 백제 멸망과 비슷하다. 점령 당할 때까지의 기간이 지나치게 짧았다는 것을 뺀다면 말이다. 그리고 백제가 수도 어택땅 당하고 멸망 당했을 때 각지에서 '조까 웅진도독부 개객갸 ㅗ' 이러고 일어났듯이 발해도 '조까 거란 개객갸 ㅗ' 이런 거지. 수도인 상경부가 털렸어도 이후에 장령부, 남해부 등등이 벌떼처럼 일어났다는 것도 똑같고 결국 거란 태종인 야율덕광이 그 발해 103성을 죄다 짓밟고 나서야 겨우 진정이 되었다....는 개뿔 바로 뒤이어 여타 발해의 후계를 자처하는 놈들이 등장해 거란이 발해 멸망시키고 세운 괴뢰국인 동란국을 아주 뒤흔들어버렸다. 여기에 야율배와 야율덕광과의 황위 계승 싸움까지 벌어지고 동란국 왕이었던 야율배가 져버리자 그 길로 동란국은 다시 요나라 직할로 들어가고 만주지역은 말 그대로 말만 거란의 땅일 뿐, 붕 떠버리게 되었다. 게다가 940년대에 백두산까지 터져버리니 이게 만주 지역에 살던 거란이나 발해 유민이나 여진이나 말 그대로 헬게이트 오픈이었다. 유목 민족이라곤 하나, 거란이든 여진이든 반농반수 혹은 반농반유목 수준의 민족들인데 백두산 터지니 농사가 제대로 될 턱이 없을 거고 결국 발해부흥운동도 약화되지만 동시에 거란 지배력도 약화되었다. 거기에 뒤이어 여요전쟁까지 거란이 말아먹어버렸으니 만주 지역은 더더욱 무주공산 그 자체가 되어버리게 된다. 다들 많이 간과하는데 발해부흥운동은 현재 한국사에서 나오는 부흥운동들 중에서 가장 긴 부흥운동 기간을 자랑한다. 후발해부터 시작해 정안국, 올야국, 오사국, 흥요국, 대발해까지... 근 200년에 가까운 세월 동안 부흥운동을 했고 대발해의 지도자 고영창이 금나라 장수 알로한테 깨지고 모가지 썰리기 직전까지 발해유민들은 요동에서 진짜 개같이 끈질기게 저항하며 거란에게 아주 엿을 푸짐하게 먹였다. 뿐만 아니라 발해부흥운동이 본의 아니게 초기 고려를 지켜주는 방파제 역할도 해줬다. 태조가 죽고 난 뒤 이어 등장한 왕들 꼬라지 보면 호족에게 휘둘리거나 호족을 밟기 위해 복수법같은 무리수를 터뜨린다거나 하는 식으로 중앙정치를 개판으로 운영했다. 그나마 성종이 즉위하고 난 뒤에 안정이 되긴 했지만....만일 저 개판된 상황에서 거란이 쳐들어왔다면 아마 1차 침입 때 병자호란 재현하고 고려왕이 무릎 꿇고 일개 장수인 소손녕한테 절하는 사태가 나왔을 수도 있다. 근데 후발해, 정안국, 올야국 등의 발해 후계국들이 만주 지역에서 깽판치며 거란의 주로 거주하던 화북과 몽고의 초원 지역과 한반도의 통로를 끊어먹다시피 했다. 그렇기에 제대로 된 침입이 한동안 불가능했다. 1차 침입은 동경유수인 소손녕이 끌고 온 거고 후에 요 성종인 야율융서가 만주지역에다 20만 대군 풀어서 발해 세력을 깨강정으로 만들어버리고 난 뒤에야 다시 고려 침략이 가능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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