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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켈란젤로 부오나로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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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스티나 대성당 프레스코화= <center> '''미켈란젤로의 암흑기''' </center> 1505년 명성이 자자했던 미켈란젤로는, 권력의 끝판왕이었던 교황 율리우스 2세에 부름을 받게 된다. 교황 율리우스 2세의 요청은 자신이 죽으면 세울 무덤을 만들어 달라는 것이었다. 그것도 보통 무덤이 아니라 전에도 그리고 앞으로도 없을 무덤을 만들어 줄 것을 요구했다. 이에 회답하기 위해 미켈란젤로는 '''3층 구조의 석조물'''에 '''40여개에 조각상'''을 배치한다는 원대한 계획을 세우게 된다. 이와 별도로 교황 율리우스 2세는 자신의 무덤을 설치할 대성당을 신축하기 위해, 바티칸에 있던 옛 대성당을 허물고 신축을 진행한다. 이것이 바로 그 유명한 "성 베드로 성당"이다.<ref>성 베드로 성당 이전에도, 4세기에 만들어진 옛 성 베드로 성당이 있었다. 하지만 율리우스는 낡은 옛 성 베드로 성당을 철거하고 다시 지은 것이다.</ref> 교황의 무덤을 의뢰받은 미켈란젤로는 의욕적으로 작업을 진행시킨다. 먼저 채석장에 가 수십 톤이 넘는 대리석들을 심사숙고해 가지고 돌아오게 되는데,,, 교황 율리우스 2세는 성 베드로 성당의 신축에만 온통 관심이 있었지 미켈란젤로는 안중에도 없었다. 이에 크게 실망한 미켈란젤로는 율리우스 2세의 무덤을 만드는 일을 중단한 채 떠나버린다. '''바로 그 순간부터 율리우스 2세와의 악연은 시작되게 된다.''' 피렌체로 도망쳤던 미켈란젤로는 1년 뒤인 1506년 교황 율리우스 2세에 강압적인 부름에 어쩔 수 없이 다시 교황을 찾아간다. 교황 앞에 당도한 미켈란젤로는 머리를 땅에 숙일 수밖에 없었다. 교황은 그런 미켈라젤로를 꾸짖으며 그에게 형벌 아닌 형벌을 내리게 되는데 '''그것이 바로 오늘날에 시스티나 성당의 프레스코화'''이다. ---- [[파일:Michelangelo, Sonnet with a caricature.jpg|섬네일|500픽셀|왼쪽| 시스티나 성당 프레스코화를 그릴 시절 친구에게 보낸 소네트]] {{인용문|나는 이 고문 때문에 갑상선종이 생겼다네, 롬바르디아의 독물 때문에 고양이들이 붓 듯이.. 내 수염은 하늘을 향해 있고 짓눌린 내 뒤통수로 뇌가 느껴져 그리고, 내 목에는 하피<ref>그리스 로마 신화에 나오는 죽음의 정령, 미켈란젤로의 목에 있는 갑상선종을 가르킨다.</ref> 의 가슴이 자라나고 있다네 내 붓의 물감들은 내 얼굴 위로 떨어져 멋진 바닥을 만들어내고 있어 내 척추는 뱃살을 밀어냈고, 엉덩이는 뒤로 쑥 뺀 체 고정되어 있다네 나는 보이지 않는 무의미한 길을 걷고 있다네... 내 앞쪽 살들은 팽팽하게 당겨지고, 뒤쪽은 뭉쳐져 매듭이 되었어... 나는 시리아의 활처럼 휘어버렸다네.. 내 마음 속에 여러 가지 생각들이 나를 미치게 만들고 있어 휘어버린 화살 총으로는 그 누구도 맞출 수 없지 '''내 그림은 죽어버렸어....''' 조반니, 내 명예를 지켜주게 나는 이곳에 있어서는 안돼 '''나는 더 이상 화가가 아니야...'''}} 미켈란젤로가 친구인 조반니에게 보내는 소네트로써, 시스티나 성당 프레스코화로 인한 자신의 심정과 처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미켈란젤로는 회화보다는 조각을 만드는 걸 좋아했기 때문. 글 옆에 있는 그림이 바로 천장화를 그리는 미켈란젤로 본인의 모습이다. ---- 천장화는 일반 회화와는 전혀 다른 것이었다 그것은 프레스코 벽화 기법으로 작업해야 했으며, 아무리 천재였던 미켈란젤로라도 할지라도 쓰지 않았던 기법을 능숙하게 사용하기 위해서는 시간이 필요했다.<ref>어릴 적 디 조반니 밑에서 배우긴 했지만 오랫동안 쓰지 않았다.</ref> 하지만 미켈란젤로는 이를 거부할 권한 따위는 없었다, 시스티나 성당 천장화 이전에 율리우스 2세는 또 다른 형벌로 기마 청동상을 제작하게 하였고 그 뒤인 1508년 천장화는 시작된다. 정면이 아닌 천장을 바라보며 그려야 했기에 특수한 구조물들을 설치하였고 미켈란젤로는 그 위에 선채로 천장만을 보며 그림을 그렸다. 그것도 무려 4년 동안을... 도중에 자괴감이 들어 몇 번 몰래 탈주했지만 교황이 이잡듯이 뒤져서 그 때 마다 다시 잡아들여 감금시켰다. 그런데 미켈란젤로를 괴롭히는 것은 이것뿐 만이 아니다. 프레스코 기법은 회반죽을 바르고 그것이 마르기 전에 색 안료를 발라 말려 완성하는 것이었는데, 아무래도 천장이다 보니 중력에 의해 회반죽과 안료들이 우수수 떨어지기 일 수였으며, 회반죽 위에 안료를 칠하는데 성공하자 이번에는 곰팡이가 피기 시작한 것이다. 하기도 너무나 싫은데 제대로 되지도 않으니 미켈란젤로는 그야말로 절망에 빠져버린다. 나중에는 교황에게 찾아가 도저히 못하겠으니 라파엘로에게 맡겨달라고 요구까지 하였지만... 교황은 신경조차 쓰지 않았다. 애초에 라파엘로한테 시킬거면 미켈란젤로가 도망칠 때 마다 잡아들이지 않았겠지.. 하지만, 미켈란젤로는 괜히 천재라 불리는 게 아니었다. 더디게 진행되던 작업들은 그가 프레스코 기법에 익숙해지고 시간이 흐르자 속력이 붙기 시작했고 1510년 여름 즈음에 거의 절반 밖에 완성되지 않았던 천장화는 1512년에 비로소 완성되어 공개된다. [[파일:Cappella sistina, volta 02.jpg|섬네일|1500픽셀|가운데| 시스티나 대성당 천장 프레스코화, 36m x 13m, 1508년~1512년]] ---- ==시스티나 대성당 프레스코화 세부내용== [[파일:Cappella sistina, volta 03.jpg|섬네일|1500픽셀|가운데]] === 1. 리비아 무녀, 어둠과 빛, 에레미야=== [[파일:Michelangelo - Sistine Chapel ceiling - 1st bay.jpg|섬네일|1500픽셀|가운데| 에레미야 - 어둠과 빛 - 리비아 무녀]] [[파일:'LibyanSibyl Sistine Chapel ceiling' by Michelangelo JBU34.jpg|섬네일|500픽셀|가운데|<ref>By Jorg Bittner Unna (Own work) [CC BY 3.0 (http://creativecommons.org/licenses/by/3.0)], via Wikimedia Commons</ref> 리비아 무녀, 여성이지만 남성 만큼이나 다부진 근육이 돋보인다. 미켈란젤로 그림체의 가장 큰 특징.]] [[파일:Michelangelo, Separation of Light from Darkness 00.jpg|섬네일|600픽셀|가운데| 창세기의 시작, 빛과 어둠]] [[파일:Michelangelo, profeti, Jeremiah 01.jpg|섬네일|600픽셀|가운데| 에레미야, 고뇌하는 미켈란젤로 본인의 자화상을 그려넣었다]] ----
요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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